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 최우선…해외 곡물인프라 투자 기업에 자금 지원하겠다"

식량안보 위기…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에게 듣는다

기업 식량 유통망 확보 돕고
곡물 저장·물류시설 투자 때
내년부터 '장기 저금리 대출'
해외 비축 물량 국내 반입 때
손실 발생 시 기업에 보상

청년, 스마트팜 혁신 주도하게
토지 빌려주는 농지은행 사업
젊은층 우선권 주고 금융지원
영농상속공제 20억→30억으로
<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식량주권 확보” >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10일 경남 하동에 있는 청년농 기업 슬로푸드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 장관은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사 오지 못해 식량 주권이 흔들리는 일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막겠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민간 기업의 글로벌 곡물 인프라 인수 때 정부가 장기 저리(低利)로 자금을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취임 한 달째인 지난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곡물 인프라 투자는)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공급망이 흔들리는 시기에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해선 ‘곡물 엘리베이터(곡물저장·물류시설)’를 공략해야 한다”며 “세계 29개국이 식량 수출을 제한하는 등 식량 수급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돈이 있어도 식량을 사 오지 못해 식량 주권이 흔들리는 일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막겠다”고 했다.

또 “식량안보의 또 다른 축은 청년농 육성”이라며 “귀농·귀촌인에게 토지를 빌려주는 농지은행 사업에서 청년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가업 승계 농민을 위한 영농상속공제한도를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정 장관이 ‘청년 농업 경영인 간담회’를 위해 찾은 경남 하동의 농업법인 슬로푸드에서 이뤄졌다.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 농축산물 물가를 안정시킬 대책은 뭔가.

“연말까지 돼지고기, 밀, 대두유 등 주요 수입 품목에 대한 할당관세를 낮추고 밀가루값 상승분의 70%를 정부가 부담해주는 대책을 지난달 내놨다. 할당관세 인하 기간을 연장하거나 물량을 늘리는 걸 더 검토할 순 있겠지만 단기적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다고 본다. 이제부터는 국내 농업 혁신과 해외 주요 곡물 인프라 확보 등 중장기 대책을 집중 추진할 계획이다.”

▷글로벌 곡물 인프라 확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세계 곡물 시장은 카길, ADM 등 곡물 메이저들이 좌지우지한다. 이들은 밀, 옥수수 등 주요 곡물과 관련해 산지부터 수출 터미널에 이르기까지 저장·이송·수출 인프라, 즉 곡물 엘리베이터를 장악하고 있다. 현재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하림 같은 국내 기업들이 우크라이나와 미국 워싱턴주의 곡물 터미널에 투자하는 등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내년부터 민간 기업이 곡물 인프라 지분을 인수할 때 장기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등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한국판 카길’ 만들기를 시도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나.

“당시엔 정부가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주도로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정부가 개입하는 순간 해외 인프라 매각자들이 몇 배나 높은 가격을 부른다. 그때 얻은 교훈은 ‘민간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는 지원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곡물 인프라 투자로 어떻게 식량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가.

“현재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하림이 곡물 엘리베이터를 통해 해외에서 확보한 곡물이 (연간 선적 가능한 물량 기준으로) 1150만t인데 그중 63만t만 국내에 들어온다. 운송 비용을 감안하면 (국내 반입보다) 해외에 파는 게 더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해외농업·산림자원개발협력법상 유사시 명령을 통해 국내 기업의 해외 비축 물량을 국내로 들여올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기업에) 손실이 발생하면 이를 보상해 주도록 법을 개정할 예정이다. 국내 업체들의 곡물 비즈니스가 더욱 커지고, 국내 반입에도 인센티브를 부여해 현재 국내 곡물 수입분의 3.5%에 불과한 국내 기업 반입분을 2027년까지 15%로 높일 계획이다.”

▷그 밖에 다른 방안도 구상하는 게 있나.

“지금 (쌀을 제외한 국내 농산물) 비축 기지 규모가 10만t인데 추가로 10만t을 건설해 수급 안정성을 높일 계획이다. 최근 밀·콩과 함께 이모작이 가능하고 일반 쌀에 비해 제분 비용이 저렴한 분질미(粉質米·가루로 가공하기 쉬운 쌀로 농촌진흥청이 개발)를 활용해 밀 자급률은 높이고 공급 과잉인 쌀 수급을 안정화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연간 밀가루 수요의 10%인 20만t을 (분질미에서 나오는) 쌀가루로 대체하고 밀 생산량도 늘려 2020년 기준 0.8% 수준인 밀 자급률을 2027년까지 7.9%로 높이는 게 목표다.”

▷국내 농업 혁신을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청년농을 육성하는 게 핵심이다. 2020년 기준 국내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이 66세이고, 만 40세 미만 청년 농업인은 전체의 1.2%인 1만2000명에 불과하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접목된 스마트팜과 같은 생산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것도 청년이고, 1차 산업인 농업에 제조업(2차), 서비스업(3차) 산업을 결합한 융복합 6차 산업을 이끄는 것도 청년이다. 청년농의 가장 큰 어려움이 양질의 토지 확보다. 농지은행 사업을 개편해 매매·임차 지원을 확대하고, 가업 승계 농민에게 주어지는 영농상속공제 한도도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높이는 안을 추진 중이다. 스마트팜 등 설비 투자에 대한 금융 지원도 대폭 강화하겠다.”

▷영농상속공제 한도는 왜 높이나.

“농업이 점차 스마트화, 대형화하면서 시설 기반 원예·축산농의 자산 규모가 20억원은 쉽게 넘어간다. 이런 사업을 물려받는데 거액의 세금을 내라는 건 ‘그냥 농업을 하지 말고 떠나라’는 말이나 같다. (영농상속공제 한도 확대는) 청년농을 육성하고 현재 전체 온실 면적의 12%에 불과한 스마트팜을 확대한다는 국정과제 이행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다.”

▷농지 보전에 대해서도 최근 언급했는데.

“식량 안보 차원에서 연말까지 적정 농지 확보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1970년대 220만㏊에 달하던 농지 면적은 현재 150만㏊로 30% 이상 줄었다. 더 이상 감소하면 안 된다. 우량 농지 중심으로 면적을 확보하면서 자투리땅과 비우량 농지는 농식품 창고나 처리시설 등 농업과 비슷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농민들의 재산권과 농촌 생산성 간 균형을 맞출 계획이다.”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쌀가루 산업 육성과 청년농 중심으로 농업을 미래 산업화하는 기반을 꼭 다지고 싶다. 그리고 지금 농촌은 난개발된 곳이 많다. 내년부터 농촌 내 주거, 생산, 서비스 기능을 공간적으로 재배치해 아름답고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드는 재구조화를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하동=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