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밤새운다고 회사 잘되진 않는다" 여기어때 대표의 경영법 [긱스]

지난해 5월 여행·여가 플랫폼인 '여기어때'가 수장을 새롭게 선임하겠다고 발표하자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신임 대표가 인수합병(M&A)를 주로 다루던 글로벌 사모펀드(PEF)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어때 투자를 진두지휘했던 대주주 출신 투자 전문가가 새 대표로 오면서 여기어때가 '승부수'를 띄웠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경 긱스(Geeks)가 정명훈 여기어때 대표를 만나 지난 1년간의 소회를 물었다.
정명훈 여기어때 대표
4년 전 영국계 PEF 운용사인 CVC캐피털파트너스의 당시 정명훈 한국사무소 대표는 투자 대상으로서 '여기어때'를 처음 만났다. 그가 바라본 여기어때는 '잠재력이 큰데 아직 다 발휘되지 못한 회사'였다. 정 대표는 "포텐셜은 확실히 있는데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가 가장 큰 이슈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정 대표는 "회사의 잠재력이 크다는 확신이 있었다"며 여기어때 인수를 주도했다. 투자 과정에서 그는 여기어때의 직원들이 회사를 성장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했다. 정 대표는 지난해 5월 여기어때 대표로 아예 자리를 옮겼다. 외국계 PE 대표가 포트폴리오 회사의 경영자로 이동한 건 흔치 않은 사례다. "투자 부문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스타트업 경영자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고민이 크지 않았냐"고 묻자 정 대표는 "큰 걱정은 없었다. 어떻게 회사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고 했다.

새 CEO가 오자마자 한 일은

투자은행과 사모펀드 등 금융권 경력만 15년, 하지만 스타트업을 경영해본 경험은 없없던 정 대표가 여기어때의 수장으로 온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전 직원을 만나는 일"이었다고 했다. 당시 여기어때 직원만 400여 명. 정 대표는 "반 년 정도 걸렸다. 한번에 네다섯 명씩 해서 다 만났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너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여기어때를 다니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감대를 만들고, 회사가 어떤 가치를 전달해야하는지에 대해 소통했다.

정 대표 취임 1년 만에 퇴사율은 급감했다. 내부 조사 결과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도 크게 올랐다. 그는 "내가 막 회사에 왔을 땐 회사의 성장 여부와는 별개로 직원 개개인이 '내가 이 곳에서 어떻게 성취를 하고 발전할 거냐'에 대한 비전이 뚜렷하지 않았다"며 "메시지를 뚜렷하게 하고, 공감대를 만들어나가는 데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여기어때 라운지 오픈 기념 행사 모습
'디테일을 챙기는 사람'이라고 정 대표는 스스로를 표현했다. 각 직원이 하는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예컨대 개발파트라고 하면 어떤 개발 솔루션을 이용하는지, 어떤 기술 스펙들이 있고 어디를 개선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나도 공부했다"며 "지금도 개발 수업을 들으면서 학습하고 있다"고 했다. 영업 부문도 전국 모든 지사를 찾아갔다. 카메라가 '구식'이라 숙박업소 사진이 예쁘게 안 나온다는 말을 듣고 바로 카메라를 바꾸는 조치도 단행했다. 영업 직원들 유니폼도 새롭게 제작했다.

그는 "몇 단계 거쳐서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모두 직접 만났다"며 "'새 CEO가 왔다는데 관심과 열정이 있구나' 하는 반응을 얻었다"고 했다. 여기어때는 최근 재택근무도 상시화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 일부 기업이 재택근무를 없애고 있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정 대표가 여기어때 대표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고민한 기간은 딱 3일. "결정을 굉장히 빨리 했다"며 "주변에 아는 CEO들이 많으니 한번 조언을 구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생각만 복잡해질 것 같아서 결국은 혼자 결정했다"고 했다. "직접 투자를 주도했던 회사고, 그 과정에서 회사의 잠재력,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아서 망설임은 없었다"고 말했다. 투자 전문가가 경영인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한 순간이었다. 정 대표는 투자가 시절 타고난 워커홀릭이었다고 했다. 그는 "객기였다"라고도 표현했다.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할 정도로 일했다. 하지만 그는 회사 경영에 대한 동경이 계속 있었다고 했다. CVC캐피털 한국사무소 대표로 팀을 꾸리고 이끄는 과정에서 그 기쁨을 알았다. "CVC캐피털을 떠날 때 있었던 모든 사람은 제 손으로 직접 뽑았던 사람들이었다. 팀을 빌드해 잘 성장시키고 성과를 내는 것만큼 보람있는 게 없었다"며 "여기어때에서 이런 일을 더 큰 스케일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투자자에서 스타트업 경영자로 자리를 옮기며 무엇이 달라졌을까. 일 열심히 하는 건 여전하다고 했다. 하지만 방식은 달라졌다. 정 대표는 "예전엔 나 혼자 밤을 새우면 전체 조직의 생산성이 크게 올라갔지만, 여기어때는 내가 밤을 새운다고 해서 회사 전체가 잘되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전체 직원 520명이 집중하고, 쓸데없이 필요없는 일 안하고, 업무가 잘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여기어때 사무실 모습.
투자자로서 회사를 볼 때와 경영자로서 볼 때 시각도 달라졌다. '무형의 자산'을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직원들의 질, 회사 분위기, 인사와 평가·보상 정책 같은 것들이다. 구체적인 수치로는 퇴사율이나 근무 만족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투자할 회사를 검토한다면 그 부문을 엄청나게 파고들 것"이라며 "예전엔 한 10% 수준으로 봤다면 지금 투자를 결정할 때 40~50% 비중은 줄 것 같다"고 했다.

