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 만행 폭로, '명예훼손' 안 되려면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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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직장 내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문제 제기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회사 인사팀 등 비공개 창구를 통한 방식이 아니라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 등을 통한 공개적 문제 제기도 빈번하다.
다만 섣부른 폭로는 명예훼손으로 이어져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된 폭로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근 잇따라 직장 내부 갑질이나 성희롱 폭로가 다소 지연되거나 부정확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B는 A의 입사 당시 채용 및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한 상사다. 2014년 이들은 함께 회식에 참석했는데, B는 테이블 밑으로 A의 손을 잡기도 했고 "오늘 같이 가요", "맥주집 가면 옆에 앉아요. 싫음 반대편", "답 안 주네. 힘들게 안 할게", "왜 전화 안 하니", "남친이랑 있어. 답 못 넣은 거니" 등의 문자를 보냈다. 당시엔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넘어갔다.A는 1년 5개월 후인 2016년 3월, 본사에서 매장으로 이동하는 전보 발령을 받았다. 발령자는 B였다.
며칠 후 A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전국 208개 매장의 대표 이메일과 본사 소속 직원 80명의 이메일 주소로 '성희롱 피해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라는 제목으로 B의 성희롱 사실을 밝히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A는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 위반) 혐의로 기소 당했다.이 사건의 핵심은 A에게 'B를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는지 였다. 명예훼손 사안에서는 폭로 사실에 '공공의 이익'이 있는 경우엔 '비방의 목적'이 없어서 처벌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법원의 태도다.
1심과 2심은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급심들은 "원하지 않는 인사발령을 내린 B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메일을 작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건 발생 즉시가 아니라 1년 5개월이 지난 후 매장 전보 발령이 있고 나서야 문제삼았다는 점도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을 넓게 해석했다. 즉 "회사와 같은 특정 사회집단의 이익에 관한 것도 공공의 이익에 포함된다"며 "직장 내 성희롱 피해는 회사와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고, A는 피해를 공유해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피해 구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비록 부수적으로 B에 대한 복수심 등 다른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로 기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임이므로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특히 하급심 법원들이 유죄 근거로 삼은 '사건 발생과 폭로 사이에 시간적 격차'에 대해서도 "가해자 중심적 문화로 인해 성희롱 피해사례를 즉시 문제 삼을 경우 직장 내 부정적 여론, 불이익한 처우, 정신적인 피해 등 이른바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며 "심지어 B가 2015년부터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지위였기 때문에 A가 직장생활 동안 신고하지 않다가 퇴사를 계기로 폭로했다는 사정만으로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2018년 4월 C씨는자신이 두달 정도 근무했던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 D씨의 직장 내 갑질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퇴사 1년이 지난 뒤였다. 내용은 "(D는) 무슨 지병이 있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야 했다. 어떤 날은 단체로 룸살롱에 몰려가 여직원도 여자를 초이스해 옆에 앉아야 했다"는 내용이었다.
D는 갑질 논란이 불거진 직후, 사과문을 올리며 대표직에서 물러났으나 곧 C를 상대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해 자신의 명예를 해쳤다며 민사와 형사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검찰은 법원에 C에 대한 200만원 벌금의 약식 명령을 청구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지만, C는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C는 "내용의 일부는 직접 경험했지만 일부는 들은 사실이며 '공익적 목적'이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1심은 "파도타기나 벌주 등 강제성 있는 음주는 있었지만 회식을 강요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고, 가라오케 주점에서 도우미가 동석한 적은 있지만 룸살롱에 여직원을 데려간 적은 없다"며 C에게 벌금 200만원의 유죄를 선고했다.
중요한 상세 부분이 진실과 차이가 나 공공의 이익이 주요한 동기라고 보기 어려우며 C가 허위사실임을 인식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2심도 벌금을 100만원으로 깎았지만 마찬가지로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은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대법원 판결과 같은 결론이다. 이어 “소위 ‘직장 갑질’이 소규모 기업에도 존재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C의 폭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세부 사실관계가 다소 다른 것도 "D가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시도록 강권했다는 지적은 술자리에서 보인 D의 행동과 그로 인해 직원들이 느낀 압박감 등에 비춰 보면 주요 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고 판단했다.
인사담당자들의 리스크 관리 범위도 확대됐다. 한참 지난 일이라고 해도 파악을 해두고 있어야 한다. 특히 인터넷 폭로라는 공개저격은 피해도 크고,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회사의 적절치 못하거나 미지근한 대응이 언급돼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볼 수 있게 된다.
공개된 채널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익숙한 MZ세대와 발달한 SNS 공간은 회사의 인사노무 대응이 더욱 철저하고 기민해져야 할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고 발생 당시 당장의 조처도 중요하다. 사건 발생을 확인했다면 철저한 조사를 하고 그에 걸맞는 징계나 보상 등을 충분히 조치해놔야 한다. 당장 피해자를 잘 달래 수습해 넘어가는 것은 시한폭탄을 회사 앞마당에 곱게 묻어 두는 것과 다름이 없어진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투명하게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숨겼다가 소문이 확대 재생산 되면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사실을 폭로하는 전현직원 입장에서도 '공익 목적'은 객관적으로 판단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일부 유튜버들이 폭로성 게시물 말미에 '공익을 위한 것'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는 식의 자기 방어적 변명을 덧붙이는 것만으로 객관적인 공익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다만 섣부른 폭로는 명예훼손으로 이어져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된 폭로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근 잇따라 직장 내부 갑질이나 성희롱 폭로가 다소 지연되거나 부정확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퇴사하면서 성희롱 피해 폭로 "무죄"
사건이 벌어지고 1년 5개월이나 지나 퇴사하면서 성희롱을 폭로한 것은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눈길을 끈다.B는 A의 입사 당시 채용 및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한 상사다. 2014년 이들은 함께 회식에 참석했는데, B는 테이블 밑으로 A의 손을 잡기도 했고 "오늘 같이 가요", "맥주집 가면 옆에 앉아요. 싫음 반대편", "답 안 주네. 힘들게 안 할게", "왜 전화 안 하니", "남친이랑 있어. 답 못 넣은 거니" 등의 문자를 보냈다. 당시엔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넘어갔다.A는 1년 5개월 후인 2016년 3월, 본사에서 매장으로 이동하는 전보 발령을 받았다. 발령자는 B였다.
