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 美 암호화폐 법안 나왔다…비트코인에 날개 달아줄까? [한경 코알라]
입력
수정
6월20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주 3회, 매일 아침 발행하는 코알라를 받아보세요!
무료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
물론 법안이 나왔다고 해서 그대로 암호화폐 규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미국 의회 내부의 다양한 위원회들을 거치며 법안 내용들이 수정될 것이고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거친다. 미국 의회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번 회기에서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처음 나온 ‘친 암호화폐` 규제 법안이다. 앞으로 미국 뿐 아니라 신기술과 산업에 대해 미국과 같이 포용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다른 선진국 정부들도 암호화폐 규제를 만들 때 이 법안에서 다루는 내용을 참고할 가능성이 크다.사실 이번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이 더욱 관심을 받은 이유는 작년 11월 하원에서 가결되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기반 시설 투자법(인프라 법, Infrastructure bill) 때문이다. 이 법안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방안이 포함돼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포함한 브로커가 세금 보고 양식(1099 form)을 발행하고 미국 국세청(IRS)에 신고하도록 했다. 기존에도 코인베이스 같은 중앙화 거래소는 이미 국세청에 고객정보 및 거래기록을 보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납세의 의무를 진 ‘브로커’의 정의를 거의 모든 사업자로 확대하여 암호화폐 업계의 공분을 샀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브로커는 ‘다른 사람 대신 디지털 자산의 이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되면 단순한 커스터디 기능을 제공하는 디지털 지갑까지 브로커에 포함될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디지털 지갑으로 코인을 전송할 뿐인데 매번 취득원가를 기재해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할지. 비트코인을 커피를 사 먹을 때 쓰는 등 일상생활의 디지털 캐시로 사용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은 암호화폐를 실제 일상생활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게 만드는 ‘사용성 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구매할 때 200달러(약 24만 원) 이하 금액까지는 세금 신고 및 납부 의무에서 제외된다(Sec. 201, De Minimis Exclusion). 단, 1000달러 짜리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200달러씩 나눠서 비트코인을 내는 등의 ‘꼼수’는 해당되지 않는다.물론 결제 건당 200달러 한도 내에서의 세금 감면 혜택이 정말 비트코인의 사용성 증진에 효과적으로 이바지할만한 충분한 액수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더 이상 스타벅스 커피 한잔,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 하나 등을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때 머리 아픈 세금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분명 플러스 요인이다. 비트코인이 일상생활 결제에 쓰이는 디지털 캐시로 발돋움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암호화폐 대여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Sec. 205, Digital Asset Lending Agreements)도 비트코인의 실생활 사용성을 크게 증진할 수 있다. 미국 국세청(IRS)은 비트코인을 부동산과 같은 ‘자산’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양도나 대여를 통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 세금을 징수한다. 주식 등 증권의 대여 행위에 있어서는 몇 가지 예외 조항을 두어 비과세 혜택을 줬다. 이번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에서 비트코인 대여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향후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대여를 활용한 금융 서비스, 즉 디파이 영역이 더욱 활발히 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단순히 암호화폐를 타인에게 대여하고 이자를 받는 형태의 디파이를 넘어 비트코인을 주택담보대출의 담보물로 설정할 수 있는 금융 상품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세금 감면 혜택까지 있으니 비트코인의 가치상승을 믿고 장기적으로 보유하려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팔기보다는 디파이 금융 상품들을 이용해 일상생활의 다양한 비용 결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앞서 설명한 200달러 이하 금액 결제 시 비과세 혜택과 더불어 비트코인 대중화에 크게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인프라 법안에서 과도하게 확대하여 해석하여 혼란을 일으켰던 '브로커'에 대한 정의도 명확히 했다.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은 브로커를 ‘자사 고객의 암호화폐 구매,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비즈니스를 하거나 일반적인 암호화폐 교환 과정에 참여하는 자로 다시 정의했다. 암호화폐 채굴자, 디지털 지갑 사업자,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브로커가 아님을 확실히 못 박은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자(PoS 블록체인의 경우 검증인)는 채굴한 비트코인을 팔기 전까지는 국세청에 세금 신고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이번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에 담긴 내용 중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내용은 역시 어떤 암호화폐가 ‘증권`에 해당하는지 그 기준점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의장 게리 갠슬러가 공식 석상에 나올 때마다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하위 테스트를 통과하므로 증권의 범주에 속한다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리플(XRP) 소송, 테라(LUNA) 전방위 수사에 이어, 바이낸스 토큰(BNB)까지 증권에 속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며 암호화폐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는 중이었다.
