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퇴사한 현대차그룹 28세 'MZ 노조'위원장

현장에서

기존 노조의 교섭권 독점 한계
"개인주의 성향…동력 떨어져"

박한신 산업부 기자
현실의 벽은 높았다.”

현대자동차그룹 ‘MZ 사무직 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한 이건우 노조위원장(현대케피코 연구원·28)이 회사를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내에서 나온 반응이다. 지난해 경영계를 뜨겁게 달군 젊은 사무직 노조 설립 열풍이 일단 실패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지난 10일자로 현대케피코를 퇴사한 1994년생 이 위원장은 지난해 4월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기치로 현대차그룹의 ‘인재 존중 사무·연구직 노동조합’ 결성에 앞장섰다. 기존 강성 노조와의 차별화, 생산직 위주 교섭 탈피, 사무직에 대한 차등 보상 등을 내세워 커뮤니티 가입 직원이 5000명에 달하는 등 세를 불렸다. 출범 직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스포트라이트에 이 위원장은 큰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정당한 보상을 해달라”는 MZ세대 구성원의 열망은 컸지만, 유일한 교섭단체인 기존 노조가 사측과 소통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활동의 구심점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MZ 노조는 교섭권을 확보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제도적인 벽에 부딪혔다. 근로 조건과 고용 형태가 크게 다를 경우 교섭권을 따로 부여하는 ‘교섭단위 분리’를 추진했지만, 먼저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한 LG전자 사무직 노조의 요청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기각되자 추진력을 잃었다. 게다가 단체교섭은 원칙적으로 계열사별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룹 전체 MZ 사무직이 모인 조직은 대화 상대를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교섭권 부재로 동력이 약화되자 내부 갈등이 심해졌다. MZ 노조 내부로 받아들인 기존 금속노조 출신 세력과의 갈등이 계속해서 불거졌다. 독자 노선을 고집한 이 위원장은 금속노조 출신으로 민주노총 가입을 강하게 주장한 조직원들과 시종일관 부딪친 것으로 전해졌다.

MZ세대의 개인적 성향이 단결과 투쟁을 핵심 동력으로 하는 노조 활동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MZ세대 구성원들이 굳이 회사와 싸우면서 노조 활동을 하기보다는 퇴사와 이직을 택한다는 얘기다. 초반 활발하던 MZ 노조 온라인 커뮤니티는 최근 수개월째 이렇다 할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이 위원장은 퇴사 소식을 전하며 “지난해 4월 초 모였던 4500명은 어디로 갔는지 참 많이 야속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내가 덕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내 동료 누군가가 덕을 본다는 마음으로 가입해달라”고 당부했다. MZ세대의 ‘노동운동’이 계속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