금품수수 부인하던 A팀장, PC에서 '골프일지' 나오자…

한경 CHO INSIGHT
조상욱 변호사의 '인사兵法'
배임, 폭행, 영업비밀 유출, 권한남용, 직장내 괴롭힘과 성희롱 등 문제직원의 비위행위는 기업이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대비해야 하는 위험이다. 그 위험이 실현되어 비위행위가 실제 발생하면 기업은 면담, 서류조사, 포렌식 등의 조사를 하게 되는데, 이런 일련의 활동을 노동조사(勞動調査)라고 하자.

노동조사의 목표는 문제직원 비위행위와 관련된 사실(事實)을 입증하는 것이고, 이는 징계, 권고사직, 고소, 컴플라이언스 실행, 미디어 대응과 같은 대응조치 성공의 토대가 된다. 즉, 비위행위에 대한 대응조치의 방향(사안 해결에 집중한 대응을 할지, 조직개편을 포함한 근본적 개선을 도모할지), 내용(문제직원에 대해 징계, 권고사직, 고소 중 어떤 조치를 실행할지)과 수위(해고를 할지, 아니면 보다 가벼운 징계를 할지)는 입증된 사실의 양과 질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인사 및 법무 담당자는 노동조사를 통한 사실 입증 역량 키우기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오늘은 이런 사실 입증의 힘에 관하여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선 몇 년 전 경험을 일부 각색한 사례다. 특정 협력업체로부터 정기적으로 금품을 상납 받고 부당한 혜택을 준 것으로 의심 받는 팀장을 조사했는데, 팀장이 상당히 구체적인 신고가 있었던 금품 수수까지 전면 부정해 조사가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던 중 팀장의 노트북을 포렌식하게 되었는데, 여러 날 조사 끝에 전혀 기대치 않았던 골프일지 엑셀파일을 발견했다.

골프일지는 조사 받을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한 골프광 팀장이 취미 삼아, 또 협력업체간 공정한 라운딩 비용 분담을 위해 라운딩 때마다 작성하여 노트북에 무심코 저장한 자료였다. 일지에는 라운딩 별로 장소, 날짜, 날씨, 참석자, 참석자들 스코어와 그 날의 본인 컨디션, 그리고 누가 라운딩 비용을 부담하였는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결국 이를 통해 팀장 외 다른 임직원들도 대거 향응을 받은 사실, 거의 모든 협력업체가 향응에 관여한 사실, 수 년에 걸쳐 수십 차례, 때로는 평일 업무 시간 중 라운딩을 한 사실, 협력업체 임원들이 라운딩 비용을 체계적으로 순서를 정해 낸 사실이 드러났다.당초 의심한 것보다 더 심각한 구조적 부패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기업은 골프일지에 이름이 나오는 다른 임직원들과 모든 협력업체에까지, 또 금품 수수 외에 골프 등 향응에 이르기까지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조사 대상자와 범위는 확대되었으나, 종전보다 조사 진행은 오히려 더 순조로웠다. 관련자들이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은 골프 향응과 직무태만 사실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팀장도 골프 향응은 물론 처음 문제가 됐던 금품 수수까지 인정했다. 그 과정에서 팀장 등이 받은 향응과 협력업체들이 받은 부당한 혜택 사이의 상관관계도 입증할 수 있었다.

노동조사 종료 후 기업은 심각한 구조적 부정부패가 있었다고 결론짓고, 협력업체 관리 제도개선과 무관용 대응 방침을 정했다. 이로써 팀장을 포함한 다수 임직원이 해고되거나 자진 퇴사 형식으로 기업을 떠나면서 퇴직금으로 기업 손실을 변상했다. 몇몇 협력업체와는 거래가 중단되었다. 이후 협력업체 선정 절차 개선 작업도 전격 실행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법정 분쟁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위행위가 명백히 입증되었기에 관련 임직원과 협력업체가 승복하였고, 이를 지켜 본 다른 직원들도 기업의 대응조치에 납득하고 협조했기 때문이다.

