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만만한 130야드 파3홀?…세계 1위 셰플러도 '더블보기'

US오픈 더CC '죽음의 11번홀'

4개 깊은 벙커, 뒤엔 가파른 절벽
'무빙데이' 핀 옮겨지자 실수 속출
셰플러, 선두서 공동 4위로 추락
3R 평균 타수 3.7개 버디 6명뿐
130야드 길이의 파3홀.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루클린의 더CC(파70·7264야드) 11번홀은 미국 메이저 골프대회 US오픈을 앞두고 가장 만만한 홀로 꼽혔다. 짧은 전장, 넓지만 특색 없는 그린 탓이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결과가 달라졌다. 세계 톱랭커들마저 고개를 내젓는 가장 어려운 홀로 변신했다.

US오픈 11번홀. USGA 홈페이지 캡처
19일(한국시간) 3라운드에서 11번홀은 말 그대로 ‘죽음의 홀’이 됐다. 이 홀의 평균 타수는 3.72개, 대부분 선수가 파 이상을 기록했다. 장타를 펑펑 날리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톱랭커들이지만 이날 11번홀에서 버디를 기록한 선수는 단 6명에 그쳤다. 보기가 13개, 더블보기도 2개나 나왔다. 전장이 짧은 대신 작아진 그린, 주변에 입을 벌리고 있는 4개의 깊은 벙커, 여기에 그린 뒤편에 만들어진 가파른 절벽 등 곳곳에 덫이 도사리고 있었다. 특히 ‘무빙데이’를 맞아 핀이 왼쪽 구석으로 옮겨지면서 선수들의 스코어를 요동치게 만든 주범이 됐다.

최대 희생자는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였다. 이날 전반 9개 홀에서만 3타를 줄여 한때 선두로 치고 올라가며 승승장구했다. 자신감이 과했던 것일까. 대부분 선수가 티샷을 그린 가운데로 보내 2퍼트로 파를 만드는 전략을 택했지만 셰플러는 과감하게 핀을 곧바로 노렸다. 하지만 티샷은 핀을 넘어 뒤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여기에 난해한 언듈레이션이 더해지면서 셰플러는 더블보기로 홀아웃했다. 이 홀에서의 충격 때문인지 셰플러는 이후 2타를 더 잃어 중간합계 2언더파, 공동 4위로 경기를 마쳤다.

11번홀은 US오픈을 앞두고 더CC가 가장 야심 차게 재단장한 홀이다. 더CC는 2010년대 중반 US오픈 유치를 추진하며 코스 재정비에 나섰다. 코스 디자이너 길 한세는 “샷의 기본을 지키는 선수들이 보상받는 홀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전장 길이를 지키면서도 그린 주변 벙커, 러프로 선수들을 교란시켰고 그린에 복잡한 언듈레이션을 더했다. 골프닷컴은 “더CC의 11번홀은 ‘길고 난해한 홀이 가장 공정하게 실력을 판가름한다’는 최근의 투어 경향을 정면으로 반박한 홀”이라며 “점점 비거리가 길어지고 힘이 좋아지는 현대 프로골퍼들에게 대항하는 방법이 8000야드짜리 전장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