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 환경성과가 경쟁력 좌우

친환경 공급망관리는 환경 측면에서 공급망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협력업체의 환경 성과를 관리하기 위해 전략적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협력업체의 역량 강화와 장점 공유를 통해 상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경ESG] 환경경영 ABC⑫
삼성전자가 협력사 대상 화학물질 관리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최근 공급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기업 경영자가 많아졌다. 일부 국가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특정 지역을 봉쇄하는가 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자 공급 감소 또는 물류 지체 등으로 지구촌이 심한 몸살을 앓자 그동안 유기적이고 효율적이라 여겨온 글로벌 공급망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 기업이 자체적으로 생산 효율화를 기한다 해도 유통 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원자재와 부품을 적기에 공급받지 못하면 소비자에게 제때 제품을 내놓기 어려워진다. 이에 기업 자체의 경쟁력뿐 아니라 원자재 공급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제품의 전체 가치사슬에 걸친 효율성 제고 필요성에 따라 도입하기 시작한 경영 기법이 바로 공급망관리(SCM)다. 공급망관리는 제품의 생산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판매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연결해 관리하는 것, 또는 지속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급망에서 상호관계를 향상시키는 통합적 경영관리 활동이다. 일반적으로 공급망관리는 공급망 내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기업 주도로 이루어지는데, 이 기업은 다양한 요구를 제품에 반영하고 협력 업체에 요구사항을 전달하거나 지원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급망관리는 공급망 내 핵심 기업을 중심으로 많은 공급업체와 불특정 다수인 수요자 간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급망 전반에 걸쳐 환경성과 관리

이러한 공급망관리 기법을 응용해 기업이 환경 측면에서 공급망을 관리하는 것을 친환경 공급망관리(ESCM)라고 한다. 이는 공급망 녹색화(greening supply chain)와 유사한 개념으로 관리 범위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진다. 좁은 의미의 친환경 공급망관리는 ‘감량, 재활용, 재이용, 재료 대체 등을 포함한 구매 관련 기능’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친환경 공급망 관리를 구매 활동에 한정하는 경우다. 제조업 중심으로 보면 ‘협력 업체와 구매업체의 제품 및 공정의 환경성과를 증진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다양한 활동’이란 정의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 범위를 전 과정으로 확대하면 ‘제품 및 서비스의 디자인, 구매, 생산, 분배, 사용, 재이용, 폐기와 관련한 환경문제에 대해 공급망 내에서 전략을 수립하고 행동을 취하며, 관련 주체와 관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폭넓게 정의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친환경 공급망관리의 확산은 환경경영 시스템, 청정 생산 등 특정 기업의 환경성과 개선 프로그램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공급망 전반에 걸친 환경성과 관리까지 그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기업 외부적으로 본다면 국내외 환경규제 강화, 주주나 환경단체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환경에 대한 관심과 감시 확대, 거래 기업으로부터 환경 관련 요구 증대 등이 친환경 공급망관리 도입의 주요인이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공급망을 구성하는 기업의 환경성과가 경쟁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많다. 즉 협력 업체의 환경성과 개선을 통한 제품 원가 절감, 관련 업체의 환경 사고로 인한 공급 차질 예방, 제품의 품질 향상 및 혁신, 기업 이미지 제고 등을 위해서도 공급망관리가 필요하다.

친환경 공급망관리를 위해서는 협력 업체로부터 친환경 원료나 부품을 조달하는 녹색구매를 비롯해 제품 및 생산공정 중심의 사전 예방적 접근 방법, 생산과정이나 제품 사용 후 발생하는 폐기물의 효율적 처리 및 재활용 방법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 중 기업 내부의 관리 범주가 아닌 협력 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녹색구매가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협력 업체 관리는 새로운 협력 업체 선정뿐 아니라 기존 협력 업체를 지원하거나 환경성과를 평가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특히 최근 들어 협력 업체의 환경문제로 인해 제품 출하가 어려워지거나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 손상을 입는 사례가 발생해 협력 업체 관리는 친환경 공급망관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다.

협력 업체의 환경성과를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하는 환경 이슈는 기업 자체와 거래 물품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거래 기업에 대한 평가는 제3자 환경인증 여부, 환경문제 대응 의지, 환경경영 시스템, 환경성과, 환경 정보공개, 환경 교육 실시 등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거래 물품은 재질, 생산공정, 관련 환경 측면, 폐기 시 환경문제, 포장재 및 수송 과정의 환경문제 등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협력 업체를 대상으로 이 요소를 모두 적용할 것이 아니라 기업이나 제품의 특성에 맞게 적절한 평가 항목을 선별해 평가하면 된다. 환경 측면에서 협력 업체를 지원하거나 관리하는 방법도 환경 인증을 요구하거나 환경 실적을 바탕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다양하다.협력 업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략적 관계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협력 업체를 관리하는 기업 입장에서 모든 거래 기업의 환경문제를 같은 수준에서 일률적으로 다룰 경우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며,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협력 업체와 계약 사항, 공급업체의 의무 또는 거래 정도 등을 기준으로 최적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협력 업체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은 공동의 노력으로 환경문제를 개선하는 좋은 방법이다. 제품의 환경성과 개선을 위해 중요한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 업체와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RE100 참여 요구하는 글로벌 기업

이런 협력 관계는 협력 업체의 환경 개선 능력이 제품 전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협력 업체의 역량을 강화하거나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개발 단계에서 전문 인력을 서로 교류하거나 협력 업체와 공동연구 및 제품 개발 과정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파트너십은 공급망을 통해 모기업의 환경경영과 청정 생산 기법을 협력 업체에 지원해 환경과 자원·에너지 위기에 공동 대응하고,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는 동반 성장형 비즈니스 전략이다. 2003년부터 우리 정부가 시행한 친환경 공급망관리 사업은 대기업의 역할을 통해 중소기업의 환경 대응 능력을 높이려는 시도였으며, 그 후 탄소 파트너십, 그린 제품 파트너십, 글로벌 그린 파트너십 등으로 확대 시행한 바 있다.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실행하는 친환경 파트너십 활동이나 에코 파트너십 인증 등도 이와 유사한 전략적 노력으로 볼 수 있다.하지만 공급망 내 기업 간 항상 긍적적 협력 관계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경을 둘러싼 책임을 타 업체에 전가하거나 보다 친환경적 공급업체로 거래처를 변경하기도 한다. 최근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370개 이상의 주요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는 RE100이 좋은 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초거대 기업과 글로벌 투자사들이 한국 기업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거래 기업에 거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조건으로 RE100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공급망 내 우월한 힘을 앞세워 사실상 환경 책임을 전가 또는 분산하는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친환경 공급망관리가 상호 협력적으로 진행되면 바람직하겠지만, 경쟁적 관계에서 이루어질 수도 있으므로 관련 기업은 전통적 경쟁력에 더해 환경성이라는 새로운 경쟁 요소에도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병욱 전 환경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