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 믿고 가입했던 암보험…막상 걸리니 돈 못 준답니다"[김수현의 보험떠먹기]

설계사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 유도 사례
고지의무 위반…보험사, 보험금 지급 거부

단, 피보험자 고의·중대한 과실 아닐 시
의무 위반 無…보험사, 계약 해지 불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최근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위암 초기 사실을 알게 됐다는 30대 최모씨. 첫 진단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이고 치료를 결심했지만, 돈이 문제였습니다. 미혼인 최씨가 치료받기 위해 당장 일을 그만두게 되면 생활비는 물론 입원비, 수술비 등 막대한 부담을 감당해야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문득 3년 전(2019년 말) 위암 보장이 가능한 보험에 가입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보험사에 연락을 취한 최씨는 며칠 뒤 들려온 보험사 측 답변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최씨가 보험 계약 당시 위염 치료를 받고 있었단 사실을 보험사에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입니다. 보험 가입 당시 자신의 과거 병력을 확인해가며 나름 꼼꼼히 기재했다고 생각했던 최씨는 불현듯 스치는 한 장면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당시 가벼운 위염 증세로 치료받고 있다는 내용을 보험설계사에 구두로 알렸으나 중요한 질병이 아니니 굳이 적을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고, 이에 관련 사항을 보험 청약서에 기재하지 않고 넘겼던 사실이 생각난 것입니다. 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대처가 없단 무기력함과 3년간 꾸준히 내 온 보험료를 모두 날려버리게 됐단 자책감에 최씨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암, 백혈병 등 10대 질병을 앓았던 분이라면 보험 상품을 계약할 때 청약서 질문 항목과 상세히 자신의 투병 사실에 대해 고지하곤 합니다. 자신의 과거 병력이 추후 보험금 청구 시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한 데 따른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염, 식도염, 장염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사람의 생사와 큰 관계가 없다고 느끼는 질병에 대해서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청약서에 관련 내용을 기재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해당 질병이 자신의 건강을 판단하는 데 의미 있는 정보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보험 청약서 질문을 꼼꼼히 읽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특정 보험 상품 계약 당시에는 단순한 문제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병력이 차후 자신의 건강 이상과 연관성을 가진 사안으로 밝혀진다면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보험을 해지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고지의무'는 정확히 무엇을 뜻할까요. 고지의무란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현재 병증, 과거 병력, 직업 등에 대해 사실 그대로를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의무입니다. 고지의무에 담긴 정보는 모두 보험사가 개개인의 보험 사고 발생 가능성을 측정하는 근거로 판단됩니다. 이를 상법 제651조에서는 '고지의무', 보험 약관에서는 '계약 전 알릴 의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관련 내용을 밝히지 않거나 자신의 중대한 과실로 의무를 위반한 경우, 보험사는 정당한 사유에 의해 보험 계약을 해지하거나 보험 사고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고지의무 위반 시 보험회사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내,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단, 예외는 있습니다. 보험설계사가 보험 가입을 종용하기 위해 고지를 방해한 경우 보험사는 계약 해지 또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사례를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에게 고지할 기회 자체를 주지 않거나 부실 고지를 권유한 경우로 판단하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위 사례처럼 보험계약자가 자신의 주요 병력을 보험설계사에게는 구두로 설명했는데, 보험설계사가 보험 청약서에 굳이 기재할 필요가 없다고 해 넘긴 경우는 어떻게 판단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험사가 정상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사안에 해당하게 됩니다. 보험계약자가 고지의무를 위반했더라도 그것이 보험계약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것이란 점이 증명돼야 보험사가 계약 해지 또는 보험금 지급 거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설계사가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를 방해한 경우엔 이에 해당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상 보험상품의 표준약관에는 '보험설계사 등이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고지할 기회를 주지 않았거나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사실대로 고지하는 것을 방해한 경우, 즉 보험설계사가 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사실대로 고지하지 않게 하였거나 부실한 고지를 권유했을 때' 보험사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고 규정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설계사가 고지사항을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사실에 대해 입증할 수 있는 경우, 보험계약자는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보험설계사에 자신의 병력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이를 기재하는 데 방해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자료가 없다면, 해당 보험설계사가 등록된 금융사 또는 보험사에 자료 열람을 요구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설계사가 보험 계약 과정에서 고지의무를 방해한 경우 이를 증명해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계약자에게 있다. 따라서 계약 전 알릴 의무 사안인지가 불분명하다면 청약서 질문표에 일단 기재하는 것이 안전하며, 보험사에 건강검진 결과 자료 등을 제공해 사전에 중요한 사항인지를 일일이 문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만약 비슷한 사례로 보험사와 분쟁을 겪고 있다면 금융사에 열람요구서를 요청하거나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해 보험설계사로부터 녹취록을 받아내는 것이 보험사의 보험금 부지급을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 내용은 특정 사례에 따른 것으로, 실제 민원에 대한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여부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