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유가 끌어올린 美자국산업보호법

김현석 뉴욕 특파원
지난 10일 뉴욕 증시는 폭락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8.6%까지 치솟아서다. 같은 날 6월 미시간대 소비자태도지수(예비치)는 사상 최저인 50.2로 떨어졌다. 높은 물가에 미국인들의 경제적 자신감이 추락한 것이다.

인플레이션의 핵심 요인 중 하나는 배럴당 120달러까지 폭등한 유가다. 미국 내 평균 휘발유 가격은 11일 처음으로 갤런당 5달러를 넘었다. 포드 F-150 트럭(기름통 23갤런)을 보유한 한 미국인은 “가스(gas) 넣는 데 100달러가 넘게 들었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유가 불러온 존스액트

유가가 치솟은 요인은 여러 가지지만, 미국 내에선 존스액트(the Jones Act)가 그중 하나라는 지적이 많다. 이 법의 명칭은 상선법(Merchant Marine Act)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 국가안보와 해운산업 보호를 이유로 미국 내 연안해운은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인이 소유(75% 이상)한 그리고 미국인이 선원(75% 이상)인 배로만 운송할 수 있게 정한 것이다.

미국은 산유국이며, 셰일 혁명 이후 에너지 자립국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원유·석유 수출입이 많다. 지난 5월 마지막 주 960만 배럴을 수출하고 840만 배럴을 수입했다. 이는 존스액트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카토연구소에 따르면 텍사스에서 유럽으로 원유를 보내는 데 배럴당 2달러가 들지만, 미 동부 뉴잉글랜드 지방으로 운송하려면 배럴당 6달러가 소요된다. 존스액트로 보호받는 미 선박의 용선료가 비싸서다. 그래서 텍사스산 휘발유는 멕시코로 수출되고, 뉴잉글랜드에선 멕시코산 휘발유를 수입한다. 하와이의 경우 휘발유의 3분의 1을 미국보다 훨씬 먼 러시아에서 수입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자 하와이의 휘발유값은 더 높이 뛰었다. 원유뿐 아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목재, 고철, 소금 등도 운송료 때문에 수입하는 게 더 나은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니 미 국내 화물의 2%만 해상으로 운송된다. 유럽연합(40%), 호주(15%) 등에 훨씬 못 미친다. 존스액트가 국내 무역을 막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우려되는 한국 국회 폭주

존스액트는 제정 목적인 국가안보와 해운산업 보호엔 효과가 없다. 보스턴 등 뉴잉글랜드에 한파가 닥친 2018년 1월 미 정부는 천연가스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존스액트 적용 중단을 추진했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가 허리케인 마리아로 큰 피해를 봤을 때는 적용을 면제했다. 미 선박만으로는 필수 물자를 빠르게 운송하기 어려워서다. 안보에 위기가 생기면 법 효력을 없애야 하는 셈이다.

미 교통부에 따르면 존스액트에 의해 인증된 선박은 96척에 불과하다. 2000년 193척에서 더 줄었다. 철도 비행기 트럭 등에 비해 비싸니 당연하다. 단점이 명백한 존스액트 법이지만, 100년이 지나서도 멀쩡하다. 보호주의자들은 여전히 법 존치 목소리를 높인다.

존스액트 논란을 보며 걱정되는 건 한국 국회의 입법 폭주다. 존스액트처럼 한국에도 비효율적이거나 제정 목적과 맞지 않게 된 법이 많다. 그렇지만 국회는 이런 법을 재정비하기는커녕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서 보듯 포퓰리즘 입법을 남발하고 있다. 의원입법이란 이유로 사전 검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법이 곳곳에서 부작용을 부르고 있다. 이런 법들이 존스액트처럼 뿌리를 내려 유가를 높이고, 무역을 막고, 효율을 낮추기 전에 없애고 바꾸는 게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