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중국 '탈출학(runology)'

세계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차이나타운에는 슬픈 역사가 있다. 19세기 말 망해가는 청나라의 농민들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에 ‘쿨리(중국어 쿠리·苦力)’로 불리는 저임금 노동자로 집단 송출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거주지가 오늘날 차이나타운의 효시다.

미국의 사회간접자본은 쿨리의 피와 땀, 목숨의 대가로 일궈졌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건설 현장 등에서 숱하게 희생됐다. 특히 미국 대륙횡단철도 공사 현장은 쿨리의 무덤이 됐다. 서부 최대 난코스였던 시에라네바다산맥 공사에 투입된 쿨리 1만2000명 중 4분의 1인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륙횡단철도 덕에 갑부가 된 릴런드 스탠퍼드와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앤드루 카네기 등이 자신의 이름을 딴 대학을 세웠으니, 쿨리들은 미국 고등교육에도 크게 기여한 셈이다.그 뒤 중국인의 해외 이주에는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변곡점이 됐다. 1989년 톈안먼 ‘정치풍파’(천안문 사태의 중국 이름), 1997년 홍콩 반환, 2018년 장기 집권 개헌(국가주석 임기 제한 조항 폐지) 등을 계기로 이른바 ‘출국열(出國熱)’이라고 하는 해외 이민·유학 러시가 일어났다.

요즈음 중국에 또 한 번의 출국열이 불고 있다고 한다. 시진핑 주석의 ‘제로 코로나(칭링·淸零)’ 정책에 따라 도시가 무차별 봉쇄된 상하이 등에서 젊은 층이 해외 이민에 골몰하면서 ‘윤학(潤學)’이라고 하는 유행어까지 등장했다. 한자 ‘윤택할 윤(潤)의 중국식 발음 ‘룬’의 발음기호[rn]가 ‘도망치다, 탈출하다’는 영어 단어 ‘run’과 같은 표기인 데서 착안한 것으로, 학문을 뜻하는 접미어 ‘ology’까지 붙인 재치 있는 신조어다. 상하이 봉쇄 기간 중 이민 컨설턴트에게 온 이민 문의가 평소보다 10배나 늘고, SNS에서도 이민 관련 검색이 15배 이상 폭증했다.

호주 이민을 결심한 20대 여성의 호주 정착기를 다룬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2015년)의 중국어판 제목은 ‘한국을 걸어 나가다’이다. ‘중국이 싫어서’란 말이 돌까 염려한 현지 출판사가 정부 검열을 의식해 궁리한 제목이라는 후문이다. 개인은 안중에도 없는 정부에 환멸을 느낀 중국 젊은이들의 심정은 ‘중국을 걸어 나가다’가 아니라 ‘중국을 뛰쳐나가다’인데 말이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