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썩고 여름옷 못 받고…화물연대 파업에 '발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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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화물연대 파업 여파 전방위 확산지난 12일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 애호박 4톤을 화물차에 싣고 경기도 포천의 밭에서 직접 찾아온 농민 서모 씨(50)를 만났다. 서 씨는 “창고에 이미 수확한 농산물이 쌓여있어 직접 트럭을 몰고 납품하러 왔다”며 "과채류는 상온에서 최대 일주일 정도만 보관할 수 있는 데 큰일났다"고 전했다. 서 씨는 “예전엔 20톤짜리 큰 차 세 대에 위탁해 작물을 운송했는데 지금 차량이 부족해 직접 나르고 있는데 솔직히 버겁다”고 토로했다.
식품 의류에 이어 일부 의약품까지 공급부족
농산물 창고에서 썩을 위기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업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농민과 소상공인들에까지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파업 참여 차주들이 늘어나면서 농민들이 작물을 출하하지 못하고, 농수산 식품 가격이 오르면서 요식업 자영업자와 일반 가정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각종 수입 물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물건을 못 받는 등의 피해도 현실화하고 있다.서씨는 “농수산물공사에선 자꾸 출고량 줄이라고 연락하는데 그냥 둬도 자라는 작물을 어쩌냐”며 “파업이 더 길어지면 폐기할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엽채류는 3일, 과채류는 일주일 정도가 상온에서 최대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의 한 도매상은 “서울시가 노후 차량의 시내 진입을 금지한 탓에 낡은 차량을 가진 농사짓는 어르신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고 말했다.수산물의 경우 비수기인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파업의 여파로 인한 물량 부족으로 경매 가격이 20~30%가량 상승했다. 이윤일 가락몰 수산유통인협의회 총무는 “최근 활어와 냉동 수산물을 중심으로 물량이 20%가량 줄었다”고 전했다.
여름옷, 악세사리 공급도 막혀
서울 동대문 등의 의류·잡화 도매상과 인터넷 판매업자들은 해외 공장에서 수입된 의류가 항만에 묶이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창 여름옷을 판매할 시기인데 시즌을 넘기면 옷들이 그대로 유행 지난 이월상품이 돼버린다. 중국에서 옷을 떼와 도매업을 하는 김 모씨(56)는 “원래 3일이면 도착할 물건이 일주일째 오지 않아 운송업체에 물어보니 화물연대 몰래 개인 트럭으로 물건을 빼내고 있어 오는 16일 이후에나 옷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 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 옷을 직배송 받고 있어 물류비가 4배 가까이 들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오 모씨(44) 역시 평소 베트남 공장에서 만든 물건을 공급받지 못해 매대를 절반 가량 비워놓고 있다. 오 씨는 “파업 전에 매입가 기준 하루 평균 1000만원어치를 받았는데 최근 200만~300만원어치 밖에 못 받고 있다”며 유행에 민감한 업종이다 보니 매대에 재고품을 올려놓을 수도 없어 매출이 떨어지는 데 손도 못 쓰고 보고만 있다“고 토로했다.중국집 식용유 밀가루 대란 우려
식자재 유통에도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이미 공급이 부족한 소주에 이어 다양한 수입 식품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의 매출액 500억원 규모의 식자재 도매사 F사 관계자는 "베트남과 중국에서 수입한 식자재가 부산항에서 나오지 못하고 컨테이너에 쌓여있다"며 "수입 김치와 수산물 등의 전반적인 물량이 부족한 탓에 가격이 올라 음식점들의 부담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래처 중국 음식점들 상당수가 식용유와 밀가루를 사재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산 가공식품도 일부 품목은 화물차를 잡기 어려워 물량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식용유의 경우 원료 수급에 문제가 생긴 국내 식용유 제조사들이 식용유, 카놀라유, 올리브유 등을 평소에 10~20%가량만 도매상에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의약품 물류도 일부 차질을 빚으면서 만성질환 환자 등이 불편을 겪고 있다. 최근 특정 전문의약품도 물류가 막힌 탓에 병의원·약국이 공급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약국은 전문약품(처방전 받아 내주는 약) 보관 공간이 여유롭지 않고, 보관 시스템도 고가라 일주일치 재고만 보유하고 있다. 경기 화성에서 약국 운영하는 장 모씨(33)는 “며칠 전부터 우리 건물의 내과에서 주로 처방하는 혈압약이 떨어져 환자들이 빈손으로 돌아갔다”며 “병원에선 대체 약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약은 언제올지 몰라 남은 약이 없는 분들에겐 다른 병원에서 다른 약품을 처방받으라고 해야할 형편”이라고 전했다.
구민기/이광식/부산=민건태 기자 k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