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멀더·스컬리처럼 실감나게…한국어 더빙 '미드' 다시 늘까 [입법 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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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스컬리, 진실은 항상 저 너머에 있어요.”
‘한국어 더빙’ 권고 법안 발의
‘더빙 의무화’에 기금지원시
매년 55억원 소요 추산
업계 “넷플릭스 등 OTT와 역차별 우려”
KBS가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한 미국 드라마 'X-파일'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드 열풍’을 일으킨 작품으로 꼽힌다.특히 FBI 특수요원으로 등장한 폭스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 분)와 데이나 스컬리(질리언 앤더슨 분)의 한국어 더빙을 맡은 이규화·서혜정 성우가 원작 이상으로 인물들의 모습을 잘 구현해내 호평을 받았다.
TV서 자취감춘 한국어 더빙 드라마·영화
2000년대 중반 이후 TV에서 'X-파일'처럼 외국 드라마·영화가 한국어로 더빙돼 방영되는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우선 지상파방송사들이 외화 편성 자체를 크게 줄였다. 영화 전문 케이블 채널들이 더빙 없이 한국어 자막으로만 된 외화를 경쟁적으로 내보내면서 지상파들이 굳이 외화를 편성할 유인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여기에 시청자들이 갈수록 한국어 더빙보다는 작품에 등장하는 원어 그대로 듣기를 선호한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KBS는 2017년 1월부터 영국 드라마 ‘셜록 시즌4’를 1TV에서 방영하면서 본방송은 한국어 더빙판으로, 2TV에서 하는 재방송은 자막판으로 제공했다. 일부 시청자들이 “(셜록을 연기한 배우인)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며 더빙 대신 자막판 편성을 요구한 점을 반영한 것이다.TV에서 한국어 더빙 외화가 자취를 감추면서 자막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 등이 방송 향유권을 충분히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지난해 국회에 보낸 의견서에서 “시각장애인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선 모든 방송 프로그램의 외국어 대사와 인터뷰를 한국어로 더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빙을 담당했던 성우들도 생존권과 모국어 보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성우협회 관계자는 “더빙은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자막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 노령층, 미취학 아동 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권리”라며 “정보접근권이라는 기본권 차원에서 더빙의 필요성이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종환·정희용 의원, '더빙 의무화' 법안 발의
국회에서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한국어 더빙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지상파 및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에 한국어 더빙을 권고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도 의원안은 이들 사업자가 외국 수입 영화·애니메이션을 편성할 때 시청자가 한국어 자막과 더빙 중 선택해 시청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어린이를 주 시청자로 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한국어 더빙을 이용한 방송을 하라고 권고했다.도종환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법안은 더빙을 의무화하는 건 아니고 다만 사업자가 노력해야 한다는 권고 성격의 취지”라며 “사실 의무화도 생각을 했지만 그러면 민간 사업자를 너무 압박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일단 권고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도 의원에 앞서 지난해 4월엔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외화의 한국어 더빙 편성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 의원안은 지상파와 종편을 포함한 모든 방송사업자들에 한국어 자막과 더빙을 함께 제공하도록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드는 비용은 방송통신발전기금에서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정 의원안에 대해선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관련 부처와 업계 의견 등을 확인해볼 수 있다.우선 방송업계를 대표하는 한국방송협회는 정 의원안에 대해 “자막과 더빙을 함께 제공하면 제작비와 제작인력이 각 두 배 이상 소요되는 등 비용이 대폭 상승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추가로 드는 비용으로는 ‘편당 2000만원’을 제시했다. 방송협회는 “영화 더빙 시 평균 10명 가량의 성우가 투입돼 별도 녹음 과정을 거쳐야 해 자막 제작비용의 3~4배가 든다”며 “개정안과 같이 더빙과 자막을 동시에 제공하면 현재 제작비의 5배가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송협회는 “자막과 더빙을 동시에 노출하면 시청자 혼란 및 화면 접근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다”고도 했다.
방송업계 "추가비용에 OTT와 역차별 우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5월 정희용안대로 방송통신발전기금에서 더빙 비용을 지원할 경우 연평균 55억원, 향후 5년간 273억원이 들 것으로 추계했다.반면 도종환 의원은 한국어 더빙을 권고사항으로 제시하면서 추가로 드는 비용을 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은 법안에서 제외했다.도 의원 측은 “방송사업자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추가로 더빙을 한다면 기금 지원에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고 했다.
더빙 관련 규제를 받지 않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과의 역차별 등 형평성 문제도 지적됐다.
케이블TV방송협회 소속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를 대변하는 PP협의회는 “한국어 더빙에 상당한 시간 소요로 해외에서 편성된 콘텐츠를 적시에 시청자들에 공급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OTT 플랫폼은 해외 콘텐츠를 적시에 제공할 수 있지만 TV 플랫폼에서는 제작에 상당한 시간 소요로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한국IPTV방송협회는 “더빙과 자막 콘텐츠는 수요 계층 및 개인별 성향에 따라 선호도에 차이가 있으므로 주 수요층에 맞춰 방송사업자의 자유로운 편성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도 의원실 관계자는 “사실 더빙 규제 대상에 OTT도 넣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OTT가 콘텐츠 생산의 주체는 아니고 플랫폼이라는 점을 고려해 일단 대상에서 뺐다”며 “OTT에까지 더빙 의무화를 권고하는 건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과방위는 후반기 국회 원구성 협상이 완료되는 대로 조속히 법안소위를 열어 도종환·정희용 의원 등이 발의한 한국어 더빙 의무화 법안을 함께 심의할 계획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