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탄소배출 제로’…에너지 솔루션 기업 댄포스

댄포스는 덴마크의 ‘국가대표’ 친환경 에너지 기업이다. 폐열을 이용한 난방 시스템, 열펌프, 인버터 등을 통해 전기나 열과 같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지난 6월 7일 댄포스 본사를 찾았다. 댄포스 본사 건물은 ‘프로젝트 제로(0)’를 실행 중인 도시 쇠네르보르에 자리 잡고 있다
[한경ESG] ESG NOW
지난 7일 방문한 덴마크 쇠네르보르의 한 건설 현장. 소음이 적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전기 굴착기를 활용해 작업했다. 남정민 기자
“한국처럼 고층 빌딩이 많은 곳에서 댄포스의 에너지 효율화 솔루션이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위르겐 피셰르 댄포스 기후솔루션 부문 사장(사진)은 지난 6월 9일 덴마크 쇠네르보르 댄포스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피셰르 사장은 마트, 업무용 빌딩, 호텔 등 곳곳에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아야 탄소중립을 앞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효율화로 넷제로 속도”

댄포스는 덴마크의 ‘국가대표’ 친환경에너지 기업이다. 1933년 설립한 에너지 효율 기기 생산업체 댄포스는 폐열을 이용한 난방 시스템, 열펌프, 인버터(모터 속도 등을 제어하는 장치) 등을 통해 전기나 열 같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댄포스는 클라우젠 가문이 3대째 경영을 이어온 가족 경영 기업이기도 하다.

댄포스는 EP100(사업장에서 에너지 효율을 30% 이상 개선), RE100(사업장 내 에너지를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EV100(사업장 내에서 전기차만 운행) 등 3가지 친환경 운동에 모두 참여한 최초의 에너지 기업이다. 세계 21개국에 100개 공장을 보유 중이며, 연 매출은 10조원에 달한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도 댄포스의 ‘HVAC(난방·환기·공기 조절) 솔루션’을 적용해 매년 약 5000MW의 전력 소모를 줄이고 있다.피셰르 사장은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40%가 빌딩에서 발생한다”며 “효율적인 열펌프만 설치해도 빌딩은 ‘에너지 먹는 하마’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댄포스는 화석연료 보일러 대신 온수를 이용한 난방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때 밸런싱 밸브를 활용해 빌딩 각 부분에 필요한 양만큼의 물만 순환하게 한다. 댄포스의 열펌프가 설치된 쇠네르보르의 다가구주택 린드 하벤은 연 81MWh의 에너지를 절약 중이다. 그는 “열효율 분야에도 ‘규모의 경제’를 적용하면 한 가구보다는 다가구주택에, 저층 빌딩보다는 고층 빌딩에 에너지 효율화 솔루션을 채택할수록 탄소배출은 배로 줄어든다”며 “열펌프 시장은 5년 내 5~6배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피셰르 사장은 최근 기업들이 공장 디지털 전환(DX)에 속도를 내는 것과 관련해 “새로운 공장과 생산설비를 짓기 전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압축기 하나를 제조할 때도 40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공장을 디자인할 때 어떤 단계에서 어떤 방법으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것인지, 냉난방은 어떻게 하고 환기는 어떻게 할지만 고민해도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굴착기·전기추진선으로 무장한 덴마크지난 6월 7일에는 댄포스 본사를 찾았다. 댄포스 본사 건물은 ‘프로젝트 제로(0)’를 실행 중인 도시 쇠네르보르에 자리한다. 프로젝트 제로는 세계 각국 정부가 탄소중립 목표로 정한 2050년보다 20여 년 앞서 2029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다. 댄포스는 본사 건물의 생산시설, 시험 장비, 행정 사무실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배출하는 실질적 이산화탄소량을 올해 말까지 ‘0’에 수렴하도록 줄인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우선 공장 내부에서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전기와 열에너지를 최소화했다. 회사 관계자는 성인 키의 2배에 달하는 환기시설을 가리키며 “공장 난방 시설망의 내부 온도를 기존 145℃에서 67℃까지 낮춘 이 장비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댄포스는 난방시설과 제조시설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2007년 대비 지난해 70%까지 줄였다. 나머지 투입해야 하는 30%가량의 에너지는 모두 풍력과 태양광발전에서 끌어왔다.

2020년 기준 본사 건물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전기는 50GWh, 열은 31GWh였는데 지난해 100% 풍력·태양광발전 에너지로 대체하는 데 성공했다. 생산량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면 공장 주변의 공공 난방시설에서 바이오매스를 기반으로 한 열을 조달한다. 이들 시설은 목재 등 별도의 바이오매스 원료를 구입하지 않고, 지역 농부의 밭에서 나온 짚을 원료로 쓴다.쇠네르보르 부두에는 순수 전기추진선 ‘엘렌호’가 정박해 있었다. 엘렌호는 한 번 충전으로 최대 40km까지 운항할 수 있다. 전 세계 전기추진선 중 가장 긴 거리를 운항하는 선박이다. 엘렌(Ellen)이라는 이름은 덴마크어 전기(el)에서 따왔다. 엘렌호 관계자는 “배터리 용량은 4.3MWh 규모로 연간 2520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엘렌호와 비슷한 전기추진선을 100대 이상 생산할 예정이다.

환경 선진국인 덴마크는 완공된 공장뿐 아니라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도 탄소중립을 실현하도록 신경 쓴다. 이날 방문한 쇠네르보르의 한 건설 현장에서는 전기굴착기가 쉴 새 없이 땅을 파고 있었다. 전기굴착기는 소음이 적은 데다 탄소배출이 없고, 에너지 효율성도 높다. 현장 총괄 책임자는 “100% 전기로 구동하는 장비를 활용하면 필요한 에너지가 75% 줄어든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은 친환경 건설장비 시장에서 대표적 ‘큰손’으로 꼽힌다. 올해 건설기계 유럽 시장은 전년 대비 4% 성장할 전망이다. 현대두산인프라코어의 전체 매출 중 유럽 시장 비중은 지난해 6.4%에서 올해 1분기 기준 12%로 2배 가까이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친환경 제품 수요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전기굴착기 등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쇠네르보르(덴마크)=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