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졌던 미군 건물 보니 새로워"…용산공원 개방 첫날 '북적'

방문자 QR코드 등록에 일부 관람객 진땀…"부지 오염 크게 걱정 안 해"
정부 "개방 부지 위해성 없어"…환경단체는 개방 중단 촉구
"얼마 전에는 청와대를 보고 왔는데, 용산기지도 개방한다고 하니 일찍부터 신청했죠. 궁금하잖아요?"
서울 용산공원의 문이 열린 10일 신용산역 인근 '14번 게이트' 앞에서 만난 박환석(65)씨는 청와대부터 용산공원까지 방문 신청에 모두 성공했다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120년 가까이 '금단의 땅'으로 여겨지던 용산 미군기지가 이날부터 사전 예약을 한 일반 시민에게 열흘간 공개된다.

개방 30분 전인 오전 10시 30분께부터 출입 관문인 14번 게이트 앞은 양산을 들고 등산 모자를 쓴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오전 11시께 첫 방문을 환영하는 군악대·의장대 공연을 시작으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방문객들이 이국적인 분위기의 장군 숙소를 거쳐 천천히 용산공원을 거닐기 시작했다. 출입문 인근 종합안내소 앞에서 만난 나의현(27)씨는 감회가 새롭다며 미소 지었다.

미군 부대에서 통역병으로 복무했다는 나씨는 "예정보다 부지가 빨리 반환돼 더 의미있다"며 "군복무로 익숙할 줄 알았는데, 미군 잔재가 남아있는 공원을 보게 되니 이색적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 집무실 남측 구역 플라타너스 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던 장모(71)씨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사람들도 쓰고 이후엔 미군이 여태 있었지 않았나. 겉으로만 보던 이곳이 얼마나 넓을지 궁금했다"며 전경을 둘러봤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남편과 공원을 찾은 정명자(74)씨는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컸고, 세월 속에 가려져 있던 건물들을 보니 새로웠다"며 "역사의 일부로 잘 보존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문 예약을 하지 않고 공원을 찾은 고령의 방문객들은 안내데스크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부천에서 왔다는 남모(73)씨는 "예약하라는 안내를 방송에서 보지 못했는데 이게 무슨 경우냐"며 "일부러 여기까지 구경하러 나왔는데 너무 서운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관람객들은 입장 전 휴대전화 QR 코드를 이용해 방문자 등록을 해야 한다.

중장년 관람객 상당수는 QR 코드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지 않아 방문자 등록이 다소 지연되기도 했다.

개방된 부지 내 오염물질에 대해 방문객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최모(67)씨는 "미군 부대에서 오랫동안 막 쓰면서 오염됐다는 사실은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었다"면서도 "근본적인 문제긴 하지만, 우리는 잠시 왔다가는 거니깐 크게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하루 다섯 차례 500명씩 나눠 입장하는 방문객들은 입장 후 2시간 동안 공원을 둘러볼 수 있다.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2시간 관람은 인체에 전혀 유해하지 않다는 평가 결과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이날 "현재 개방된 부지는 위해성이 없다"며 "오염물질이 있는 곳은 배제하면서 동선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유류와 중금속으로 오염된 해당 부지를 정화작업 없이 임시 개방하는 것이 '불법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해왔다.

녹색연합 등은 이날도 신용산역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용산공원 시범 개방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공원 부지에서는 벤젠, 페놀류, 다이옥신 등의 독성물질이 검출된 상황"이라며 "오염정화 없는 보여주기식 시범 개방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용산공원 시범 개방은 19일까지 열흘간 이어진다. 방문 신청은 방문 희망일 5일 전부터 관련 홈페이지 3곳(www.yongsanparkstory.kr, www.yongsanparkstory.com, www.yongsanparkstory.net)과 네이버 예약 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