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북한 비핵화'다 [여기는 논설실]

1992년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로
한국엔 핵무기 하나도 존재 안해
북한은 핵무기 수십개 보유
‘한반도 비핵화’ 주장은 모순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 주장은
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와해 의도
'북한 비핵화'로 불러야 마땅
사진=연합뉴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의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남북한 전체의 비핵무기화를, 북한 비핵화는 말 그대로 북한 지역의 비핵무기화를 각각 뜻한다. 한국, 즉 남측에는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와 좌파 진영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고수해왔다. 북한도 한반도 비핵화와 같은 뜻의 조선반도비핵화를 내세워 왔다. 그 의도는 뭔가.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가 공식 문건에 처음 등장한 것은 노태우 정부 말기인 1992년이다.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통해 핵 전쟁의 위험을 없애 평화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에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 발효하면서다. 핵무기 시험과 제조, 생산, 보유, 저장, 사용 금지가 담겼다. 당시까지 주한미군은 전술핵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북한도 핵무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던 터여서 남북한 모두 핵무기를 갖지 말자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가 틀리지 않았다.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따라 한국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는 모두 철수했다. 그 이후 한국엔 핵무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 반면 북한은 어떤가. 6차례에 걸친 핵실험 등 지속적인 핵 개발로 수십기의 핵무기를 갖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북한은 이미 2009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폐기한 바 있다. 북한 헌법에 핵무기 보유를 명기했다.

한국엔 핵무기가 없고, 북한에만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는 맞지 않다. 그런데도 북한이 이 말을 고수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미국의 핵 우산을 없애려는 의도에서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제공하는 미국의 핵우산 철회 주장은 한·미 동맹 파기를 노린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에 맞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핵 우산을 약속했다. 북한의 핵 위협시 미군이 보유한 핵으로 이를 억제한다는 개념이다. 북한은 이런 방어적인 핵우산 개념마저 철회하라는 의도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2016년 7월 6일 성명을 통해 미국 핵전력의 한반도 전개 금지 약속, 북한에 대한 핵위협 중단 및 핵 불사용 확약, 한반도에서 핵 사용권을 가진 미군의 철수 등을 담은 조선반도 비핵화 5대 조건을 공개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도 줄곧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남북한 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판문점 공동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도 ‘한반도 비핵화’라고 정의했다. 문재인 정부 외교 안보 관련 인사들은 기회가 생길때마다 ‘한반도 비핵화’가 옳은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5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비핵지대화라는 개념은 소멸된 개념이라고 보고 있다”며 “1992년 남북 선언에 나온 한반도의 비핵화 정의를 이보다 더 어떻게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느냐”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4월 관훈토론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의 유래를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찾으며 “한반도 비핵화라고 쓰는 것은 우리도 비핵화를 하니 북한도 안심하고 비핵화하라는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핵을 가지고 있는 건 북한이고, 북핵 위협을 폐기하는 게 목적이라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로 부르는 게 마땅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취임식 연설에서 북한 비핵화라고 못을 박은 것도 이런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지난달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홍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