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 처치실에서 숨진 반려견…"내세울 법조차 없어" [김성희의 멍냥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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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발치 전 처치실 들어간 지 5분도 안돼 응급상황“어떻게 한 줄 짜리 응급상황 진료기록을 그렇게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을까요”지난달 24일 이준원 씨는 자식처럼 키운 반려견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4살 장모치와와 짱아는 서울의 한 동물병원에서 어금니 발치 수술을 받기 전 수액 처치를 받던 중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수술 전날까지만 해도 딱딱한 사료도 잘 씹어 먹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수술 전 처치실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인 모를 응급상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짱아 아빠’ 이 씨는 병원에 응급상황 관련 진료기록을 떼 달라고 요구했지만 제대로 된 자료를 서류상으로 받아볼 수 없었습니다. 진료기록부 발급은 수의사의 재량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현행 수의사법(12조)에서는 보호자가 동물병원에 진료기록부 열람 및 발급을 요구하는 경우 이를 허용할지, 거부할지조차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짱아처럼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보호자들은 병원에서 제대로 된 자료를 주지 않는다면 진료기록에 접근조차 할 수 없습니다. 병원에서는 이 같은 법을 들이밀며 “확인하고 싶거든 눈으로만 보고 가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떠났지만 남은 건 한 줄 짜리 응급상황 진료기록
수의사법 뜯어고쳐 '진료기록서 발급 의무화' 명시해야
이 씨는 그저 어떤 과정에서 짱아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했는지 기록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병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텅 빈 응급상황 관련 진료기록을 보고 망연자실했습니다. 짱아의 혈압‧산소포화도 같은 바이탈은 어떤지, 어떤 약물이 어떤 경로로 투입됐는지, 응급상황에서 어떤 처치를 했는지 등 의료진이 기록했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추후 메일로 제공 받은 진료차트에는 ‘응급처치 진행(즉시 삽관, CPR 진행 및 응급 약물 투여)’이라는 한 줄 짜리 기록 뿐이었습니다.
이 씨는 소송을 위해 경찰서와 변호사를 찾았지만 “주검을 화장해 부검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주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만 들었습니다.기사에 언급된 동물병원 측은 "사망한 강아지는 수액을 맞기도 전에 쇼크를 일으켰고, 응급처치 전에 이미 항문이 열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직후 보호자와 함께 cctv를 열람했고, 수술실 출입을 통해 투약 상황을 확인시켜드렸으며, 진료기록도 전부 제공했다"고 알려왔습니다.
다만 이준원 씨는 짱아의 당시 상태에 대해 "짱아가 수액 라인을 연결한 상태였기에 의료행위 도중 쓰러졌다는 사실은 명백하다"고 반박했습니다. CCTV 열람과 관련해선 "사고 당일 영상을 구역을 나눠 빠르게 돌려보는 정도로밖에 확인하지 못했고, 추후 2주가 지나 파일이 삭제됐다는 이유로 영상을 제공 받지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약물 투약 상황 확인에 대해 이 씨는 "사고 당일 당시 수술실에 약물 병이 뜯겨있는 것을 확인했을 뿐 실제로 그것이 들어간 것인지, 또 그것만 들어간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진료기록을 전부 제공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병원 의료행위 도중 사망했지만 응급상황시 어떤 처치를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반려동물 의료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 표류 중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많아질수록 동물병원 관련 피해도 늘고 있지만 법적인 논의는 ‘제자리걸음’ 입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동물병원에서 발생한 소비자 피해 상담건수는 △2016년 331건 △2017년 358건 △2018년 253건 △2019년 337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소비자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선 진료기록 등 자료 확보가 우선인데, 반려동물 보호자들은 법에 막혀 그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동물 진료기록부 발급 요구에 대한 국민 청원이 빗발치자 국회에서도 수의사법 개정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의사들의 거센 반대로 여러 차례 무산됐습니다. 21대 국회에서도 진료기록부 발급 의무화에 대한 조항을 담아 여러 차례 수의사법 개정안이 올라왔지만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 중입니다. 대한수의사회는 “보호자의 알 권리에 공감한다”면서도 “진료내역이 공개될 경우 처방 없이 구매할 수 있는 동물의약품의 오남용이 우려된다”고 주장합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으로는 역부족
법무부는 지난해 9월 현행법상 ‘물건’에 해당하는 동물의 법적 지위를 격상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민법 제98조의 2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하기로 한 것인데요.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동물에 대한 위자료 청구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동물을 재물로 보기 때문에 동물병원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물건의 시가’에 해당하는 값만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수의사법이 현행 수준에 머물러있는 한 민법 개정으로는 동물병원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진료기록 발급 의무화’를 법에 명문화하지 않는 이상 법적 공방이 이어지더라도 증명은 오롯이 보호자의 몫이 돼버리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 보호자가 법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더라도 수의학적인 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료기록서도 없고, CCTV 영상도 없다면 그런 시도조차 할 수 없습니다.김동훈 법무법인 로페리의 동물법 전문 변호사는 “현행 의료법에서는 진료기록서 발급이 의무이다 보니 진료기록서에 처치 기록이 안 적혀 있다면 법적으로 불리해지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록한다”면서 “현행 수의사법도 의료법에 준해서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반려견 잃은 슬픔, 가족 잃은 슬픔과 같아”
“찜찜한 마음이 들었을 때 멈췄어야 했는데. 짱아를 수술실에 들여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짱아 아빠’ 이 씨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직장도 일주일 이상 나가지 못했습니다. 4년 전 농장에서 만난 짱아는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치아가 성치 않아 늘 병원 신세를 지곤 했습니다. 아직도 ‘마지막 순간까지 수술 여부를 고민했어야 하는데’하며 후회 중입니다.이 씨와 가족들은 2주의 시간이 지났지만 짱아의 빈 자리가 확 느껴질까 집 앞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앞을 서성 거리는 순간이 많습니다. 짱아의 유골함을 붙들고만 있어도 그저 눈물만 흐릅니다. 같이 살던 반려견 ‘짱구’도 빈자리가 이상한지 짱아의 채취가 남아있는 수건, 대소변 패드 등을 킁킁거리곤 합니다. 이 씨는 하소연합니다. “반려동물 1500만명 시대에 반려동물이 억울하게 죽어도 이를 보호해 줄 법은 대한민국에 없다”고.
‘4년차 뽀솜이 이모’ 멍냥기자입니다. 전체 가구의 30%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 전국 1448만명 ‘펫밀리(Pet+Family)’들을 위해 양질의 정보를 담겠습니다. 멍냥이들이 입고, 먹고, 살아가는 의식주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다룹니다.김성희 기자 sung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