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추진 '시행령 통제법'에…윤석열 대통령 "위헌소지 많아"

조응천, 국회가 정부 시행령에
수정 요구할 수 있는 법안 발의

與 "다수당의 反헌법적 폭거"
尹, 거부권 행사 가능성 시사

민주당 "공식 논의 단계 아냐"
당내 신중론에 발의 미뤄져
예결위도 상임위로 상시화 추진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대통령실에서 출근길 취재진의 질문에 간단히 답변하는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을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행정 입법을 견제하는 법안 발의를 추진하면서 정국이 다시 얼어붙고 있다. 민주당은 정부가 국회 입법 대신 ‘시행령 개정’을 통해 과반 의석을 점한 야당을 우회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여당인 국민의힘이 ‘정부완박(정부 권력 완전 박탈)’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데다 윤석열 대통령도 13일 “위헌 소지가 많다”며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시사해 여야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尹, “위헌 소지 많아”…거부권 시사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를 앞둔 국회법 개정안(제98조의 2)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정부의 행정 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고 해당 기관장이 조치 후 보고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현행 조항은 국회가 시행령 등의 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이를 해당 부처에 통보만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발의될 법안은 국회가 시행령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고, ‘정부는 시행령을 수정·변경한 뒤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는 의무도 포함돼 있다. 통보에서 요청·보고로 바뀌면 사실상 국회가 정부 시행령 개정을 강제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여당에서는 이 개정안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것이자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은 예산 편성권을 국회로 가져오겠다는 주장만큼이나 반헌법적”이라며 “거대 의석으로 새 정부의 발목을 잡겠다는 다수당의 폭거”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 관련 법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 요구권을 갖는 것은 위헌 소지가 좀 많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거부권 행사까지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반면 조 의원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서 위임하지 않은 행정 입법만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것이야말로 ‘입법완박’”이라며 해당 법안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2015년 이 법과 거의 비슷한 ‘유승민 국회법 개정 파동’ 당시 권성동 의원도 이 법에 찬성했고,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지지하고 옹호했다”고 밝혔다.

‘배신의 정치’ 트라우마…신중론도

민주당은 이 법안을 당론으로 정하진 않았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국회 패싱’을 계속할 경우 국회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기류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이 사안을 무조건 밀어붙이기 부담스러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초 조 의원은 이날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미뤘다.

이 법안은 2015년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합의했다가 파문을 일으킨 법안과 비슷해 정치권에서는 ‘트라우마’가 있는 법안이다. 당시 유 원내대표는 국회의 시행령 수정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이 공포되면 정부 기능이 마비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 대통령은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배신의 정치’ 등 표현을 쓰며 강도 높게 비난했고, 결국 유 원내대표는 사퇴했다.민주당은 ‘시행령 통제법’ 외에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겸임이 불가능한 상설 상임위원회로 전환하는 국회법 개정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맹성규 의원이 발의할 예정인 법안에는 예결위가 재정 총량 및 상임위원회별 지출 한도를 심사하는 역할을 맡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안 편성 지침 단계부터 국회가 보고를 받아 사실상 예산안 편성에 공동으로 참여하겠다는 취지다. 국가재정법 및 국가예산정책처법도 개정해 5년 단위로 모든 사업의 효과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영기준예산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