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신병 확보 못한 검찰…'블랙리스트' 윗선 수사 일단 제동

文 정부 인사수석실 행정관 출신 박상혁 의원 조사 미뤄질 듯
범죄 혐의는 대체로 소명 판단…수사 동력은 남아
검찰이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주목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서 수사의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게 됐다. 백 전 장관을 고리로 문재인 정부 당시 부처 산하기관 인사에 청와대 '윗선'이 개입했는지 들여다보려던 검찰의 계획도 일단은 제동이 걸렸다.

서울동부지법 신용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5일 검찰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청구한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신 부장판사는 "범죄혐의에 대한 대체적인 소명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나, 일부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수사기관에 상당한 양의 객관적 증거가 확보되는 등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백 전 장관이 문 정부 초기인 2017∼2018년 산업부 13개 산하기관의 기관장들에게 사표를 받아내도록 직원들에게 종용한 혐의는 어느 정도 인정이 됐지만 일부 다툼의 여지가 있고 증거도 충분히 확보돼 굳이 구속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부당평가 의혹으로 이미 재판을 받고 있어 도망의 염려가 없는 점 등도 영장 기각 사유에 포함됐다.

종합하면 혐의는 어느 정도 입증이 됐고, 증거도 검찰이 상당히 확보한 만큼 백 전 장관의 방어권 보장도 필요하다는 취지다. 검찰은 이달 9일 백 전 장관을 한 차례 소환 조사하고 나흘 뒤인 13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속전속결로 문재인 정부 청와대 윗선까지 타고 올라가려 했으나 수사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곧 있을 검찰 인사로 동부지검 지휘부와 수사팀 일부가 바뀔 가능성도 커 이른 시일 안에 수사를 확대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검찰은 문 정부 초기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산업부 산하 기관장들의 줄사퇴 배후에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당시 인사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한 더불어민주당 박상혁(49·김포을) 의원이 모종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이달 7일 그에게 참고인 조사를 요청한 상태였다.

박 의원은 2017∼2018년 인사수석실 근무 시절 경제부처를 담당하는 인사비서관실에서 산업부를 맡아 부처 내 운영지원과와 긴밀히 소통한 '키맨'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백 전 장관의 신병 확보가 어그러지면서 박 의원에 대한 조사 시기도 미뤄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과 일정 협의를 하고 있었다던 박 의원이 자신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오자 "언론에 흘리고 표적을 만들어 그림 그렸던 구태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불쾌해하고 있어 그의 조사 협조를 끌어내기도 쉽지 않게 됐다.

야당의 '표적 수사' 비판도 더 거세질 전망이다.
검찰은 일단 백 전 장관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여 혐의 입증을 탄탄히 한 뒤 영장을 재청구 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여의치 않다면 백 전 장관의 신병 확보는 포기하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길 수도 있다.

영장심사 단계이기는 하지만 법원이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다고 판단한 만큼 수사의 동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3년 전 동부지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할 때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되자 보강 조사만 거쳐 불구속기소 했다. 김 전 장관은 결국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으며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형을 확정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