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수소사업 사들여 밸류체인 완성…"범한퓨얼셀 상장으로 사업 확장 가속"

정영식 범한산업 회장

중견기업의 수소사업 도전
GS·현대제철 사업 인수 이어
두산메카텍 '깜짝 인수' 화제
잠수함 연료전지 모듈기술 보유
지난 3일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자회사 두산메카텍의 인수 우선협상자가 발표되자 산업계와 투자은행(IB)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탄탄한 자금력을 갖춘 외국계 사모펀드(PEF) 등을 제치고 중견기업인 범한산업이 인수자로 낙점돼서다. 하지만 범한산업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들은 놀랍지 않다고 했다. 범한산업이 이미 대기업의 수소연료전지 관련 사업부를 잇달아 인수하면서 수소 밸류체인을 완성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핵심 자회사인 범한퓨얼셀을 상장시켜 수소사업을 더 빠르게 확장시킨다는 청사진도 현실화하고 있다. 정영식 범한산업 회장(사진)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두산메카텍의 액화수소 저장용기 설계 기술과 우수한 전문 인력을 활용해 수소전문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선박 기자재 회사에서 수소 회사로

1990년 설립된 범한산업은 선박, 잠수함, 발전소 등에 사용되는 초고압 공기압축기를 생산하는 회사다. 정 회장은 한국해양대를 졸업하고 중견 조선업체에서 3년간 일하다 서른이 되던 해 범한산업을 창업했다. 선박 기자재 유통업으로 시작해 잠수함에 들어가는 공기압축기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2000년대 초반 조선업황이 침체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정 회장은 선박용 수소연료전지 시장이 커질 것으로 판단하고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를 연료로 전기와 열을 생산해 동력을 일으키는 장치다. 폭발 위험이 큰 수소를 다루는 데다 선박용 연료전지는 공기가 없는 수중에서도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세계에서 독일 지멘스만 잠수함용 연료전지모듈 상업화에 성공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정 회장은 2015년 GS칼텍스의 군수용 연료전지 사업부문을 인수해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 주요 대기업이 입찰에 참여했지만 인력 양수 조건을 내세운 범한산업이 최종 인수자로 낙점됐다. 정 회장은 2018년 현대제철의 건물용 연료전지 시스템 사업부도 사들여 연료전지 분리판 기술과 연구 인력을 보강했다.

대기업이 축적해온 전지 기술을 토대로 범한산업은 2018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잠수함용 연료전지모듈 상업화에 성공했다. 이 모듈은 2018년부터 해군의 3000t급 장보고함에 공급되고 있다.

32년 만에 그룹 첫 상장사 탄생

범한산업은 이달 핵심 자회사인 범한퓨얼셀의 상장을 앞두고 있다. 2019년 12월 수소연료전지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설립한 회사다. 범한퓨얼셀은 연료전지모듈에 사용되는 특수한 막전극접합제(MEA)와 분리판 제조 기술을 갖고 있다. 정 회장은 “지상에서 사용하는 일반 연료전지를 잠수함에 적용하면 금방 수명이 끝난다”며 “수중이라는 특수 상황에 맞게 효율적인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것이 기술력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범한퓨얼셀은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약 854억원)으로 공장을 증설하고 건물용 연료전지와 수소 충전기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사업에 두산메카텍의 화학공업기기와 수소액화기술을 접목해 시너지를 낸다는 전략이다. 정 회장은 “수소사업과 관련한 밸류체인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범한퓨얼셀은 9일까지 일반청약을 받고 오는 17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다. 공모가 기준 예상 시가총액은 3507억원이다. 범한퓨얼셀은 범한산업이 최대주주로 68.18%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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