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값 폭등에…'공사비 검증요청' 역대 최대

"공사비 올려달라" 아우성

올 상반기 14건…55% 늘어
한국부동산원서 검증 업무 맡아
강제성 없지만 '공신력' 인정
조합·건설사, 합리적 대화 가능

원베일리·대조1 등 '해법 고민'
하반기 건설현장 갈등 커질 듯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으로 올 들어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서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요청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달 공사비 검증을 의뢰할 예정인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한경DB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에서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갈등이 깊어지면서 한국부동산원에 접수된 공사비 검증 의뢰 건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시공사가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원자재값 상승을 이유로 증액을 요구하면 정비조합이 ‘제대로 검증해보자’며 부동산원에 요청하는 식이다.

공사비 검증 요청 올 상반기 최다

2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정비사업장으로부터 접수된 공사비 검증 의뢰 건수는 올 상반기 14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9건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55.5% 늘었다. 공사비 검증 요구는 제도를 처음 도입한 2020년 상반기(5건) 이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올 하반기에는 공사비를 검증해달라는 의뢰 건수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공사비 검증을 준비 중인 단지도 적지 않다. 서울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 원베일리’의 경우 3.3㎡당 공사비가 530만원인데 시공사인 삼성물산이 10% 이상 더 올려달라고 한 상태다. 현장 사정을 잘 아는 정비업계 관계자는 “조합이 요청한 자재 고급화, 인테리어 등 추가적인 요구까지 반영하려면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한 곳”이라며 “서울 강남권 대부분 정비현장은 3.3㎡당 공사비가 600만원을 넘기고 있어 공사비가 지역 평균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은평구 대조 1구역도 조합과 시공사인 현대건설 간 공사비 갈등을 마무리짓지 못한 상태다. 조합은 3.3㎡당 공사비가 400만원대 후반인 인근 단지와 비교해 현대건설 요구안(528만원)이 과하다는 주장이다. 조합 관계자는 “기존 공사비를 부동산원에서 이미 검증받은 바 있지만, 조합 총회를 거쳐 다시 검증 요청을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지방에서도 검증을 준비 중인 단지가 생겨나고 있다. 대전 문화8구역 재개발조합도 곧 부동산원에 검증을 의뢰하기로 했다. 이 사업장은 지난달 재개발사업 9부 능선인 관리처분인가를 끝냈음에도 시공사인 GS건설 요청에 따라 공사비 검증 과정을 다시 밟기로 했다.

증액비율이 10%가 넘지 않아 검증이 의무가 아닌 조합들도 앞다퉈 검증 요청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공사비 증액 이슈가 민감해지다 보니 검증이 무료가 아님에도(공사비에 따라 검증 수수료 비례) 조합 집행부가 자진해서 검증을 받겠다고 나서는 곳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검증 끝나도 조합총회 결정에 달려

한국부동산원이 75일간(증액 공사비 1000억원 이상인 경우)의 공사비 검증을 거쳐 보고서를 송부한다고 해도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사비 검증 보고서는 참고용일 뿐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강행규정이 없다. 증액에 합의하는 것은 전적으로 양측의 협상에 달렸기 때문이다.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장인 서울 둔촌주공 조합도 공사비 검증제도가 생겨난 후 맨 처음 활용했지만, 공사비 검증 보고서가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은 시공사, 조합 간 갈등이 격해져 두 달 넘게 공사가 중단돼 있다.

자금이 부족한 조합은 공사비 검증이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경기 성남시의 한 재개발 구역 조합장은 “검증을 받으려면 각종 도면과 자료 제출이 필요한데 이를 준비하려면 별도의 연구용역을 의뢰해야 한다”며 “용역 의뢰비도 부담인 데다 실제로 검증을 거쳐 인상이 필요하다고 결론이 나더라도 시공사 주장대로 증액해주기도 어려워 검증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서울 반포동 원베일리 같은 사업장은 일반분양이 잘 돼 조합 사업자금에 여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조합은 여력이 없어 사업자금 대출에 기대는 상황”이라며 “조합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조합원들로부터 해임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사비 증액 요구에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