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인력난 원자재 '3중고' 중기제조업…재고율 최고치

화물연대이어 한노총도 운송거부'압박'…레미콘업계 "성수기 포기"
생산 꺾이고 재고는 통계작성이후 최고…주식·코인에 청년'줄퇴사'
"수단·방법 가리지말고 이 가격에 납품하라"…車부품업계 '울상'
경남 한 제조업체 공장에서 직원들이 검수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한국노총 레미콘운송노동조합은 최근 국내 레미콘 수요의 44%를 차지하는 수도권 레미콘업계에 공문을 보내 레미콘 운송비(성과급, 요소수 비용 등 포함)를 30%가량 올려달라고 요구하며 수용하지 않을 경우 내달 초 집단운송거부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다. 한 레미콘업체 대표는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도 운송 거부를 선언하면서 레미콘 업계는 사실상 폭염 전 성수기 영업을 포기한 상태”라고 한탄했다.

화물연대 운송거부의 피해가 컸던 시멘트·레미콘제조업 뿐만 아니라 뿌리산업과 자동차부품업, 기계산업과 금속가공업 등 중소제조업이 전방위적인 물류난, 인력난, 원자재난 등 ‘3중고’위기에 직면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지난 2년간 코로나 사태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벼랑끝에 몰려 있는데, 화물연대 사태 등으로 모처럼 찾아온 ‘포스트 코로나’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중소기업 지표는 이미 지난 3월부터 꺽이기 시작했다. 16일 통계청 광업 제조업 동향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업체의 생산지수(2015년=100)는 지난 4월 102.7로 전년 동월대비 1.6%감소해 두달 연속 감소세가 이어졌다. 반면 재고지수는 117.6으로 전월대비 5.5%증가했다. 이는 2015년 통계 개편이후 사상 최고치다. 생산에 비해 납품 및 판매가 저조하다는 의미다.

한국기계산업진흥회에 따르면 4월 기계산업 생산과 수출도 각각 전년 동월 대비 4.0%, 2.5% 감소했다. 생산은 일반기계, 금속제품을 중심으로 감소했고 수출은 전기기계, 정밀기계 금속제품에서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일반·전기·정밀기계의 재고 증가로 전체 기계산업 재고(조선 제외) 역시 0.5%증가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중소제조업 평균가동률도 4월 72.5%로 정상적인 수준인 80%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코로나 직전(2019년 10월)까지 70%대를 유지하던 소기업(연매출 120억원 이하) 평균 가동률도 68.7%로 30개월째 60%대에 머물고 있다.

성기창 중기중앙회 조사통계부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중국의 봉쇄조치, 각종 파업 등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과 원자재 가격 급등, 환율 영향으로 중소제조업 관련 통계지표는 당분간 계속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당장 중국 상하이봉쇄와 화물연대 운송거부가 해소됐다지만 이에 따른 매출 손실을 메우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생활가전 가구 신발 등 기업·소비자간 거래(B2C) 업종 중소기업들은 천정부지로 오른 유가와 해상·항공운임이 큰 부담이다. 미국 서부 기준 해상운임은 코로나 이전(2019년) 2TEU당 331만원에서 올해 4월 1403만원으로 4배 이상 올랐고, 항공운임 역시 같은 기간 홍콩~북미 노선 기준 2.7배 올랐다. 자동차부품 및 기계 등 기업간 거래(B2C) 업종의 경우 납품단가 반영이 어려워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다. 인천 한 자동차부품업계 회장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정해진 가격에 납품하라’고 압박해 사실상 생산할수록 손해가 나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외국인 근로자 부족과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 기피 등에 따른 인력난도 만성적인 문제다. 수도권 한 제조업체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기대수준이 높아져 4시간 작업에 9만원을 줘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충남지역 한 뿌리기업 사장은 “청년 직원들이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 회사를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며 “‘주식 단타 매매 몇 번이면 일당이 나오는데 굳이 제조업에서 땀을 흘릴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다수”고 지적했다. 이밖에 금리가 오르면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엔화 환율이 올라 일본 경쟁업체의 가격경쟁력이 유리해지는 국면도 중소기업계엔 악재다.

전문가들은 질좋은 일자리의 원천인 중소 제조업 위기는 한국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제조업은 국내 총생산의 29.3%, 수출의 84.3% 차지하고 400만개 일자리가 집중된 한국 경제의 근간이다. 국내 제조기업은 57만9000개로 이 가운데 99%인 57만7000개가 중소기업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중소제조업의 위기는 혁신 역량이나 생산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극복할 수 없는 외부 변수에 따른 것”이라며 ”대기업과 정부, 노동조합이 함께 극복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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