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먹는 메모장·MRI 주유소…이색 日기업들

일본 후비기

김인권 지음
메이킹북스
265쪽│1만2000원
“우리 잠깐 회의합시다.”

점심도 못 먹고 보고서를 쓰는 와중에 상사가 소집한 ‘번개 회의’에 끌려들어가 본 경험이 있는가. 끝날 듯 이어지는 회의에 혈당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은커녕 숨 쉬기조차 힘들어지는 악몽의 시간. 어느 날 일본의 한 SNS에 “조용한 회의석상에서 나 혼자 꼬르륵거리는 공복의 소음을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말이 올라왔다.145년 된 인쇄회사 직원은 이 글을 보자마자 ‘먹는 메모장’ 개발에 나섰다. 감자 전분과 올리브유 등으로 만든 식용 종이에 오렌지, 딸기, 바닐라, 카레 등 4가지 향료를 넣었다. 종이 중앙에 있는 음식 그림을 문지르면 그 냄새가 나면서 식욕을 돋운다. 메모지 20장과 특수 식용 펜을 합친 가격은 2000엔(약 2만2000원). 출시되자마자 완판(완전 판매)되며, 직장인 사이에 화제가 됐다.

‘일본은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말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일본후비기》는 일본의 최신 유통 트렌드, 100년 기업의 장수 비결, 대전환에 성공한 회사 등 일본의 최신 트렌드를 집대성한 책이다.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사회 이슈도 담았다. 저자는 30여 년간 LG그룹과 LF 등에서 라이프스타일업계 홍보전문가로 일하며 일본을 깊이 들여다본 ‘일본통’이다.

책의 주제는 넓고 깊다. 산업구조와 사회·인구구조 변화를 겪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어떤 아이디어로 돌파구를 찾아냈는지 꼼꼼하게 분석한 게 인상적이다. 주유소를 ‘뇌 MRI(자기공명영상) 간편 검사소’로 바꾼 이데미쓰 코산도 그중 하나다. 테슬라가 촉발한 전기차 경쟁으로 주유소가 골칫덩이가 되자 6400여 개 주유소를 ‘뇌 스마트 스캔 센터’로 바꾼 것. 15분간 뇌를 스캔하는 데 드는 비용은 1만9250엔으로 병원 MRI(5만~7만엔) 비용의 절반도 안 된다. 이 덕분에 요즘 일본의 트럭, 버스 운전사들은 주유소를 병원처럼 이용한다.갈수록 상승하는 일본 내 이직률을 해결하기 위해 창업한 사례도 소개한다. ‘직업여행사’는 다른 직장, 다른 직업을 여행하듯 체험해보고 자신에게 맞는지 결정할 수 있는 서비스다. ‘퇴직 대행 서비스’도 인기다. 건당 50만원을 내면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퇴직 의사를 전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