이번 법안은 기대를 모은 것처럼 암호화폐의 증권 여부에 관한 기준점을 명확히 제시하기보다는 ‘보조적 자산 (Ancillary asset)’이라고 하는 제3의 자산군을 만들어 암호화폐를 집어넣는 방법을 택했다. 법안은 일단 비트코인, 이더리움, 그리고 “완전히 탈중앙화된 암호화폐”로 규정되는 기타 코인들은 증권이 아니라 ‘상품’으로 간주해 CFTC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선물과 옵션시장을 감독하는 미국 연방정부 내 독립 기관)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고 적었다. 그리고 "완전히 탈중앙화되지 않았거나 경영진, 또는 운영진의 노력에 따라 자산의 가치가 결정되는 암호화폐"는 보조적 자산이라 명명했다.
보조적 자산으로 분류된 코인들은 1년에 두 번 SEC에서 요구하는 정보를 제출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성실히 수행한 코인은 다시 상품으로 인정되어 CFTC의 규제 권한 아래로 들어갈 수 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절차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상 SEC에 지금처럼 모든 코인을 하나하나 조사해서 증권인지 상품인지 판별하도록 합법적 권한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법안에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나머지 1만7000여 개의 코인이 “완전 탈중앙화”되었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은 없다. 따라서 일단 대부분의 암호화폐를 보조적 자산의 범주에 넣은 후 SEC가 해당 암호화폐를 철저히 조사하여 상품으로 격상시킬지, 아니면 보조적 자산으로 남길지 결정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제 SEC도 법안의 취지에 맞춰 어떤 경우에 보조적 자산이 상품으로 격상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시행령들을 만들 것이다. 본격적으로 칼자루를 쥔 SEC가 그 칼을 어떻게 휘두를지 지켜볼 일이다.
이 법안의 Sec. 302 (Termination of Disclosure Requirements)에는 “암호화폐가 경영진, 또는 운영진의 노력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완전히 탈중앙화되면 SEC에서 요구하는 정보공개 의무에서 벗어나고 상품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 애초에 이것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자신이 직접 만든 제국을 스스로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암호화폐, NFT, DAO 등 프로젝트들이 ‘탈중앙화, ‘민주적 의사결정, ‘이바지한 만큼 보상받는 생태계’를 신조로 만들어졌지만 결국 끝끝내 창업자와 운영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봐 왔다. 어쩌면 완전히 탈중앙화된 자산은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우연에 의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은 아닐까.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나카모토 사토시는 자기 자신이 비트코인의 유일한 노드일 때 채굴한 백만여 개의 비트코인을 놔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를 성경에 나오는 말을 빌려 ‘원죄없는잉태 (Immaculate conception)’라 부른다. 그만큼 아무런 대가도 없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발명품을 내놓고 홀연히 사라진다는 것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암호화폐가 법안에 적힌 대로 완전히 탈중앙화되어 상품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만약 안드리센 호로위츠 등 이미 수많은 암호화폐에 발을 담가놓은 이해관계자들이 정치권에 로비해서 완전 탈중앙화의 기준이 정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암호화폐 업계는 법안이 나오기 이전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비트코인의 규제 감독을 CFTC에서 담당하게 되면서 앞으로 비트코인의 ‘친환경` 이슈가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CFTC 의장인 로스틴 베넘(Rostin Behnam)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비트코인의 PoW 채굴 방식을 PoS 등 좀 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최근 한 행사에 참석하여 소비자들에게 경제적인 보상을 줘서라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게 해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발언까지 했다.
