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양복, 여성은 한복…근대 남녀 옷이 달랐던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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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1960년대 동아시아 복식 분석한 '패션, 근대를 만나다' 출간 1920년대 촬영된 결혼식 사진엽서 중에는 부부 복장이 확연히 다른 자료가 있다. 신랑은 양복을 입었으나, 신부 옷은 한복이다.
'남성은 양복, 여성은 한복'이라는 도식은 1907∼1910년 순종과 순정효황후 초상사진, 1907년 무렵 윤치호의 가족사진에서도 확인된다.
근대 시기 한국 상류층 여성들의 전통복식 선호 현상은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1889년 촬영된 사진에서 일본 쇼켄 왕후는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목걸이와 팔찌를 했다.
국내외 학자들이 근대 아시아 패션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신간 '패션, 근대를 만나다'에서 주경미 충남대 강사는 남성은 양복, 여성은 전통복식을 입은 모습이 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났지만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주 강사는 성별에 따른 복식 차이를 지배국 남성이 피지배국 여성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보면서 여성에게 낭만적 역할을 부여한 결과로 풀이해 온 경향이 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한국 상류층 여성의 한복 착용은 자신의 혈통에 대한 자존감과 정체성 유지를 위한 무언의 민족주의적 행동이자 소극적 능동성의 표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 강사는 "일제의 강제 개항, 명성황후 시해와 친일파 관료가 주도한 단발령 등 역사적 상황을 보면 서양 복식 도입은 일제가 국권 침탈을 위해 강제로 시도한 제도이자 친일행위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이어 한국 상류층 남성들은 정치적 강요로 양복을 입어야 했지만, 상류층 여성들은 궁궐과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 머물렀기 때문에 전통적인 복식과 장신구 문화를 고수할 수 있었다고 짚는다. 변경희 미국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FIT) 교수는 아시아에서 유럽 모직물 수입으로 일어난 독특한 현상인 '하이브리드 댄디즘'을 논했다.
하이브리드 댄디즘은 전통 의복을 근대적 의상이나 장신구와 함께 착용하는 것을 뜻한다.
1937년 사진에서 소설가 이광수가 두루마기를 걸치고 서양식 중절모를 쓴 것이 일례다.
변 교수는 "조선총독부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값비싼 모직으로 만든 맞춤 정장 차림의 근대 남성 이미지를 홍보했다"며 "하이브리즈 댄디즘은 식민지배 압력을 받던 동아시아 중산층과 노동자층 시민이 이끌어간 근대 복식의 대표적 표현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또 난바 도모코(難波知子)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 교수는 일본에서 획일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교복이 학교의 일방적 지시로 정착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교복과 학생복을 포함한 일본 복식의 개혁은 학교, 학생, 가족, 제조업체 간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변 교수와 미술사학자 아이다 유엔 웡이 엮은 책에는 이외에도 예복, 군복, 제례복, 장신구 등 1880∼1960년대 동아시아 패션 변화상을 다룬 다양한 글이 실렸다.
필진에는 한국, 중국, 일본, 영국, 인도 학자들이 참여했다.
논고의 구체적 주제는 '한국의 근대 복식정책과 서구식 대례복의 도입', '옷차림으로 보는 메이지유신', '위안스카이의 제사관복도에 나타난 제례복', '머리 모양에서 머리 장식으로', '여성의 장신구 부채', '시각문화로 읽는 20세기 타이완의 패션' 등이다.
저자들은 "패션의 역사는 몸과 성(性), 권력과 통제, 상업과 제조업, 예술과 대중문화 같은 주제들이 녹아 있는 비옥한 대지"라고 강조했다.
원서는 2018년 미국에서 '근대 아시아의 패션에 나타난 정체성과 권력'을 제목으로 출간됐다.
국내에서 나온 책은 원서에 없는 내용이 많이 보강됐고, 도판도 추가됐다.
