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깨진 종과 지속 가능한 건축

이은석 건축가·경희대 교수 komagroup@hanmail.net
물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오르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모든 나라의 정부가 엄청난 자금을 풀었고,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세계 에너지 시장은 예측불허의 위기 상황이다. 급등하는 식음료비와 건설 현장에서 체감하는 건축비의 비약적 상승률을 보면, 세계적으로 곧 공황이 몰려온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현실적 난제들은 무분별하게 전방위적 개발로 치닫는 인류의 이기심으로 초래됐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극단적 자본주의 병폐의 결과다.

‘형제 사랑의 도시’란 뜻을 지닌 미국 필라델피아에는 ‘자유의 종 센터(Liberty Bell Center)’라는 전시관이 있다. 이곳은 종 하나의 역사를 설명하는 거창한 패널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막상 전시관 끝에 매달린 종을 실물로 대면하면, 에밀레종을 보유하고 종에 관한 한 꽤 자부심을 가진, 우리 한국인은 그 조악함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한다. 심지어 서툰 주조 기술 탓에 한쪽은 깨어져서 이제는 타종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이 도시를 방문한 많은 이들이 이 종에 열광하는 이유는 큰 세계사적 사건들을 떠올리는 연결 고리로 이 종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립을 선언하며 이 종이 최초로 울렸으며, 2차대전 종전을 알리며 타종됐다. 6·25전쟁 고아 합창단에는 위로의 소리였으며, 루서 킹 목사와 만델라 대통령에게는 노예제도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한 종이었다. 이처럼 이 종의 교훈은, 비록 깨어져 보잘것없은 유물일 수도 있으나 거기에 위대한 성취의 역사적 의미가 덧붙여지면, 미국인과 세계인들 가슴속에 항상 살아서 울림을 줄 수 있다는 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건축과 도시를 건설하면서도 유사한 방식은 적용될 수 있다. 현대인은 새것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하지만 새것과 새 가치가 꼭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다. 오늘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새로움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쉬 철거하고 깨어버리는 물질 만능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지만, 오래된 것에도 새 가치를 불어넣는 다양한 리노베이션(renovation) 작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사업이나 계획을 앞두고, 부수고 헐기 바쁘게 접근하기보다 기존 것을 존중하며 고치고 덧대서 시대가 원하는 새 프로그램으로 변환해 작동시킬 줄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건설의 재생 방식들을 모색해 간다면, 자원 고갈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지속 가능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가 축적된 고색창연한 도시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그렇게 모든 오래된 것은 아름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