비트코인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PoW 채굴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지금처럼 운영진, 또는 경영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완전히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PoS 방식은 많은 코인을 보유한 만큼 네트워크에 끼치는 영향력이 세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권력의 집중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이 비트코인처럼 완전히 탈중앙화된 코인을 상품으로 취급해 CFTC에서 감독하게 했다. 그런데 CFTC는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핵심 요소를 버리게 하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누군가 트위터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자 루미스 상원의원이 다음과 같이 직접 답글을 달았다. “(베넘 의장이) 아직 PoW 채굴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그렇다. 앞으로 CFTC 내 동료들과 다른 정부 기관으로부터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거리 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루미스 상원의원의 트위터 답글 / 출처: 신시아 루미스 트위터루미스 상원의원의 말이 맞다. 미국의 친 암호화폐 규제 법안은 이제 막 초안이 발의되었을 뿐이며 아직 많은 부분이 논의되고 수정돼야 한다. 암호화폐 투자자로서 우리가 할 일은 앞으로 해당 법안이 상원과 하원을 거치며 어떤 내용들이 추가되고 제외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는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내놓을 국내 암호화폐 규제, 즉 ‘업권법’ 역시 이 법안의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국내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무료 구독신청 hankyung.com/newsletter
최초의 암호화폐 법, 루미스-길리브랜드 암호화폐 법안
미국 와이오밍주 공화당 상원의원 신시아 루미스(Cynthia Lummis)와 뉴욕주 민주당 상원의원 키어스틴 길리브랜드(Kirsten Gillibrand)가 공동으로 만든 친 암호화폐 규제 법안이 지난 7일 공개됐다. 법안의 제목은 ‘책임 있는 금융 혁신법`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힘을 합쳐 암호화폐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의 틀을 만들려는 미국 내 최초의 초당적 시도다. 아직 무법지대나 다름없는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산업을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어떻게 규제, 육성할 계획인지 본격적인 방향성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기준점 될 것이기 때문에 그동안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과연 이 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물론 법안이 나왔다고 해서 그대로 암호화폐 규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미국 의회 내부의 다양한 위원회들을 거치며 법안 내용들이 수정될 것이고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거친다. 미국 의회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번 회기에서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처음 나온 ‘친 암호화폐` 규제 법안이다. 앞으로 미국 뿐 아니라 신기술과 산업에 대해 미국과 같이 포용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다른 선진국 정부들도 암호화폐 규제를 만들 때 이 법안에서 다루는 내용을 참고할 가능성이 크다.사실 이번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이 더욱 관심을 받은 이유는 작년 11월 하원에서 가결되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기반 시설 투자법(인프라 법, Infrastructure bill) 때문이다. 이 법안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방안이 포함돼있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포함한 브로커가 세금 보고 양식(1099 form)을 발행하고 미국 국세청(IRS)에 신고하도록 했다. 기존에도 코인베이스 같은 중앙화 거래소는 이미 국세청에 고객정보 및 거래기록을 보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납세의 의무를 진 ‘브로커’의 정의를 거의 모든 사업자로 확대하여 암호화폐 업계의 공분을 샀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브로커는 ‘다른 사람 대신 디지털 자산의 이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되면 단순한 커스터디 기능을 제공하는 디지털 지갑까지 브로커에 포함될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 디지털 지갑으로 코인을 전송할 뿐인데 매번 취득원가를 기재해야 한다면 얼마나 불편할지. 