며칠 후 A는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전국 208개 매장의 대표 이메일과 본사 소속 직원 80명의 이메일 주소로 '성희롱 피해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라는 제목으로 B의 성희롱 사실을 밝히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A는 명예훼손(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1항 위반) 혐의로 기소 당했다.이 사건의 핵심은 A에게 'B를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는지 였다. 명예훼손 사안에서는 폭로 사실에 '공공의 이익'이 있는 경우엔 '비방의 목적'이 없어서 처벌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법원의 태도다.
1심과 2심은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급심들은 "원하지 않는 인사발령을 내린 B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해 이메일을 작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건 발생 즉시가 아니라 1년 5개월이 지난 후 매장 전보 발령이 있고 나서야 문제삼았다는 점도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을 넓게 해석했다. 즉 "회사와 같은 특정 사회집단의 이익에 관한 것도 공공의 이익에 포함된다"며 "직장 내 성희롱 피해는 회사와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고, A는 피해를 공유해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피해 구제에 도움을 주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비록 부수적으로 B에 대한 복수심 등 다른 동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로 기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임이므로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특히 하급심 법원들이 유죄 근거로 삼은 '사건 발생과 폭로 사이에 시간적 격차'에 대해서도 "가해자 중심적 문화로 인해 성희롱 피해사례를 즉시 문제 삼을 경우 직장 내 부정적 여론, 불이익한 처우, 정신적인 피해 등 이른바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며 "심지어 B가 2015년부터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문제를 담당하는 지위였기 때문에 A가 직장생활 동안 신고하지 않다가 퇴사를 계기로 폭로했다는 사정만으로 '비방의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퇴사 1년 후 폭로한 갑질..."풍문 전해도 무죄"
내부 폭로에 대한 법원의 관대한 입장은 성희롱이 아닌 사건과 관련해서도 나타나는 추세다.2018년 4월 C씨는자신이 두달 정도 근무했던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 D씨의 직장 내 갑질을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퇴사 1년이 지난 뒤였다. 내용은 "(D는) 무슨 지병이 있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소주 3병은 기본으로 마시고 돌아가야 했다. 어떤 날은 단체로 룸살롱에 몰려가 여직원도 여자를 초이스해 옆에 앉아야 했다"는 내용이었다.
D는 갑질 논란이 불거진 직후, 사과문을 올리며 대표직에서 물러났으나 곧 C를 상대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해 자신의 명예를 해쳤다며 민사와 형사 소송을 동시에 제기했다.
검찰은 법원에 C에 대한 200만원 벌금의 약식 명령을 청구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지만, C는 불복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C는 "내용의 일부는 직접 경험했지만 일부는 들은 사실이며 '공익적 목적'이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1심은 "파도타기나 벌주 등 강제성 있는 음주는 있었지만 회식을 강요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고, 가라오케 주점에서 도우미가 동석한 적은 있지만 룸살롱에 여직원을 데려간 적은 없다"며 C에게 벌금 200만원의 유죄를 선고했다.
중요한 상세 부분이 진실과 차이가 나 공공의 이익이 주요한 동기라고 보기 어려우며 C가 허위사실임을 인식할 수도 있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2심도 벌금을 100만원으로 깎았지만 마찬가지로 유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공공의 이익은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대법원 판결과 같은 결론이다. 이어 “소위 ‘직장 갑질’이 소규모 기업에도 존재하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C의 폭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세부 사실관계가 다소 다른 것도 "D가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상당한 양의 술을 마시도록 강권했다는 지적은 술자리에서 보인 D의 행동과 그로 인해 직원들이 느낀 압박감 등에 비춰 보면 주요 부분에 있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된다"고 판단했다.
◆인사담당자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근 몇개월간 선고된 일련의 대법원 판결은 다소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거나 시간이 한참 지난 이후의 폭로도 '공공의 이익'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1, 2심에서 유죄를 선고했음에도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는 점은 대법원이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증거라는 분석도 나온다.인사담당자들의 리스크 관리 범위도 확대됐다. 한참 지난 일이라고 해도 파악을 해두고 있어야 한다. 특히 인터넷 폭로라는 공개저격은 피해도 크고,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회사의 적절치 못하거나 미지근한 대응이 언급돼 있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볼 수 있게 된다.
공개된 채널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익숙한 MZ세대와 발달한 SNS 공간은 회사의 인사노무 대응이 더욱 철저하고 기민해져야 할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고 발생 당시 당장의 조처도 중요하다. 사건 발생을 확인했다면 철저한 조사를 하고 그에 걸맞는 징계나 보상 등을 충분히 조치해놔야 한다. 당장 피해자를 잘 달래 수습해 넘어가는 것은 시한폭탄을 회사 앞마당에 곱게 묻어 두는 것과 다름이 없어진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투명하게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숨겼다가 소문이 확대 재생산 되면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사실을 폭로하는 전현직원 입장에서도 '공익 목적'은 객관적으로 판단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일부 유튜버들이 폭로성 게시물 말미에 '공익을 위한 것'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는 식의 자기 방어적 변명을 덧붙이는 것만으로 객관적인 공익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