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건물주들이 뉴욕시를 상대로 소송한 이유

뉴욕 건물주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로 '로컬 법 97'이 떠오르고 있다. 이 법은 건물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뉴욕시는 전체 탄소 배출량의 4분의 3이 건물에서 나온다.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건물에 따라 수백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
[한경ESG] ESG NOW
고층 빌딩이 가득한 뉴욕 맨해튼 전경. 2024년부터 '로컬 법 97'가 적용되면 2만5000제곱피트 이상의 건물은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지난 5월 뉴욕의 건물주들은 뉴욕시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탄소배출량에 따라 처벌하겠다고 밝힌 ‘로컬법 97(Local Law 97)’ 때문이다. 뉴욕 건물주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로 떠오른 로컬법 97은 건물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건물 소유주는 건물의 탄소배출량이 기준을 얼마나 초과하는지에 따라 벌금을 내야 한다.

2019년 통과한 이 법은 기후변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기후변화가 전례 없이 가속화되는 데다 온난화 추세가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일반인도 그 심각성을 체감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후변화는 온실가스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탄소 순배출량을 의미하는 탄소중립(넷제로)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뉴욕시 배출량 중 건물이 71% 차지

뉴욕시 의회는 그중에서도 건물에 집중했다. 뉴욕시 전체 배출량의 4분의 3가량을 건물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뉴욕시 의회에 따르면, 뉴욕시 전체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 건물이 71%를 차지한다. 운송(21%), 대중교통(3%), 가로등(1%) 등의 비중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물에서 사용하는 전기, 냉난방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가 모두 온실가스 배출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뉴욕시 의회는 로컬법 97에 대해 “뉴욕시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시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 법의 규제를 받는 건물은 2323m2 이상 규모의 건물이다. 뉴욕의 100만 개 건물 중 5만 개 정도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에 해당하는 건물은 2024년부터 배출량을 줄여 2030년에는 1990년 수준에서 40%, 2050년에는 80%까지 감축해야 한다. 맞추지 못하면 큰 벌금을 내야 하는데, 배출량의 메트릭톤당 268달러의 벌금을 부과한다. 건물에 따라 수백만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될 수 있다.건물주들은 벌금이 너무 가혹하다고 주장한다. 이번 소송에서 건물주협회의 변호사를 맡은 랜디 마스트로는 “처벌과 사형선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고 정부가 걱정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부동산 소유주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수준의 법안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뉴욕시 건물 관리를 담당하는 ‘빌딩부(Department of Buildings)’에서는 법을 시행하기 위한 규칙을 만드는 중이고, 몇 달 안에 부동산 소유주에게 추가 지침을 발표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약간의 예외는 인정하기로 했다. 법을 준수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을 증명하는 부동산 소유자는 벌금이나 배출 캡을 줄일 수 있다.또 임대인 보호가 잘 진행되는 건물도 혜택을 볼 수 있다. 월세가 규제되는(rent-regulated) 방이 전체 건물의 35%를 넘으면 된다. 이런 집은 임대아파트처럼 월세를 집주인이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서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시 입장에서도 시민들의 주거를 위해 노력하는 건물에는 혜택을 주는 셈이다.

환경 개선에 필요한 돈도 빌려주기로 했다. 상업용 부동산 평가 청정에너지(Commercial Property Assessed Clean Energy, C-PACE) 금융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공사를 하는 데 필요한 돈을 저금리로 빌려준다.

2030년 전체 건물 75%가 규제 대상

하지만 아직 탄소거래권 등을 사용하는 것을 허가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건물주가 갖고 있는 건물 간에, 혹은 도시 전체에서 배출권을 거래하는 방식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재까지는 이 거래가 허용되지 않지만, 최종 결정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부동산 전문 매체 ‘더리얼딜’에서 지적했듯이 2년 후부터 적용되는 법을 피해가기 위해서는 이미 조치를 마련했어야 한다. 그런데 왜 건물주들은 아직 움직이지 않는걸까.

일단 첫 적용 시점인 2024년에는 해당하는 건물이 많지 않다. 3000개 정도의 건물만 영향권에 들어온다. 하지만 2030년이 되면 그 수는 가파르게 늘어난다. 더리얼딜에 따르면, 이때부터는 전체 건물의 75%가 규제를 받는다.

건물주들이 망설이는 또 다른 이유는 ‘돈’이다. 134개 건물에 3000의 주민이 사는 글렌 오크스 빌리지의 밥 프리드리히 회장은 글렌 오크스 난방 계획에 대한 연구에서 보일러를 개조하는 데 1700만 달러(약 212억원)에서 2000만 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공사를 해도 탄소배출량을 맞추지 못해 연간 80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거주자들은 보일러 교체 공사로 가정마다 관리비가 5% 올라 7200달러를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릭 애덤스 뉴욕시장이 벌금을 낮춰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애덤스 시장은 선거운동 기간 법안은 지지하지만, 벌금은 찬성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예외를 둔 것도 이런 기대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뉴욕시에서 정확한 로드맵을 발표하기 전까지 전환이 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환경 관련 단체는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고 제도를 피해갈 수 있는 예외를 마련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뉴욕 변화를 위한 모임(NY Communities for Change)의 기후 & 불평등 캠페인 책임자 피터 시코라는 “애덤스 행정부가 그들을 풀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건물 업그레이드를 미루는 퇴행적 지주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강영연 한국경제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