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전곡 도전' 노부스 콰르텟…"에베레스트 오르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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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악 최고봉' 베토벤 현악4중주 16곡 완주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현악 4중주는 ‘클래식 음악의 정수’로 불린다. 위대한 작곡가들이 그들의 심오한 음악 세계를 네 개의 현이 어우러지는 선율과 화음에 담아낸 덕분이다. 한때 살롱 음악이나 사교 모임의 배경 음악에 머물렀던 현악 4중주를 음악 예술의 정점으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베토벤이다. 그가 만든 현악 4중주 곡들은 실내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생애 마지막 다섯 곡(12~16번)에는 ‘신품(神品)’이란 별명까지 붙었다.
예술의전당서 12일부터 공연
2020년부터 작곡가 시리즈 시작
쇼스타코비치 나흘 연속 연주 화제
1~3번, 7~9번 등 8곡 첫 연주
"어떻게 이런 곡 썼나 감탄하죠"
공연마다 시기별 작품 고루 배치
"인간 베토벤 이해하는 시간되길"
한국 실내악의 대표주자인 노부스 콰르텟이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연주’ 등정에 나선다. 오는 12일을 시작으로 6월 17일, 8월 16일, 11월 11일, 11월 19일 등 5회에 걸쳐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베토벤 작품 열여섯 곡(‘대푸가’ 포함)을 완주한다.8일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동에서 노부스 콰르텟 멤버 김재영과 김영욱(이상 바이올린), 김규현(비올라), 이원해(첼로)를 만났다. 첫 공연의 첫 연주곡인 2번을 연습 중이던 이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등산로 입구에서 험한 산세와 까마득한 정상을 쳐다보면 무섭고 떨리잖아요. 그런 심정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협주곡이 풍경화나 정물화라면 현악 4중주는 내면의 복잡한 심상을 그려낸 추상화 같아요. 베토벤이란 에베레스트산을 잘 오를 수 있을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김규현)
2007년 한예종 출신 젊은 연주자들로 결성된 노부스 콰르텟은 2014년 세계 최고 권위의 뮌헨 ARD 콩쿠르와 2015년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2014년부터 아르디티 콰르텟, 벨체아 콰르텟 등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이 속한 글로벌 에이전시 지멘아우어 소속으로 해외 유수 공연장과 음악제 무대에 올랐다. 이런 큰 무대에서 ‘15년 연주 공력’을 쌓은 중견 콰르텟에도 베토벤 전곡 연주는 큰 도전이라고 했다.“총 16곡 중 초기 1~3번, ‘라주몹스키’란 부제가 붙은 중기 7~9번과 10번 ‘하프’, 마지막 16번 등 절반을 이번 시리즈에서 처음 연주합니다. 새 곡을 연습할 때마다 저희가 너무 작아지더군요. 음악적 깊이가 ‘비교 불가’예요. 어떻게 이런 곡을 썼을까 감탄하게 됩니다.”(김영욱)
노부스 콰르텟은 2020년 10월 멘델스존 전곡(6곡)을 시작으로 지난해 6월 쇼스타코비치 전곡(15곡), 9월 브람스 전곡(3곡)을 연주했다. 특히 ‘현악 4중주의 신약성서’로 불리는 쇼스타코비치 곡을 나흘 동안 모두 연주해 주목받았다.
김재영은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할 때 정신적·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멤버들과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1년 만에 이들은 ‘현악 4중주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베토벤 전곡을 연주하게 됐다. 현악 4중주단에는 일생의 과업이자 최후의 목표인 곡들이다.“처음 제안받았을 때 저는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습니다. 다른 멤버들은 반대했죠. 하지만 고통은 빨리 잊고, 성취감은 오래 간다고 하잖아요. 한 작곡가의 음악에 깊숙하게 들어가는 과정이 고통스럽더라도 연주자로 한층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노부스 콰르텟은 공연 회차마다 초기와 중기, 후기 작품을 고루 배치했다. 이원해는 “베토벤이 청년(초기), 장년(중기), 노년(후기)의 시기마다 어떤 생각과 감정, 음악적 깨달음을 갖고 곡을 썼는지 관객들이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이스라엘과 벨기에 연주 투어를 다녀온 노부스 콰르텟은 베토벤 전곡 시리즈 사이에 포르투갈 및 독일 음악제에 참가하고,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보우 데뷔 공연도 한다.
올해 베토벤이란 가장 높은 산을 넘고 나면, 다음 목표는 어떤 작곡자로 삼을지 궁금했다.“새로운 작곡가를 찾기보다 지금까지 해온 작곡가들을 반복할 생각입니다. 특히 베토벤은 연주자가 자신의 연주에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다섯 번은 전곡 연주를 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결성 20주년에 베토벤이나 쇼스타코비치 전곡 연주에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김재영)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