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특집 : 현대인의 호시(號詩)> 詠靜巖(영정암), 姜聲尉(강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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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詠靜巖(영정암)
姜聲尉(강성위)
巖也千古本無言(암야천고본무언)
以靜加上意何若(이정가상의하약)
不變不動能做箴(불변부동능주잠)
心靜如巖可爲藥(심정여암가위약)[주석]
詠靜巖(영정암) : 정암을 노래하다. 정암은 김위학(金位學) 약사의 아호(雅號)이다.
巖也(암야) : 바위는. ‘也’는 주어 뒤에 놓여 주어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 千古(천고) : 천고에, 천고토록. / 本(본) : 본래, 애초에. / 無言(무언) : 말이 없다.
以靜加上(이정가상) : ‘靜’을 위에 더하다, ‘고요함’을 위에 더하다. 앞 구절에 나온 ‘巖’자 위에 고요함을 뜻하는 ‘靜’자를 더한다는 의미이다. / 意何若(의하약) : 뜻은 어떠한가? 뜻은 무엇과 같은가?
不變(불변) : 변하지 않다, 변하지 않음. 바위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거론한 것이다. / 不動(부동) : 움직이지 않다, 움직이지 않음. 이 역시 바위의 속성 가운데 하나로 거론한 것이다. / 能做箴(능주잠) : 침으로 삼을 수 있다, 침으로 삼을 만하다.
心靜(심정) : 마음이 고요하다, 마음의 고요함. / 如巖(여암) : 바위와 같다. / 可爲藥(가위약) : 약으로 삼을 수 있다, 약으로 삼을 만하다.
[번역]
정암을 노래하다
바위는 천고토록 애초에 말이 없는데
고요함을 위에다 더한 뜻은 어떠한가
불변과 부동이 침으로 삼을 만하다면
바위처럼 맘 고요함은 약 될 수 있지[시작노트]
‘정암’은 필자의 첫 사회 제자인 김위학(金位學) 약사의 아호(雅號)인데, 2019년 여름에 필자가 직접 지어 선물한 것이다. 그리고 이 호시(號詩)는 그해 초겨울에 지어둔 초고를 최근에 몇 글자 고쳐 마무리한 것이다. 호에 더해 호시까지 지었을 정도로 필자와 김약사의 관계는 매우 각별하다.
필자는 결혼한 이래로 10년 가까이 살았던 안양의 ‘충훈부’라는 동네에서 김약사를 알게 되었다. 김약사는 그 때 처음으로 약국을 연 신출내기 동네 약사였고, 필자는 강의할 때 목소리가 갈라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종합감기약을 무슨 보약처럼 먹었던 동네 주민이었다. 감기약을 사러 약국에 자주 들르다 보니 김약사는 물론, 함께 약국을 운영하고 있던 친구 약사와도 자연스레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젊고 건강한 두 약사는 그 또래의 총각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술을 무척 좋아하고 또 무척 자주 하는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필자가 무료(無料)로 한문(漢文)을 가르쳐줄테니 배울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당시에 두 약사는 딱히 사귀는 여자 친구도 없는 데다, 필자의 눈에는 무료(無聊)해서 술을 마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공부도 좀 해보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 권해본 것이었다. 의외로 두 약사가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필자의 제안을 수락해서, 매주 한번씩 2시간 동안 한문 공부를 하게 되었다.
