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로 세상얻기] 다급해진 채권자, 내쫓기는 서민들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경매물건이 증가하고 낙찰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등 경매시장의 침체국면이 계속되자 경매물건의 주된 채권자인 각급 금융기관의 채권회수에 비상이 걸렸다. 더군다나 경매에 대한 송달의 특례규정이 올해말로 실효됨이 예고되어 있어 채권회수에 대한 조바심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담보채권 회수율 60%대에 머물러
최근 경매시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물건수 증가와 낙찰가율 하락이라는 기조의 유지는 자금여력이 있는 투자자에게나 실수요자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지만 채권자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3, 4년전 담보가액의 70~80%까지 후한 대출을 해줬던 각급 금융기관의 경우 최근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담보율이 담보자산가치 대비 90% 이상 심지어 100%를 초과하게 되고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하는 채무자가 비일비재해지자 채권회수에 초비상이 걸렸다. 물건이 경매시장에 나와도 낙찰가율이 60~70%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선순위 채권을 확보한 채권자라 하더라도 30%~40%는 부실로 남게 된다.


지난 10월 12일 서울서부지법에서 경매에 부쳐진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30.2평형 ‘S’빌라 낙찰사례를 예로 들어 보자. 이 빌라 매수인은 2년전 ‘K’은행을 통해 2억8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하고 대출을 통해 빌라를 구입했으나 대출이자 상환이 연체되자 ‘K’은행에서 채권청구액을 1억6120만원으로 하여 지난해 10월 경매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경매를 위한 감정평가 결과 감정가액은 고작 1억4천만원. 2회차 경매까지 찾는 사람이 없어 유찰된 끝에 이날 3회차 경매에서 감정가의 79%인 1억1065만원에 비교적 높게 낙찰되었으나 선순위 담보물권자인 ‘K’은행에 배당되는 금액은 많아야 1억700만원. 결국 채권청구액의 66% 정도만 회수가능하고 나머지 34%가 부실로 남게 되는 셈이다. 그나마 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선순위 확정임차인에게 배당하고 나면 남는 금액이 없어 후순위 담보권자(금융기관 등)가 한푼도 건지지 못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
경매에 대한 송달의 특례 올해말로 끝나 – 무더기 경매신청 사태 우려


금융기관의 채권회수에 조바심을 내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경매에 대한 송달의 특례조항이 올해말로 끝난다는 점이다. 즉 금융기관부실자산의효율적처리및한국자산관리공사의설립에관한법률은 일정한 금융기관등이 신청한 임의경매절차에 있어서의 통지 또는 송달은 경매신청당시 당해 부동산의 등기부에 기재되어 있는 주소(주민등록표에 기재된 주소와 다른 경우에는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주소)에 발송함으로써 송달된 것으로 보는 이른바 ‘도달주의’에 대한 예외로서의 ‘발송주의’를 취하는 특례조항(동법 제45조의2)을 두고 있으나 이 조항은 올해말까지만 적용되는 한시적 규정이다.


이 조항에 의해 각급 금융기관이 신청한 경매사건은 채무자등에 대한 통지 또는 송달이 채무자에게 도달되지 않아도 경매절차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채권회수가 비교적 용이하였으나, 특례규정이 시효로 소멸하는 내년부터는 금융기관의 경매신청사건도 ‘도달주의’가 적용되어 경매절차가 상당히 지연될 수 있다. 가뜩이나 법원에 접수된 경매물건수가 많아 경매신청 후 배당에 의한 채권회수까지 8개월~10개월까지 걸리는 차에 ‘도달주의’가 적용되면 경매경매신청에서 채권회수까지 1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음이다. 금융기관의 총체적인 부실이 염려되는 이유이다.
금융연합회에서 특례조항의 연장을 재경부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라지만 이미 이 조항에 대한 위헌판결이 내려진 바 있어 연장이 될지는 미지수다. 특례조항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각급 금융기관에서는 올해 안에 무더기로 경매신청 할 소지가 다분하다. 이미 이에 대한 준비를 분주하게 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건수가 적체되는 상황에서 경매신청후 3~6개월만에 경매시장에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매물건수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경매신청, 그 완급을 조절할 필요도 있어


경매물건이 증가하면 그만큼 경매처분 되어 생계수단이나 주거공간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서민들이 많아지게 된다. 서민주택이라 할 수 있는 연립과 다세대 경매물건이 수도권 전체 경매물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에서 더욱 그렇다. 이렇듯 경매처분이라는 것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변한다. 문제는 그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 채무자뿐만 아니라 임차인, 개인간 신용거래자, 가압류 채권자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각종 이해관계인에게도 심한 타격을 입힌다는 것이다. 물론 채권자 입장에서도 최악의 상황에서 경매를 신청하겠지만 요즘과 같은 시점에서는 경매신청이 최선의 방법은 아닌 듯 싶다.
시장원리에 따라 행하는 경매신청 행위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겠지만 한 때 경쟁적으로 가계대출을 늘렸던 금융기관도 현 부실에 대한 책임이 없지 않은 만큼 마냥 채무자에게만 그 책임을 떠 넘길 수는 없다. 악성채무자는 할 수 없겠지만 채권회수에 급급한 나머지 2~3회 이자 상환이 연체되었을 뿐 상환능력과 의사가 있는 건전채무자까지 같은 부류로 묶어 경매신청에 돌입한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채권자로서의 금융기관의 역할에만 매진할 것이 아니라 경매물건이 늘어날수록 낙찰가율은 더 하락할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채권회수율이 낮아져 금융기관의 부실규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경매신청 속도의 완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시 요즘의 경매물건 증가는 경기불황이 주된 원인이라는 점에서 높은 대출금리에서 비롯된 외환위기 당시의 경매물건 증가와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강도 높은 규제를 통한 부동산시장, 특히 주택시장의 안정이 반드시 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수경기의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는 주택시장 규제는 가계부실 – 경매물건 증가 – 금융부실이라는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고, 서민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한 국가경제의 회복이라는 기치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 금융기관이나 정부 당국 모두 경매처분에 따른 고통을 감내하지 못해 소중한 목숨까지 끊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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