사례의 골프일지처럼, 확실한 사실 입증이 이루어지면 다수 문제직원이 연루되어 있고 그 처리 결과에 여러 당사자가 영향을 받는 비위행위라도 그 전모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 기업은 손쉽게 적정한 대응조치를 통해 근본적인 개선을 도모해 잠재적 분쟁 불씨까지 없앨 수 있다. 악화되기 전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업스트림(upstream) 조치라 할 수 있다.또 다른 사례다. 제조업체 A주임은 포장마차에서 같은 부서 직원을 주먹으로 폭행, 상해한 일로 해고되었는데 이에 불복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심판 신청을 했다. 피해직원이 상해로 한참 입원한 점만 보아도 중징계 대상은 분명하지만 해고는 너무 과하지 않은지 문제되는 사안이었다.

A주임은 상사와 업무상 의견 대립으로 불화를 겪던 사정이 양정에 부당하게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주장하고, 당시 취하여 상황을 기억 못하는 점, 피해직원과 쌍방 폭행인 점 등을 내세워 해고는 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안에서는 인사 담당자가 집념을 가지고 탐문하여 어렵게 입수한 포장마차 앞 CCTV에 찍힌 폭행 영상이 있었다. 영상을 보면, A주임이 포장마차에 뛰어들 듯 들어가 피해직원을 끌고 나와 수 차례 발길질하는 장면이 나온다. 피해직원은 수동적으로 저항하지만 술에 취해 자꾸 넘어지는데, A주임은 포장마차를 오가는 걸음에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마지막에는 피해직원 얼굴에 A주임이 주먹으로 있는 힘껏 일격을 가해 피해직원이 쓰러져 기절한다. 지켜보다 놀란 사람들이 모여들자, A주임이 주변을 살피며 침착하게 자리를 뜬다.이미 서면에 영상 이미지를 붙여내고 영상 파일도 제출했지만, 만전을 기하기 위해 심문기일 당일에 영상이 담긴 태블릿을 심판위원들에게 제출하고, A주임과 그 대리인에게도 따로 태블릿을 제공했다. 오래된 일이건만, 심판위원들이 빨려들 듯 몰입하면서 폭행 장면이 나오는 화면을 뚫어져라 들여다 보던 모습(서면만 읽고, 영상은 처음 본 것 같았다), A주임 측에 심증을 드러내지 않으려 질문 선정에 조심하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다른 증거도 준비했지만, 1시간에 걸친 심문 대부분이 영상 내용 확인과 그에 대한 A주임 변명 듣기에 소요되는 바람에 제시할 시간이 없었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판정은 영상을 본 직후 심판위원들 표정이 말해 준 것처럼 해고가 정당하다는 것이었고, A주임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신청을 포기했다.

A주임이 본인 주장대로 술에 취했는지, 쌍방폭행인지는 정황만으로는 쉽게 판단이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사례에서 CCTV 영상은 그런 논란의 여지를 아예 없애고, 쌍방 주장의 맞고 틀림, 옳음과 그름을 가차없이 드러냈다. 그 영상은 애매함과 의혹의 장막을 갈라쳐서 그 틈으로 진실의 빛을 솟아나게 하는 칼날과 같았다. 영상은 당일 폭행의 진상과 본질을 한 눈에 들게 하면서, A주임에 대한 적절한 대응조치가 무엇인지까지 저절로 드러냈다. 사실 입증에 대한 인사 담당자의 집념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심문기일의 영상이 A주임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판정에 마음에서 승복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우리 중 누구도 자기 행동을 외부자 시각에서 생생하게 경험할 수 없고, 그 행동의 부정적 영향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우며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 날의 영상이 이런 한계를 넘어 A주임 승복을 이끌어 내었다면, 그것도 사실 입증의 힘일 것이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