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 앙심"…방화 용의자, 흰천 덮은 물건 들고 건물 들어갔다(종합)

경찰, 용의자 건물 진입 CCTV 확보…발화 원인 감식
같은 건물 입주자들, 긴박한 탈출…"건물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려"
"앙심을 품고 전화를 몇 번 했다고 합니다. "
7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빌딩 화재 현장.
9일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취재진에 용의자 A(53)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용의자 A씨가 B 변호사에게 졌다"며 "그 뒤로 사무실에 항의 전화를 몇 번 했다고 같은 사무실을 쓰는 C 변호사 사무장에게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B 변호사는 지방에 다른 재판으로 출장을 나가면서 참사를 피했다"고 말했다. 용의자 A씨는 불이 난 현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민사소송에서 B 변호사를 선임한 상대방에게 패소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장에는 사무실 직원이자 사망자인 6명도 함께였다. 이번 사건 사망자 7명은 모두 폐쇄적인 구조의 한 사무실에서 발견됐다.

작은 창문이 있었지만 연기를 배출해내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소방 당국은 분석했다.

유일한 생존자는 C 변호사의 사무장이었다. 그는 별도로 개인 방을 사용한 덕에 화를 면했다.

사건이 발생한 사무실은 두 변호사가 합동으로 개업한 곳이다.

평소 변호사 2명을 포함해 10명이 내근했는데, 이날은 7명이 안에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방화 용의자가 사무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질렀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또 용의자 시신 전반에 불에 탄 흔적이 명백해 분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경찰은 용의자가 이날 오전 10시 53분께 혼자 마스크를 쓰고, 건물에 들어서는 CC(폐쇄회로)TV 화면을 확보했다.

한 손에는 흰 천으로 덮은 확인되지 않은 물체를 든 상태였다.

경찰은 이 천에 덮인 물체가 인화 물질이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3시부터 합동 감식을 진행해 인화 물질 등이 무엇인지 발화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불이 날 당시 같은 건물 안에 있었던 생존자들은 긴박했던 순간들을 전했다.

이들은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너무 많아 밑으로는 대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는 "건물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한 변호사는 "대피 과정에서 봤는데 최초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변호사 사무실 문이 열려 있었다.

방화범이 문을 연 채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지른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건물 안에 있었던 한 20대 여성은 "갑자기 2층에서 고함치는 소리랑 뭐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며 "처음엔 불이 난 줄 모르다가 연기가 올라와서 탈출하려고 했는데 연기 때문에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창문을 열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무사히 탈출한 직원들은 밖에서 만나 다친 데가 없는지 서로 안부를 물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