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민주화 이후 행안장관의 경찰 감독권은 없어졌다?

민주당 황운하 의원, 행안부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주장
법 개정으로 1991년부터 행안장관 업무에서 치안 사무 폐지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권한이 커진 경찰에 대한 통제를 위해 행정안전부 내 별도 조직(경찰국)을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자 경찰 내부 반발이 확산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울산경찰청장을 지낸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화 이후 장관 사무에서 치안 사무를 삭제해 (행안부) 장관은 치안 사무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며 "그 이유는 경찰의 중립성·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행안부 장관이 직접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려면 법령을 개정해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경찰의 치안 업무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감독 권한은 민주화되면서 박탈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 경찰 조직은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정청 산하 경무국(경무부)으로 출발했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내무부(현 행안부) 산하 치안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긴급조치가 발동된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을 계기로 내무부 치안국이 치안본부로 격상되고 경찰 수장의 직급도 국장급(치안국장)에서 차관급(치안본부장)으로 높아졌다.

그러나 경찰은 정권에 예속돼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는 공안통치의 첨병이자 독재정권의 하수인이란 오명을 얻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1987년) 등을 계기로 군부 독재체제가 흔들리고 경찰의 중립성·독립성을 보장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커지면서 1991년 내무부에서 분리된 '경찰청'이 출범했다.

아울러 경찰청 독립을 위한 법제 정비 차원에서 '정부조직법'이 개정되고 '경찰법'이 새로 제정됐다.

당시 법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원래 내무부 장관의 직무로 규정됐던 치안(경찰) 사무가 삭제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9년 개정된 직전 정부조직법 31조에는 '내무부 장관은 지방행정·선거·국민투표·치안 및 해양경찰과 민방위에 관한 사무를 장리(掌理)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감독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하지만 1990년 말 개정된 정부조직법 31조는 '내무부 장관은 지방행정·선거·국민투표 및 민방위에 관한 사무를 장리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감독한다'로 바뀌었다.

정부 수립과 함께 정부조직법이 처음 제정될 때부터 내무부 장관의 고유 직무로 명시됐던 치안 사무가 그때 삭제돼 현행 정부조직법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에 반해 비교되는 법무부 장관의 직무를 정한 정부조직법 규정에는 법 제정 때부터 지금까지 변동 없이 검찰 사무가 포함돼 있다.

당시 제정된 경찰법을 봐도 '내무부 장관 소속하에 경찰청을 둔다'고만 돼 있을 뿐 치안 사무에 대한 내무부 장관의 지휘감독 규정은 찾을 수 없다.

대신 행안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들로 구성된 경찰위원회에서 경찰의 인사·예산 등을 심의·의결하게 했다.

이는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 감독한다'고 규정한 검찰청법(8조)과도 명백한 차이가 있다.
정리해 보면 30여 년 전 경찰청을 내무부의 외청(外廳)으로 분리독립할 때 관련 법률의 제·개정 취지는 단순한 직제 변동 이상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경찰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과거 폐습을 근절하는 차원에서 경찰에 대한 내무부 장관의 직접적인 지휘감독 권한을 박탈 내지 엄격히 제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행안부 장관의 업무에 치안 사무가 포함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조직법과 경찰법 개정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지시로 구성된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에서도 경찰권 견제를 위해 정부조직법상 행안부 장관 사무에 치안을 추가하는 방안이 검토된 것으로 보도됐다.

특히 경찰제도개선자문위는 경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행안부 내 치안정책관실을 경찰을 관리·감독할 별도 조직으로 격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일각에선 신설할 조직이 법무부 내에서 검찰의 인사·조직·예산을 총괄하는 '검찰국'과 마찬가지로 행안부 내에서 경찰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경찰국'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치안정책관실은 행안부 장관의 치안 관련 업무를 보좌하기 위해 인력을 파견받아 운영해온 비직제(임시) 조직으로 경찰법이나 시행령·시행규칙에는 설치 근거가 없다.

정부가 보도대로 치안정책관실을 법상 근거를 가진 공식(직제) 조직으로 전환해 확대하려 할 경우 법령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당과 시민단체에선 과거 박탈된 행안부 장관의 경찰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감독권을 사실상 되살리겠단 것이어서 법률 개정이 선행돼야 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소야대 정국을 고려하면 정부에선 최근 신설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처럼 국무회의에서 처리할 수 있는 직제 관련 시행령(대통령령) 및 시행규칙(행안부령) 개정만으로 '경찰국' 신설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릴 개연성이 큰 상황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문위에서 논의 중인 상황이라 답변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제도개선자문위 측은 이달 말로 예정된 "권고안 최종 발표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일선 경찰관들의 반발 움직임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출범 당시에도 내무부에서 경찰청에 대한 인사·예산권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내무부 장관의 소속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안'(내무부령)을 만들었다가 경찰의 집단 반발에 부딪혀 후퇴했다.

이상민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경찰이 하는 업무의 99.9%는 일반 행정 업무다.

그런데 왜 거기는 독립을 해야 하나"라며 경찰 통제 필요성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발언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경찰통계 연보를 보면 2020년 기준 경찰공무원은 총 12만6천227명으로 이 가운데 수사 인력은 2만1천970명으로 17.4%를 차지했다. 지구대(파출소)가 5만236명(39.8%)로 가장 많았고 경비(1만4천901명 11.8%), 생활안전(1만4천898명 11.8%), 교통(1만524명 8.3%) 순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