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아들 좀 말려줘요" 학대받고 방치되는 노인들

노인학대 2015년 3천818건→2020년 6천259건, 5년새 64%↑
초고령사회 확산 속 세대단절 심각, "적극적인 신고 필요"

"술 가져와"
이 말을 들은 A(72)씨가 아들(48)을 꾸짖자 돌아온 것은 주먹질이었다.

이후에도 A씨는 부인과 함께 아들의 폭력에 시달렸다.

경찰에 신고해 아들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에야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A씨처럼 자녀 등으로부터 괄시받거나 학대받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14일 노인보호전문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노인 학대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강원·전남·경남·충북에서만 확인된 노인 학대 사례는 2019년 1천218건, 2020년 1천385건, 지난해 1천436명으로 증가 추세다. ◇ 늙어가는 한국…세대단절 '큰일'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인구의 20% 이상 되는 초고령사회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늙어가는 것이다.
전국 17개 시·도 중 전남이 2014년 처음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지난해에는 부산과 강원, 전남, 경북 등 5개 시·도로 늘었다. 출생률 감소, 고령화라는 유례없는 사회변화 속에 노인가구가 늘면서 이들을 바라보는 자녀·손주 세대의 일부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온라인에서는 틀니 소리를 빗댄 '틀딱', 연금을 축낸다는 뜻의 '연금충', 시끄럽게 말하는 할머니를 가리키는 '할매미'라는 노인 혐오 단어마저 등장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홀대받고 정서·신체적 학대를 당하는 노인들이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다.

학대 유형을 구분하면 정서적 학대가 가장 많다.

욕을 하거나 위협하는 등 정서적으로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이다.

물리적 힘이나 도구를 이용해 고통을 주는 신체적 학대도 적지 않다.

정서·신체적 학대 건수를 더하면 전체 학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웃돈다.

◇ 학대 장소 88% '집안'…경제적 이유도 한몫
문제는 가해자가 학대 피해 노인과 매우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이 지난해 6월 발행한 '2020 노인학대 현황보고서'를 보면 노인학대는 대부분 주거지에서 발생했다.

학대로 판정된 6천259건의 사례 중 88.8%가 노인들이 거주하는 집에서 발생했다.

학대 행위자는 아들과 배우자가 가장 많다.

현장 조사를 거쳐 학대로 판정한 사례 중 가해자의 60% 이상이 아들과 배우자였다.

며느리나 딸의 학대 정황이 드러난 경우도 있다.

노인 학대는 경제적인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학대 행위자였던 경우가 10.7%에 달했다.

학대 피해 노인의 15.8%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학대를 견디며 살아온 것이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학대 행위자가 피해 노인과 함께 살지 않더라도 부양 의무자로서 책임·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혀를 찼다.

◇ 대책 실효성 '글쎄'…"적극적 신고가 중요"
노인 학대 사례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자체와 경찰도 좌불안석이다.
노인보호전문기관과 협조하며 학대피해 노인 전용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적인 학대 사례는 2015년 3천818건에서 2020년 6천259건으로 64%나 증가했다.

결국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노인보호전문기관 전담 변호사를 배치했다.

경북도는 노인인권보호사 460명을 위촉,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노인학대 예방 활동을 하겠다는 대책을 마련했다.

경남도 역시 노인학대 예방과 노인인권 개선 활동을 하는 '어르신 인권지킴이단'을 가동했다.

경찰도 노인학대 신고 의무자인 시설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노인 안전 서포터즈'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 단절된 노인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정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노인학대를 근본적으로 막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주돌봄자인 가족에 의한 노인 학대는 은폐되기 쉽다"며 "장기간 지속되는 학대에 노출된다면 그 피해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가정사라는 이유로 학대를 숨기려 하지 말고 관련 기관에 고민을 털어놓고, 이웃도 학대받는 노인을 보면 적극적으로 신고해 보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권숙희 김경태 김선경 김용민 김재홍 박영서 손현규 심규석 천정인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