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학부 증원으론 인력부족 해결 못해"

국가인재경영연구원 포럼

석박사 인력 확보 특단대책 필요
이공계 통합선발로 정원 늘려야
"첨단학과 일몰제도 검토해볼 만"
국가인재경영연구원이 10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연 ‘윤석열 정부 교육부 장관에게 바란다’ 포럼에서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배 교수, 김경범 서울대 교수. /허문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교육부에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강력히 주문한 데 대해 교육 전문가들은 “반도체 학부 정원을 늘리는 방안만으로는 일자리 미스 매치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학부 수준에서 특정 학과 정원을 확대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진단이다.

국가인재경영연구원은 10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윤석열 정부 교육부 장관에게 바란다’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산업계 수요에 맞춘 대학 개편 방안을 중심으로 교육부가 추진해야 할 정책 좌표를 제시했다.

文정권 방식 답습해서는 안돼

전문가들은 반도체 등 특정 산업에 관한 학과 정원을 늘리는 방식은 이전 정권에서도 시도했지만, 성공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지낸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는 “이공계 대학 정원에 대한 획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첨단학과 입학정원을 4000명 늘린 방식 그대로 이번 정부에서도 몇천 명 더 늘린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2년 동안 전공 일자리 미스 매치 문제는 계속 지적됐음에도 눈에 띄는 성과가 없다는 건 다른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학부 중심의 접근책으로는 산업계가 정말 필요로 하는 고급 인력을 양성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대 학생부 종합전형 틀을 설계한 김경범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반도체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은 석사 이상 인력”이라며 “현재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모든 대학원은 정원만큼 학생을 못 뽑아 붕괴 상태인데 첨단산업 분야도 대학원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일몰제’ 첨단학과 신설 제안

대학 정원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이 특임교수는 “현재 이공계 대학 정원은 전체의 37%밖에 되지 않는다”며 “지엽적으로 특정 학과를 신설하는 대신 모든 학과를 통합해 모집하고 3·4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통합학과, 통정원’ 체제로 바꿔야 이공계 정원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일몰제’로 첨단학과를 신설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배 교수는 “반도체학과뿐만 아니라 각종 신산업 학과를 계속 만들어야 할 텐데, 경직적인 조직인 대학 입장에서는 학과를 신설하면 65세까지 정년이 주어지는 교수를 채용해야 해 부담이 크다”며 “탄력적, 한시적인 일몰제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교육부 혼자 해결 못하는 것 수두룩”

교육부가 첨단산업 인재 양성이란 중대한 과제를 맡았지만 부처 단독으로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배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네 번째 교육부 폐지가 언급됐는데, 교육부에는 수모”라며 이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제도를 혁신하지 못하면 이제 교육부는 진짜로 없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교육부가 스스로 정책을 생산하는 기능이 없어진 지 오래”라고 진단했다. 교육부가 효과적인 정책을 추진하려면 각 교육청,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야 하고, 올해부터는 국가교육위원회까지 더해져 무엇을 해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서울, 인천, 경기는 이번 지방선거 결과 지자체와 교육감 정치 성향이 다르니 정책 추진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현재 교육청 소관인 지방교육교부금을 대학과 나눠 쓰는 문제, 수도권 대학 정원 문제 등은 교육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한편 윤 대통령의 지적 이후 정부와 여당은 합심해 규제 개혁에 착수했다. 교육부는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2만 명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전날 이날 오후 공개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외부 일정을 취소하고 내부적으로 첨단산업 인재 양성 방안 마련에 몰두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