김약사의 친구 약사는 경기도에 자기 약국을 열면서부터 더 이상 공부하러 올 수 없게 되었지만, 김약사와의 한문 공부는 필자가 대학교 연구소의 연구원 생활을 위하여 이사를 갔을 때는 물론, 합정동에 서당을 열었을 때까지 이어졌는데, 필자가 김약사와 함께 한문책을 읽은 기간은 총 7년이 넘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필자와 함께 초급 한문부터 시작하여 사서(四書)의 주주(朱注:주희의 주)까지 다 읽은 제자는 김약사가 유일하다. 그리고 김약사는 어쩌면 우리나라 약사들 가운데 사서의 주주까지 다 읽은 거의 유일한 약사가 아닐까 싶다. 당시에 김약사는 사서의 내용을 일일이 노트에 적어가며 공부하였는데, 그때의 노트를 지금도 여전히 보관하고 있다. 김약사가 본인 약국이 있는 지역의 약사회 임원이 되고, 또 분회장(分會長)이 되어 약사회의 일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필자와의 공부가 중단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빈번하게 왕래하며 지내고 있으니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김약사와의 수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를 잠시 소개한다. 김약사가 결혼을 한 달 가량 앞두고 있던 어느 날에 느닷없이 결혼식 주례 얘기를 꺼내, 당시에 40대였던 필자를 무척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 무렵 총각 약사들 대다수가 대학 시절 은사님을 주례로 모셨던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자의 당황스러움이 더더욱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필자는 끝내 그 어려운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나이도 어리고 덕도 턱없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덜컥 주례석에 서고 말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필자는 김약사 슬하의 두 아들 이름을 다 지었고, ‘연춘재(延春齋:청춘을 늘려주는 집이라는 뜻)’라는 김약사의 약국 당호(堂號)는 물론, 급기야 호와 호시까지 짓게 되었다. 그러므로 필자와 김약사와의 인연은 가족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이제 호시를 보기로 하자. 바위의 속성 가운데 우리가 흠모할 만한 것으로는 ‘변하지 않음’과 ‘움직이지 않음’을 들 수 있다. 이 불변(不變)과 부동(不動)만으로도 바위는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를 깨우쳐주는 멋진 존재물이 된다. 게다가 바위는 그 어떤 소리든 스스로 내지도, 바람과 만나 만들지도 않으니, 바위는 달리 말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보자면 ‘불변’과 ‘부동’에 다시 ‘불언(不言)’이라는 가치가 더해진 것이니, 바위를 일컬어 ‘삼불(三不)’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세상에는 본래 시끄러운 바위라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작호 선생인 필자가 고요하다는 의미의 글자를 바위 앞에 더한 뜻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것이 독자들의 가장 큰 궁금증일 것으로 여겨진다.
‘箴(잠)’은 침을 가리키는 한자인데, 침은 오랜 옛날부터 약과 함께 병을 다스리는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잠언(箴言)’이라는 말은 침의 그러한 속성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한자어이다. 이제 바위의 ‘불변’과 ‘부동’을 침으로 삼으면, 변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아프기 십상인 우리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불변과 부동은 마음이 고요한 데서 생겨나는 의지(意志)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마침내 마음 고요하기가 바위와 같다면 그것이 바로 약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보게 되었다. “靜巖(정암)”이라는 호를 “心靜如巖(심정여암)” 네 글자로 개괄하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매우 큰 기쁨이었다. 그리고 필자가 침과 함께 약을 이 호시에 동원한 이유는 자명하다. 호의 주인인 김약사의 직업이 바로 ‘약사’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약사의 호를 지을 즈음에, 키가 그리 크지는 않아도 다부진 체격에 바위처럼 당당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과 함께, 진중한 태도와 말쑥한 행실을 시종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마침내 바위 ‘巖’자를 쓰는 것이 좋겠다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김약사는 평소에 농담과 웃기를 좋아하지만, 기실은 상당히 과묵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靜巖’이라는 이 호가 김약사에게는 매우 잘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앞으로 약사회나 지역사회를 위하여 무엇인가 매우 ‘묵직한’ 일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김약사의 호로는, ‘靜’이라는 글자가 어쩌면 너무 ‘은자적(隱者的)’인 성향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싶어,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김약사가 묵직한 일을 할 그 때가 되면, 필자가 새로운 호 하나를 다시 선물해야 할 듯하다.
필자의 이 호시는 4구로 이루어진 칠언고시이며 그 압운자는 ‘若(약)’과 ‘藥(약)’이다.
2022. 6. 21.<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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