비트코인을 커피를 사 먹을 때 쓰는 등 일상생활의 디지털 캐시로 사용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긍정적 측면 - 비트코인 실생활 사용성 증가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은 암호화폐를 실제 일상생활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게 만드는 ‘사용성 증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구매할 때 200달러(약 24만 원) 이하 금액까지는 세금 신고 및 납부 의무에서 제외된다(Sec. 201, De Minimis Exclusion). 단, 1000달러 짜리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200달러씩 나눠서 비트코인을 내는 등의 ‘꼼수’는 해당되지 않는다.물론 결제 건당 200달러 한도 내에서의 세금 감면 혜택이 정말 비트코인의 사용성 증진에 효과적으로 이바지할만한 충분한 액수인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더 이상 스타벅스 커피 한잔, 맥도날드 햄버거 세트 하나 등을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때 머리 아픈 세금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분명 플러스 요인이다. 비트코인이 일상생활 결제에 쓰이는 디지털 캐시로 발돋움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암호화폐 대여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Sec. 205, Digital Asset Lending Agreements)도 비트코인의 실생활 사용성을 크게 증진할 수 있다. 미국 국세청(IRS)은 비트코인을 부동산과 같은 ‘자산’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비트코인의 양도나 대여를 통해 발생한 소득에 대해 세금을 징수한다. 주식 등 증권의 대여 행위에 있어서는 몇 가지 예외 조항을 두어 비과세 혜택을 줬다. 이번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에서 비트코인 대여도 주식과 마찬가지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향후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대여를 활용한 금융 서비스, 즉 디파이 영역이 더욱 활발히 성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단순히 암호화폐를 타인에게 대여하고 이자를 받는 형태의 디파이를 넘어 비트코인을 주택담보대출의 담보물로 설정할 수 있는 금융 상품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세금 감면 혜택까지 있으니 비트코인의 가치상승을 믿고 장기적으로 보유하려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팔기보다는 디파이 금융 상품들을 이용해 일상생활의 다양한 비용 결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앞서 설명한 200달러 이하 금액 결제 시 비과세 혜택과 더불어 비트코인 대중화에 크게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인프라 법안에서 과도하게 확대하여 해석하여 혼란을 일으켰던 '브로커'에 대한 정의도 명확히 했다.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은 브로커를 ‘자사 고객의 암호화폐 구매, 판매에 영향을 미치는 비즈니스를 하거나 일반적인 암호화폐 교환 과정에 참여하는 자로 다시 정의했다. 암호화폐 채굴자, 디지털 지갑 사업자, 그리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브로커가 아님을 확실히 못 박은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자(PoS 블록체인의 경우 검증인)는 채굴한 비트코인을 팔기 전까지는 국세청에 세금 신고를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부정적 측면 - ‘보조적 자산’은 또 뭔가
이번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에 담긴 내용 중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내용은 역시 어떤 암호화폐가 ‘증권`에 해당하는지 그 기준점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였다. 그도 그럴 것이 SEC(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의장 게리 갠슬러가 공식 석상에 나올 때마다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하위 테스트를 통과하므로 증권의 범주에 속한다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리플(XRP) 소송, 테라(LUNA) 전방위 수사에 이어, 바이낸스 토큰(BNB)까지 증권에 속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조사에 착수하며 암호화폐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는 중이었다.
이번 법안은 기대를 모은 것처럼 암호화폐의 증권 여부에 관한 기준점을 명확히 제시하기보다는 ‘보조적 자산 (Ancillary asset)’이라고 하는 제3의 자산군을 만들어 암호화폐를 집어넣는 방법을 택했다. 법안은 일단 비트코인, 이더리움, 그리고 “완전히 탈중앙화된 암호화폐”로 규정되는 기타 코인들은 증권이 아니라 ‘상품’으로 간주해 CFTC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선물과 옵션시장을 감독하는 미국 연방정부 내 독립 기관)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고 적었다. 그리고 "완전히 탈중앙화되지 않았거나 경영진, 또는 운영진의 노력에 따라 자산의 가치가 결정되는 암호화폐"는 보조적 자산이라 명명했다.
