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익 환수하겠다고? 사회주의 국가냐"…뿔난 직장인들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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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유사 초과이익 회수하겠다" 엄포"정유사의 초과 이윤을 회수하겠다고요? 사회주의 국가인가요."
"월 영업익 3250억 증발"…정유주 일제히 급락
물가 상승 책임 기업에 돌려…포퓰리즘 비판
2020년 5조 손실 정유사…"손실땐 보상해주나요"
"탈원전 등으로 실적이 훼손된 한국전력공사처럼 사기업도 망가뜨리겠다는 발상이네요."직장인들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추진하는 정유업체 초과 이익 환수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는 물론 여러 커뮤니티에는 민주당의 초과 이익 환수에 대한 비판글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정유업체의 초과 이익을 기금·세금(횡재세) 형태로 환수해 치솟는 휘발유 가격을 L당 200원 이상 끌어내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 기름값을 잡겠다는 심산이다. 물가 상승의 책임을 기업에 돌려 성난 민심을 무마하려는 '포퓰리즘 정책'의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공세가 되레 기름값을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상당하다.
22일 삼성증권에 따르면 정유업계 4사가 기름값을 L당 100원 인하할 경우 월간 영업이익이 3250억원가량 증발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회사별 영업이익 감소폭을 보면 SK이노베이션 930억원, 에쓰오일 790억원, GS칼텍스 740억원, 현대오일뱅크 730억원의 예상된다고 봤다. 야권의 초과이윤 환수로 기름값을 내린다는 전제로 산출한 영업익 증발폭이다. 민주당은 초과 이윤 환수 등으로 기름값을 L당 200원까지 내릴 것이라고 밝힌 만큼 정유업계 영업익 감소폭은 이를 웃돌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실적 충격 우려에 이날 오전 11시 기준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 주가는 장중 각각 4%, 1%가량 빠졌다. 전날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기자들을 만나 “국내 4대 정유사(현대오일뱅크·GS칼텍스·에쓰오일·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은 4조7668억원에 달한다”며 “고통 분담 차원에서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최소화하거나 기금 출연을 통해 환수하는 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전날 “휘발유와 경유값을 200원 이상 떨어뜨려 국민이 체감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며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환수하겠다고 밝히자 기업들과 투자자들의 우려도 불거졌다. 기업 관계자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삼성전자 이익도 환수하자는 말도 나올 것"이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초과이윤 환수(횡재세) 쟁점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초과로 얻은 이득을 어떻게 따로 산출할 수 있느냐는 것부터가 논란거리다. 정유업체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국제유가가 뜀박질하면서 보유한 원유 재고 평가이익이 늘어난 영향도 컸다. 반대로 초과로 손실을 볼 경우 정부가 보상해줄 수 있느냐는 반발도 나온다. 2020년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정유업체들은 5조3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정유사 관계자들은 "2020년 유가가 내려갔을 때 이자를 내는 것도 벅찼다"며 "내수 사업은 최근 몇 년간 밑지는 장사로 이제 겨우 돈을 번다"고 말했다.배당하거나 투자해야 하는 이익을 환수하면 주주의 재산권을 훼손한다는 문제도 발생한다. 기업 이익을 강제로 환수하거나 이를 경영진이 묵인할 경우 배임 혐의 등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초과이윤 환수는 기업의 투자·이윤추구 심리를 꺾을 수 있다. 초과이윤세 부과로 정유사는 생산할수록 이익이 줄어드는 만큼 공급을 줄이거나 설비가동률을 낮출 가능성이 높다. 초과이윤 환수로 기름 가격이 되레 오르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유업체의 설비투자 축소로 향후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 영국도 정유업체에 초과이윤세(횡재세) 부과를 결정한 직후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180억파운드 규모의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시장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고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기업이 가격이 상승할 때 이익의 상당 부분이 몰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비즈니스는 생존력을 잃는다"며 "에너지 부족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에 대해 제공되는 보상을 과장하면 다음 공급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