어려운 용어는 주석을 달아 상세히 설명했다. 사회평론아카데미. 612쪽. 3만5천원. /연합뉴스
'남성은 양복, 여성은 한복'이라는 도식은 1907∼1910년 순종과 순정효황후 초상사진, 1907년 무렵 윤치호의 가족사진에서도 확인된다.
근대 시기 한국 상류층 여성들의 전통복식 선호 현상은 일본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1889년 촬영된 사진에서 일본 쇼켄 왕후는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목걸이와 팔찌를 했다.
국내외 학자들이 근대 아시아 패션에 관해 쓴 글을 모은 신간 '패션, 근대를 만나다'에서 주경미 충남대 강사는 남성은 양복, 여성은 전통복식을 입은 모습이 아시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났지만 한국만의 특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주 강사는 성별에 따른 복식 차이를 지배국 남성이 피지배국 여성을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보면서 여성에게 낭만적 역할을 부여한 결과로 풀이해 온 경향이 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한국 상류층 여성의 한복 착용은 자신의 혈통에 대한 자존감과 정체성 유지를 위한 무언의 민족주의적 행동이자 소극적 능동성의 표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 강사는 "일제의 강제 개항, 명성황후 시해와 친일파 관료가 주도한 단발령 등 역사적 상황을 보면 서양 복식 도입은 일제가 국권 침탈을 위해 강제로 시도한 제도이자 친일행위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이어 한국 상류층 남성들은 정치적 강요로 양복을 입어야 했지만, 상류층 여성들은 궁궐과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 머물렀기 때문에 전통적인 복식과 장신구 문화를 고수할 수 있었다고 짚는다. 변경희 미국 패션 인스티튜트 오브 테크놀로지(FIT) 교수는 아시아에서 유럽 모직물 수입으로 일어난 독특한 현상인 '하이브리드 댄디즘'을 논했다.
하이브리드 댄디즘은 전통 의복을 근대적 의상이나 장신구와 함께 착용하는 것을 뜻한다.
1937년 사진에서 소설가 이광수가 두루마기를 걸치고 서양식 중절모를 쓴 것이 일례다.
변 교수는 "조선총독부는 신문과 잡지를 통해 값비싼 모직으로 만든 맞춤 정장 차림의 근대 남성 이미지를 홍보했다"며 "하이브리즈 댄디즘은 식민지배 압력을 받던 동아시아 중산층과 노동자층 시민이 이끌어간 근대 복식의 대표적 표현 방법이었다"고 말한다.
또 난바 도모코(難波知子)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 교수는 일본에서 획일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교복이 학교의 일방적 지시로 정착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교복과 학생복을 포함한 일본 복식의 개혁은 학교, 학생, 가족, 제조업체 간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졌다"고 평가한다.
변 교수와 미술사학자 아이다 유엔 웡이 엮은 책에는 이외에도 예복, 군복, 제례복, 장신구 등 1880∼1960년대 동아시아 패션 변화상을 다룬 다양한 글이 실렸다.
필진에는 한국, 중국, 일본, 영국, 인도 학자들이 참여했다.
논고의 구체적 주제는 '한국의 근대 복식정책과 서구식 대례복의 도입', '옷차림으로 보는 메이지유신', '위안스카이의 제사관복도에 나타난 제례복', '머리 모양에서 머리 장식으로', '여성의 장신구 부채', '시각문화로 읽는 20세기 타이완의 패션' 등이다.
저자들은 "패션의 역사는 몸과 성(性), 권력과 통제, 상업과 제조업, 예술과 대중문화 같은 주제들이 녹아 있는 비옥한 대지"라고 강조했다.
원서는 2018년 미국에서 '근대 아시아의 패션에 나타난 정체성과 권력'을 제목으로 출간됐다.
국내에서 나온 책은 원서에 없는 내용이 많이 보강됐고, 도판도 추가됐다.
어려운 용어는 주석을 달아 상세히 설명했다. 사회평론아카데미. 612쪽. 3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