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이언트스텝' 우려에 환율 급등…당국 긴급 개입해 1290원 방어

주가 급락, 물가·금리·환율 급등 '쿼드러플 위기'

경제지표 줄줄이 '경고음'
물가 금융위기 이후 첫 5%대
환율 15원 오르며 1284원으로
생산·소비·투자도 모두 마이너스

더 짙어지는 'S의 공포'
대부분 통제 불가능한 대외변수
일각선 "정부 쓸 카드 별로 없어"
위기 장기화 땐 잠재성장률 타격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13일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5원10전 오른 1284원에 마감되면서 한 달 만에 1280원대를 돌파했다. 김범준 기자
미국발(發) 인플레이션 쇼크로 원·달러 환율이 장중 20원 폭등했다. 외환당국은 이례적으로 국장급 관계자의 실명을 내걸고 ‘구두 개입’까지 나섰다. 물가가 치솟는 데다 환율·무역수지·금리 등 각종 거시지표가 동시에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 경제가 ‘퍼펙트 스톰’(총체적 복합 위기)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치솟은 원·달러 환율

1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5원10전 급등한 1284원에 마감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288원90전까지 치솟았다.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이 1290원을 돌파하기 직전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과 김현기 한국은행 국제국장 명의로 “정부와 한은은 최근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화의 과도한 변동성에 대해 각별한 경계감을 갖고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구두 개입에 나섰다. 외환당국 국장급의 실명 구두 개입은 원·달러 환율이 6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2016년 2월 이후 6년4개월 만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구두 개입 후 원·달러 환율 급등세가 완화됐다”며 “실명 개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기선 기재부 1차관도 이후 긴급 거시경제금융 점검회의를 열고 “필요하면 관계기관 공조하에 즉시 시장 안정 조치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오후 들어 코스피지수가 낙폭을 확대함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고점을 더 높일 여지도 있었지만, 당국에서 강한 레드라인을 그어준 효과로 장중 추가 상승이 제한됐다”고 분석했다.

불어나는 무역적자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날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무역수지는 59억95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6억6600만달러)보다 적자 폭이 커졌다. 올초부터 이달 10일까지 누적 무역수지는 138억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수출이 15.8% 늘었지만, 수입이 26.9%로 더 큰 증가폭을 보인 데 따른 것이다. 지난 4월에는 경상수지가 2년 만에 적자로 전환하면서 3년 만에 월중 ‘쌍둥이 적자(경상수지·재정수지 적자)’가 확실시됐다. 같은 달 생산·소비·투자는 ‘트리플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5.4%로 나타나면서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5%를 넘어섰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도

전쟁과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하고, 미국의 공격적 긴축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외 의존도가 큰 한국 경제가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쓸 카드는 별로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음을 바꿔 전쟁을 끝내기를 바라야 할 정도로 우리의 컨트롤(통제)에서 벗어난 변수에 기대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가가 폭락하고, 물가와 시장 금리, 환율이 폭등하는 ‘쿼드러플 위기’ 상황”이라며 “스태그플레이션은 기본 변수로 둬야 한다”고 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스태그플레이션은 성장률이 마이너스까지 나와야 한다”면서도 “워낙 물가와 거시 환경이 좋지 않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잠재성장률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미현/황정환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