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캐릭터 들어간 '굿즈'로 돈벌 수 있을까…여기선 됩니다 [긱스]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영화 기생충에서 기정(박소담 분)이 박 사장(이선균 분)의 집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 부른 노래. '독도는 우리땅' 멜로디를 따 개사한 이 노래는 미국에서 ‘제시카 징글(Jessica Jingle)’이라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한 미국 쇼핑몰에 노래 가사가 적힌 티셔츠가 상품으로 올라왔다. 상품 이름은 ‘제시카 외동딸(Jessica only child).’ 제시카 징글 팬덤을 노린 것이다. 반팔 티셔츠부터 후드티, 맨투맨, 머그컵까지 노래 가사가 적혀 판매됐다.
'제시카 외동딸' 굿즈를 팔았던 곳은 미국의 대표적인 크리에이터 커머스 회사인 '스프링'이었다. 한국에서 크리에이터 커머스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미국에선 이미 스프링을 비롯한 회사 10여 곳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발전돼있던 맞춤형 주문제작 시장이 크리에이터 산업과 만나 큰 성장을 이룬 것이다.


입짧은햇님의 '사과잼' 어디서 팔까

한국에서도 이제 크리에이터들은 단순히 콘텐츠 구독 수입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브랜드로 상품을 직접 출시하면서 커머스 영역에 진출하고 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각 플랫폼에 상품을 바로 판매할 수 있는 창구도 있다. 유튜브가 구독자 1만 명 이상인 채널을 대상으로 ‘상품’ 기능을 제공하는 게 대표적이다.

다이아티비, 샌드박스네트워크 등 MCN들이 소속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상품을 제작하고 있다. 다이아티비가 운영하는 다이아마켓엔 먹방 유튜버 입짧은햇님이 충주시와 협력해 만든 '충주씨 달콤한 사과잼', 박막례 할머니의 'HOT핫팩' 등이 판매된다. 샌드박스네트워크의 마켓인 머치머치엔 '초통령' 도티의 슬로건이 박힌 티셔츠와 고양이 유튜버 순무농장의 폰케이스가 올라와있다.새롭게 크리에이터 커머스를 내세운 스타트업들도 주목받고 있다. 마플코퍼레이션이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샵 ‘마플샵’, 캐릭터 작가들의 문구가 특징인 핸드허그의 '젤리크루'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글로벌 크리에이터 커머스가 들어오는 사례도 생겨났다. 미국 리워드스타일이 크리에이터 커머스 플랫폼 ‘리워드스타일’과 쇼핑앱 ‘라이크투 노잇’을 ‘LTK’로 통합하고 국내 영업을 시작했다.


크리에이터 'MD팀' 자처한 회사

캐릭터 '펭수'가 프린트된 담요, 뮤지션 새소년의 앨범 디자인이 담긴 후드티, 유튜버 영국남자의 로고가 들어간 그립톡. 이 상품들은 펭수와 새소년, 영국남자 등 크리에이터들이 마플샵에서 파는 제품들이다. 이런 상품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걸까. 각 크리에이터가 직접 발품을 팔아 제작할 수도 있지만, 마플샵을 이용하면 쉽게 만들 수 있다. 디자인부터 제작과 판매, 배송까지 맡아 각 크리에이터의 ‘MD팀’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마플샵에서 판매되는 펭수 관련 굿즈들
마플샵에 등록된 크리에이터 셀러는 3만5000명, 팔고 있는 상품 종류는 80만 개나 된다. 물건을 파는 셀러들은 자신의 '팬덤'이 있는 유튜버나 틱톡커, 웹툰 작가 등 크리에이터다. 각 크리에이터들이 마플샵 내에서 직접 커머스 사업자가 되는 구조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를 이끌고 있는 회사인 마플코퍼레이션의 박혜윤 대표는 “이전엔 IP를 가진 회사나 상품화를 했던 중앙집권적인 상품 산업이었다면, 이젠 모든 크리에이터가 직접 개인사업자가 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크리에이터가 직접 팬들과 소통하면서 상품을 만드는 과정이 곧 콘텐츠가 되고, 또 그렇게 만들어진 상품 역시 콘텐츠가 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박 대표와 나눈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 관한 일문일답.
박혜윤 마플코퍼레이션 대표
마플샵은 누가 이용하나.
"디자이너, 유튜버, 틱톡커, 웹툰 작가다. 사실 누구나 자신의 IP를 넣은 옷과 폰케이스, 마스킹테이프 등을 파는 셀러가 될 수 있다. 이걸 혼자 준비하려면 티셔츠는 A공장, 폰케이스는 B공장에서 알아보고, 오더를 넣고, 최소 수량까지 맞춰서 주문을 해야 한다. 마플샵 플랫폼을 이용하면 디지털 이미지만으로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사업모델을 구상한 계기는.
"원래 맞춤형 상품 주문제작 플랫폼을 운영했다. 그런데 물건을 사는 분들이 어느 순간부터 각 다른 주소지로 개별 배송을 해달라고 했다. 그때 ‘이분들이 우리한테 물건을 사서 다시 파는 거구나’를 알았다. 그래서 셀러들이 직접 스토어에서 상품을 등록하고, 판매하는 과정을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었다. 그게 지금의 마플샵이 됐다."자신의 상품을 어떻게 제작하나.
"원래 혼자 준비하려면 상품 디자인부터 포토샵을 열고 이미지를 배치해야 한다. 하지만 크리에이터들은 대부분 디자이너가 아니다. 먹방 유튜버도 있고, 운동하시는 분도 있고, 경제TV 만드시는 분, 뮤지션도 있다. 그래서 이미지만 올리면 바로 상품에 디자인이 적용되는 툴을 만든 거다. 주문이 들어와야 제작에 들어가기 때문에 재고 관리도 필요 없다. 얼마에 팔 건지, 상품 설명을 어떻게 할건지는 크리에이터가 결정하는 영역이다."IP를 가진 대형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상품 제작을 하려고 할 것 같은데.
"IP가 많은 기업은 어떤 상품을 개발해서 만들 때 기간이 길어지는 부분을 고민한다. 디자인하고, 샘플 내고, 업체를 찾고, 공장에 발주를 해서 창고에 입고시키기까지 3개월에서 6개월 걸린다. 호흡이 너무 느리다. 트렌드가 생겼거나 콘텐츠가 막 유통될 때 상품이 나와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그래서 이 과정이 빠른 마플샵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같다. 콘텐츠 회사들은 콘텐츠 자체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굿즈 제작은 외부에 맡기는 거다."