보조적 자산으로 분류된 코인들은 1년에 두 번 SEC에서 요구하는 정보를 제출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성실히 수행한 코인은 다시 상품으로 인정되어 CFTC의 규제 권한 아래로 들어갈 수 있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절차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상 SEC에 지금처럼 모든 코인을 하나하나 조사해서 증권인지 상품인지 판별하도록 합법적 권한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법안에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제외한 나머지 1만7000여 개의 코인이 “완전 탈중앙화”되었는지 여부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은 없다. 따라서 일단 대부분의 암호화폐를 보조적 자산의 범주에 넣은 후 SEC가 해당 암호화폐를 철저히 조사하여 상품으로 격상시킬지, 아니면 보조적 자산으로 남길지 결정하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제 SEC도 법안의 취지에 맞춰 어떤 경우에 보조적 자산이 상품으로 격상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시행령들을 만들 것이다. 본격적으로 칼자루를 쥔 SEC가 그 칼을 어떻게 휘두를지 지켜볼 일이다.
기타 아쉬운 부분들
이 법안의 Sec. 302 (Termination of Disclosure Requirements)에는 “암호화폐가 경영진, 또는 운영진의 노력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으로 완전히 탈중앙화되면 SEC에서 요구하는 정보공개 의무에서 벗어나고 상품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다. 애초에 이것이 정말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자신이 직접 만든 제국을 스스로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암호화폐, NFT, DAO 등 프로젝트들이 ‘탈중앙화, ‘민주적 의사결정, ‘이바지한 만큼 보상받는 생태계’를 신조로 만들어졌지만 결국 끝끝내 창업자와 운영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봐 왔다. 어쩌면 완전히 탈중앙화된 자산은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우연에 의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것은 아닐까.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나카모토 사토시는 자기 자신이 비트코인의 유일한 노드일 때 채굴한 백만여 개의 비트코인을 놔두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이를 성경에 나오는 말을 빌려 ‘원죄없는잉태 (Immaculate conception)’라 부른다. 그만큼 아무런 대가도 없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발명품을 내놓고 홀연히 사라진다는 것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얼마나 많은 암호화폐가 법안에 적힌 대로 완전히 탈중앙화되어 상품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만약 안드리센 호로위츠 등 이미 수많은 암호화폐에 발을 담가놓은 이해관계자들이 정치권에 로비해서 완전 탈중앙화의 기준이 정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암호화폐 업계는 법안이 나오기 이전보다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비트코인의 규제 감독을 CFTC에서 담당하게 되면서 앞으로 비트코인의 ‘친환경` 이슈가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CFTC 의장인 로스틴 베넘(Rostin Behnam)은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비트코인의 PoW 채굴 방식을 PoS 등 좀 더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최근 한 행사에 참석하여 소비자들에게 경제적인 보상을 줘서라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게 해야 한다는 다소 극단적인 발언까지 했다.
비트코인이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PoW 채굴방식을 유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지금처럼 운영진, 또는 경영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완전히 탈중앙화된 네트워크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PoS 방식은 많은 코인을 보유한 만큼 네트워크에 끼치는 영향력이 세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권력의 집중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루미스-길리브랜드 법안이 비트코인처럼 완전히 탈중앙화된 코인을 상품으로 취급해 CFTC에서 감독하게 했다. 그런데 CFTC는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핵심 요소를 버리게 하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누군가 트위터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자 루미스 상원의원이 다음과 같이 직접 답글을 달았다. “(베넘 의장이) 아직 PoW 채굴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그렇다. 앞으로 CFTC 내 동료들과 다른 정부 기관으로부터 교육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거리 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루미스 상원의원의 트위터 답글 / 출처: 신시아 루미스 트위터루미스 상원의원의 말이 맞다. 미국의 친 암호화폐 규제 법안은 이제 막 초안이 발의되었을 뿐이며 아직 많은 부분이 논의되고 수정돼야 한다. 암호화폐 투자자로서 우리가 할 일은 앞으로 해당 법안이 상원과 하원을 거치며 어떤 내용들이 추가되고 제외되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는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내놓을 국내 암호화폐 규제, 즉 ‘업권법’ 역시 이 법안의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국내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백훈종 샌드뱅크 COO는…▶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