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공개혁 해야 할 판에 노동이사제 선심부터 쓰나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도입 근거를 담은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지난주엔 도입 일정을 못 박은 시행령 개정안까지 입법 예고됐다. 이대로라면 8월 4일부터 한국전력 등 131개 공공기관은 노조가 추천하거나 근로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은 대표 1명을 의무적으로 이사회에 참여시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동계 표를 의식해 덜컥 받은 노동이사제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소통 강화로 노사 갈등이 줄어드는 등의 효과도 있겠지만, 가뜩이나 노조 쪽으로 기운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공공기관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등 더 큰 부작용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경영계가 이런 제도가 민간까지 확대 적용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현시점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은 공공기관 개혁과의 엇박자다. 정부는 하반기부터 부실·방만 경영과 철밥통의 대명사가 된 공공기관에 대한 대대적 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민간에서는 상상하기도, 용납하기도 힘든 부실과 적자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대폭 늘리고 성과급 파티를 벌여온 게 공공기관들의 실상이었다. 5년 만에 연 20조원 가까운 적자기업으로 전락한 한전만 해도 채용을 지난 5년간 65% 늘리고, 사장 등 고위 임원들은 매년 억대 가까운 성과급을 챙겼다. 대통령 공약사업(한전공대)에도 1조6000억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이런 공기업들에 메스를 가할 때 노동이사가 어떤 역할을 할지는 불문가지다. 더구나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중 1년 이상 임기가 남은 경우가 69%에 달한다고 한다. 친(親)노조 성향의 이들 기관장이 개혁에 협조할 리도 없거니와 노동이사까지 이사회에 가세할 경우 조직과 기능, 인력을 구조조정하는 안건들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불 보듯 훤하다.

새 정부가 시장경제 원칙, 민간 주도 성장 등을 외치며 개혁에 나서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노동이사제에서 보듯 구체적 실행 방안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모순과 허점이 적지 않다. 연금·교육개혁에 대해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하면서 취임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담당 조직이나, 이렇다 할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놓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개혁은 의욕이나 말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앞뒤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정교함과 함께 강한 추진력이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