3년 만에 몸값 4배 불어난 비결

여기어때는 지난 4월 미래에셋캐피탈과 KDB캐피탈, GS리테일 등으로부터 500억원의 투자 유치하면서 유니콘 기업에 합류했다. 3년여 만에 몸값이 약 4배 이상 불어나며 약 1조2000억원 수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투자사들은 엔데믹을 앞두고 여행 및 여가 기업 중 여기어때가 수혜를 볼 것으로 전망하고 이번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어때는 정 대표 취임 이후 새로운 서비스를 연달아 내보이며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해외 여행 전문인 온라인투어 지분 20%를 확보하면서 '항공' 카테고리를 추가했다. 한 달 뒤엔 실시간 렌터카 가격 비교 서비스도 도입했다. 올 초엔 파티룸, 녹음실 등을 예약할 수 있는 공간 대여를 시작했고, 최근엔 개인화된 맞춤형 숙소를 제공하는 홈앤빌라 서비스를 선보였다. 정 대표는 "기존 숙박 영역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로 사업을 늘려가고 있다"고 했다.

신사업을 빠르게 확대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없을까. 그는 "충분히 관리하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고 있다"며 "직원들도 흥미롭고 신난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오히려 이전까지 새로운 걸 하지 못해 불안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는 분위기 같은 게 있었다"며 "우리 직원들은 고성장을 바라고 들어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정 대표는 사람과 조직 문화를 강조했다. 그는 "여기어때가 공장이나 설비, 부동산이 있거나 몇십 년 된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아니지 않나"라며 "사람으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고 했다. "2~3년 전을 되돌아보면 그때의 서비스와 비교해서 질적으로 훨씬 더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2~3년 뒤엔 훨씬 더 좋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트렌드 포착해 빠르게 반영하는 법

정 대표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영업 제한이 심했던 때 여기어때 서비스 중 이른바 '반나절 호캉스', 4시간짜리 숙박 예약이 확 올라가는 게 포착됐다고 했다. 밤 9시 이후로 갈 곳이 없고, 2인 이상 모이는 것도 제한되면서 단시간 호텔 이용이 늘어난 것이다. 트렌드를 확인하자마자 정 대표는 '반나절 호캉스' 서비스 노출을 확 늘렸다. 그러자 거래액이 크게 늘었다.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해 실시간으로 대응한 것이다. 여기어때가 코로나19에도 견고한 성장을 이어간 배경이다.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호캉스 예약 비중은 다시 떨어졌다. 정 대표는 '반나절 호캉스' 서비스를 바로 뺐다. 최근엔 엔데믹을 맞아 가족 단위의 연박 비중이 늘어나는 경향이 확인됐다. 바로 연박 예약 혜택을 내세우며 홍보했다. 정 대표는 "오전에 트렌드를 보고 오후에 바로 서비스에 반영하는 게 가능한 구조"라며 "수요에 따라 굉장히 기민하게 움직인다"고 했다.
여기어때의 지난 5년간 매출액은 연평균 53% 성장해 8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60% 증가한 2049억원, 영업이익도 35% 뛴 155억원을 찍었다. 정 대표가 "여행산업 자체가 성장하진 않았지만 기존 여행 수요가 플랫폼으로 들어오면서 새로운 수요를 많이 가져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가 보는 올해 여행산업 전망은 어떨까.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거나 산업 자체가 굉장히 고성장을 이룰 것 같진 않지만 견고하게 성장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여기어때가 사람들에게 여행과 여가 경험을 사라고 외치는 회사라고 했다. 그는 "물건을 소유하는 사람보다 경험을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얘기를 평소에 많이 한다"며 "우리 구성원들은 모두 어떻게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지 끝없이 고민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참, 한가지 더

올 여름 폭증하는 여행 수요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최근 급증하면서 ‘예약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어때가 발표한 이용자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7.3%는 올해 여름휴가를 떠나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같은 조사(76.2%)보다 21.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숙소와 항공권 등을 선점하려는 이른바 ‘예약 전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여기어때가 상품 예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숙소는 전년 대비 예약 거래액이 3.7배 증가했다. 예약 시점도 3.5일 앞당겨졌다. 작년에는 숙소를 이용하기 평균 48.8일 전에 예약에 나섰던 여행객들이 올해는 52.3일 전에 예약을 마친 것이다. 김용경 여기어때 브랜드실장은 “여름휴가 기간에 숙박 수요가 몰릴 것에 대비하고 원하는 숙소를 선점하기 위해 예약을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외 마스크 해제로 외부 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액티비티 상품의 이용도 전년 대비 4.7배 급증했다. 워터파크 예약 거래액이 전년보다 5.2배 늘었다.

항공 예약 건수는 이달 둘째 주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주와 다섯째 주에도 구매가 몰렸다. 렌터카 이용도 이달 둘째 주 예약 건수가 가장 많았다. 이어 다섯째 주, 넷째 주 순이었다. 여기어때 관계자는 “이동 수단 예약 건수로 볼 때 올 여름 본격 성수기는 이달 중순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해외 항공권 예약도 폭증하고 있다. 인터파크투어에 따르면 지난 5월 해외 항공권 예약 건수는 전달보다 74% 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5월과 비교하면 1533% 증가했다. 지난 6월 초 해외 단체관광객에게 입국 빗장을 푼 일본은 전달보다 항공권 예약 건수가 289.7% 늘었다. 인기 휴양지인 동남아시아 지역의 항공권 예약 건수는 135% 치솟았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