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교통안전을 운임으로 보장한다고?

임도원 경제부 차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화물연대의 총파업은 어찌 보면 4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2018년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주도하에 국회 법제화로 화물차 안전운임제가 도입된 게 발단이다. 화물연대가 이번에 총파업을 벌이면서 내건 주요 요구사항은 안전운임제 폐지 철회다. ‘폐지를 철회하라’는 복잡한 요구사항이 내걸린 이유는 이 제도가 3년 한시(2020년 1월 1일~2022년 12월 31일)의 일몰제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연말 폐지를 앞두고 화물연대가 ‘물류 인질극’을 벌이며 들고 일어난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례 찾기 힘들어

안전운임제는 ‘안전’과 ‘운임’이라는 단어가 기형적으로 결합한 제도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은 ‘화물차주에 대한 적정한 운임을 보장해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운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교통 안전을 일정 수준의 화물차주 운임 보장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례 없는 발상이 담겼다. 결국 물류업계의 최저임금인 셈이다. 화주는 화물차주에게 정부에서 고시한 안전운임 이상의 운임을 지급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최고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는 제도인 만큼 도입 당시부터 논란이 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법안 심사 과정에서 작성한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안전운임제를 한국과 같은 식으로 도입한 다른 국가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본은 비슷한 성격의 표준운임제를 운용하고 있으나 위반 시 처벌 조항이 없고 실제 표준운임이 적용된 사례도 없었다. 프랑스는 참고원가제를 근거로 한 자율운임제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국가는 전면적인 자율운임제를 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도입된 안전운임제에는 3년 한시의 일몰 조항이 붙었다.

3년간 안전운임제의 단맛을 본 화물연대는 대한민국 물류를 마비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제도 연장을 쟁취하겠다는 태세다.

물류산업 위축되면 차주도 피해

경제계는 안전운임제로 인해 국내 수출입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안전운임 평균 인상률은 2020년 12.5%, 지난해 1.93%, 올해 1.57%였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은 이 기간에 30% 이상 운송비가 올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화물 운송이 많은 50㎞ 이내 구간의 운송비 인상이 가팔랐다”며 “특수화물 등에 대한 할증폭도 커져 화주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화주기업들이 물류비 절감을 위해 운송위탁 대신 자가물류로 돌아서면 물류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안전운임제의 ‘안전’ 효과도 의문시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안전운임제가 시행된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교통량 급감으로 전체 교통사고는 8.7% 감소했지만 화물차 교통사고는 6.0% 줄어드는 데 그쳤다. 호주 정부는 과거 안전운임제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가 “도로안전을 운임의 법제화로 해결하려 들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폐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9일 박홍근 원내대표 주재로 화물연대 총파업 관련 간담회를 열고 안전운임제 연장을 논의했다.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제도를 좀비처럼 연명시키겠다는 것이다. 안전운임제 폐지는 비정상의 정상화다. 윤석열 정부는 물론 애초 이 사태에 근본적 책임이 있는 민주당도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노동계 표심에 눈이 멀었다간 시장이, 그다음엔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