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임 2배 올려달라"…레미콘 차주도 '화물연대 판박이' 파업

멈춰선 레미콘 공장

경남 지역 중심 레미콘 차주들
무리한 운반비 인상요구에다
비조합원 차량 운행 방해

"근로자 신분도 아닌데 파업
정부는 불법 이어져도 수수방관"

시멘트 공급까지 끊기며
건설현장마다 공사중단 속출
9일 충북 단양의 한 시멘트 공장에서 생산된 시멘트를 운송하려는 차량이 화물연대 관계자들의 저지로 멈춰서 있다. /독자 제공
화물연대 파업에 화물연대를 꼭 닮은 레미콘 차주들의 ‘판박이 파업’으로 레미콘업계가 코너에 몰렸다. 화물연대 소속 시멘트운송차량(BCT) 차주들의 파업으로 시멘트 공급이 중단된 데다 생산된 레미콘을 옮길 수단마저 꽁꽁 묶이면서 전국의 레미콘 공장들이 일제히 멈춰섰다.

9일 레미콘업계에 따르면 전국의 모든 레미콘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시멘트 공급이 지난 7일 중단된 이후 이틀 만에 시멘트 재고 물량도 바닥난 탓이다. 건물 골조 공사의 기초가 되는 레미콘은 주재료인 시멘트에 모래 자갈 등 골재를 섞어 만든다.
한 레미콘업체 대표는 “지난 8일 오후부터 상당수 공장이 가동을 중단해 9일부터 대부분 문을 닫고 직원들도 휴가를 보낸 상태”라고 말했다. 올 들어 원자재 가격 급등과 시멘트 수급난이 이어지면서 20%대를 맴돌던 레미콘공장 가동률은 사실상 0%가 됐다. 전국에 925곳의 레미콘업체가 있으며 종사자만 3만 명에 달한다. 레미콘 업종은 96.8%가 중소기업으로 구성돼 있고 평균 영업이익률도 3%에 불과하다.

레미콘업계는 레미콘 차주들과의 운반비 인상 협상까지 맞물려 초비상상태다. 수도권을 비롯해 경남과 호남, 대구·경북 등 일부 지역에선 운송차주와 업계 간 운반비 협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남지역에서 3주간 파업 사태가 이어졌고 수도권으로 파업이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경남지역 레미콘 수요의 절반가량을 담당하는 창원·밀양·창녕·함안의 31개 레미콘업체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운송차주들의 파업이 지난 5월 18일부터 3주간 이어지면서 극심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운송차주들은 협상 초기 5만원 수준인 회차당 운반비를 10만원으로 두 배 이상 올려줄 것을 요구해 협상 자체도 불가능하다.

레미콘 타설이 막히자 부산신항만 공사 등 지역 건설 현장의 가동이 일제히 중단됐다. 이 지역 레미콘업체 관계자는 “내년 새 학기에 맞춰 인근 고등학교 3~4개가 신축 공사 중이었는데, 이번 파업으로 중단되면서 학생들의 등교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크다”며 “아파트 입주도 연기될 판”이라고 말했다.

레미콘 가격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6% 오른 데 비해 운반비 가격은 40% 가까이 상승했다.무리한 운반비 인상 요구와 함께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간 세력 싸움, 비조합원에 대한 보복, 영업방해 등도 고질적인 문제다. 운송차주들이 파업에 참여하도록 차량 번호판을 강제로 떼거나 참여하지 않는 차량의 타이어에 펑크를 내는 등 보복 피해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미콘업계는 운송차주의 지위가 근로자가 아니라 사업자라는 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14년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한 것도 비판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은 레미콘 운송차주가 노조에 가입해 불법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최근 고용노동부에 조치를 촉구했다. 레미콘조합 측은 “레미콘 운송차주는 2006년 대법원, 2014년 울산지방법원 판례에서 이미 근로자·조합원 지위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고 고용부 역시 2008~2009년 시정조치를 한 사례가 있다”며 “하지만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