그 땐 왜 실패했을까

처음부터 마플샵 같은 형태를 구상했나.
"2007년 처음 창업했을 때는 주문형 제작 상품을 원하는 수요자와 공급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하려고 했다.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그런데 주문형 상품을 제작해줄 공장을 찾기 어렵더라. 직접 제작을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오프라인 사업으로 바꿨다가, 몇년 뒤 온라인으로 다시 도전해봐야겠다고 나섰는데 그 타이밍에 넷마블과 협업하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잘 안됐지만, 지금 되돌아보니 그 과정에서 마플샵의 가능성을 읽었다."

넷마블과의 협업은 뭘 한 건가.
"넷마블의 게임 IP를 상품화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요즘 말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의 일환이었던 건데 몇 년전인 그 때는 ‘마켓 핏’이 안 맞았다. 넷마블 게임을 좋아하는 30대 남성은 티셔츠를 적극적으로 사지 않더라. 비즈니스 모델 자체는 굉장히 이성적인데, 고객과 상품이 안 맞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사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리에이터 시장, 어디까지 갈까

크리에이터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보나.
"그렇다. 지금은 대부분 콘텐츠를 통해 수익이 발생한다. 이제 꼭 콘텐츠를 통한 광고 수익, 구독 수익이 아니라 직접 상품화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쪽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는 상품화를 한다고 하면 중앙에서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다 만들어서 수요자에게 가이드를 주면서 세계관을 만들어 갔다면, 이제는 수요자가, 다시 말해 크리에이터의 팬들이 시장을 끌고가고 있다."
<자이언트 펭TV> 채널에서 판매되는 굿즈들
팬들이 시장을 만든다는 게 무슨 뜻인가.
"마플샵 고객인 한 유튜버는 구독자가 20만 명도 안 되는데 연 5억원의 상품 판매 매출을 올린다. 이 유튜버의 방식은 간단하다. 팬들과 커뮤니티 안에서 놀면서 뭘 팔았으면 좋겠냐고 질문을 한다. 이 과정 자체가 이미 시장조사가 된 상태에서 상품을 런칭하는 거다. 그러면서 팬들 상대로 공모전을 해서 상품에 넣을 그림을 받는다. 팬들이 상품화 과정에 참여하는 거다. 사실 이렇게 공모전을 통해 받은 디자인이 이 유튜버의 디자인은 아니지않나. 그럼 이 IP의 주인은 누구인가가 모호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저작권을 두고 논란이 생길 수도 있겠다.
"그래서 지금의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시장은 일종의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상품화 과정은 이미 다 구축됐는데, 아직 계약 관계나 수익구조의 모델이 소프트웨어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거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델은 팬들과 크리에이터가 협업하면서 모두가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마플샵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려 시도하고 있다."
박혜윤 마플코퍼레이션 대표
수익구조 자체가 달라질 것이란 얘긴가.
"지금은 플랫폼이 수익을 내고 수수료를 크리에이터한테 주는 구조지 않나. 유튜브가 대표적으로 그렇다. 나는 이제 매출의 주체가 크리에이터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크리에이터가 각각 작은 회사가 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플랫폼에 서비스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수익을 나눠주는 구조가 될 거라고 예상한다."

참, 한가지 더

팬덤 굿즈 시장 규모는?

팬덤에 기반한 굿즈 시장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글로벌 아이돌 기업인 방탄소년단(BTS)의 지난 4월 미국 콘서트에서 응원봉이 얼마나 팔렸는지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BTS의 라스베이거스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콘서트의 굿즈 매출은 276억원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흔드는 응원봉 ‘아미밤’만 20만 개 팔렸다. 아미밤 매출만 153억원. 모자·후드 집업·귀걸이·목걸이 등 패션 굿즈 상품 매출도 123억원에 달했다.
위버스숍에서 판매하는 물품들
굿즈 판매는 팬덤 사업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이브의 팬 플랫폼 계열사인 위버스컴퍼니의 지난해 매출은 2587억원이었다. 2018년에는144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3년 만에 20배 가까이 불어났다. 위버스 상점에선 BTS 음악 악보 세트(2만원) BTS 테마로 한 보라색 네일세트(1만6800원) 노래 ‘버터’를 테마로 한 쿠키(2만원) 등을 팔았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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