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탁상 물가대책…공무원이 안 움직인다
입력
수정
지면A1
대통령은 모든 조치 취하라는데최악의 인플레이션을 타개한다는 정부 대책이 기업 팔 비틀기, 시장 실상과 동떨어진 면세 조치 등 구태를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산업계에서 제기된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주문에도 일선 공무원들이 ‘무리수 탁상대책’을 강행하면 물가 부담을 완화하기는커녕 기업·국민 부담이 심화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태 답습' 대책만
돼지고기·밀 無관세인데
"관세 없애니 제품값 내려라"
발로 안 뛰고 대책 급조
기업 "효과 제한적" 속앓이
17일 관련 부처 및 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기획재정부, 국세청 등과 지난 13~14일 관련 기업·협회 관계자를 불러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하는 ‘긴급 민생안정 대책’이 현장에서 즉각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 한 참석자는 “간담회 분위기는 강압적이지 않았지만, 정부 주문을 깡그리 무시할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기업들은 간담회 후 긴급회의를 소집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문제는 지난달 30일 발표된 물가 대책의 핵심 내용이 기업들이 추가로 가격 인하 여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숫자놀음’이란 점이다. 대책에 따르면 다음달 1일부터 연말까지 밀·밀가루, 식용유, 돼지고기 등 식품 원료 7종의 관세율이 0%로 내려간다. 하지만 관세율 0%를 적용하는 밀과 돼지고기 대부분은 이미 캐나다, 미국 등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부터 무관세로 수입하고 있다.
개별 포장한 김치, 된장, 고추장, 간장 등 가공식료품의 부가가치세(10%)는 내년까지 면제된다. 부가가치세 면제 조치는 적용 대상이 일부 된장, 고추장 등으로 많지 않다는 게 한계점으로 지목된다.
한 식품회사 관계자는 “대책 발표 전 관련 부처가 기업들을 몇 차례 불러 건의사항을 제시한 적이 있다”며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은 좋지만, 여론을 의식해 대책을 급조하는 인상을 받았을 뿐 사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뛴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플레 완화에 할당관세 효과는 제한적”이라며 “기업 부담을 낮추는 세금 인하 등의 조치를 계속 발굴하고,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등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수정/강진규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