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은의 생명의학] 대학 현장의 '피터팬 증후군' 예방하려면

막대한 연구개발비…기술상용화는 요원
'장롱 특허'나 논문에 안주하는 관행 탓
사회 문제 발굴하고 해결책 제시해야

김상은 서울대 의대 교수·미래융합협의회 회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총 연구개발비는 93조717억원이었으며 정부와 민간 투자 비중은 각각 23.2%(21조5812억원), 76.6%(71조2693억원)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대학에 투입된 연구개발비는 7조1346억원에 달했으며, 최근 5년 사이 25.9% 증가했다. 대학 연구개발비의 78.1%를 정부 지원금(5조5718억원)이 차지했으며 민간 지원금 비중은 15.8%에 불과했다. 대학 연구개발비의 70% 이상이 공학, 의약학 등 응용·개발 연구에 투입됐으며 자연과학 등 기초 연구 투입 비중은 20%가 채 되지 않았다.

과학기술 연구는 연구 주제와 목적에 따라 지식 창출을 위한 기초 연구, 문제 해결을 위한 응용 연구, 기술 확보를 위한 개발 연구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연구 지향점이 다른 만큼 성과 목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기초 연구는 주로 논문, 연구보고서, 전문서적 등 학술 미디어를 통해 연구 성과로 창출된 지식의 검증, 전파, 일반화 과정을 거치면서 연구 목적을 달성한다. 반면 응용·개발 연구의 성과 목표는 이와 달라야 한다. 연구 성과가 사람과 사회를 위한 제품·서비스로 연결돼야 한다. 사람과 사회의 문제를 발굴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응용·개발 연구의 최종 목적이기 때문이다. 논문 발표나 지식재산권 획득에서 끝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국내 대학 연구 현장의 현실은 어떤가. 대학 연구개발비의 70% 이상이 응용·개발 연구에 투입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학 응용·개발 연구자 대부분은 연구개발 성과 목표를 여전히 논문 출판과 특허 등 지식재산권 획득에 두고 있다. 대학과 한국연구재단 등 국가 연구개발 관리 기관의 연구 성과 평가 체계도 논문 및 특허 성과 중심으로 짜여 있다. 연구 성과의 제품·서비스화 연결 지표로서 대학의 기술이전 실적을 살펴보자. 대학의 기술료 수입과 기술이전 건수는 최근 5년 사이 증가 추세이기는 하나 여전히 미흡하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대학 기술료 수입은 1004억7700만원으로 연구 생산성(연구개발투자 회수율)이 1.56%밖에 되지 않았다. 건당 기술료도 2000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질적 성과도 문제다. 전체 기술료 가운데 89.1%가 선급금을 포함한 정액기술료로 경상기술료는 10.9%에 불과했다.

응용·개발 연구의 성과가 사회적 가치를 지닌 제품·서비스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연구개발 성과 목표에 대한 연구자 인식이 바로 서야 한다. 아울러 연구개발비 지원 및 평가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이를 자극해야 한다. 먼저, 대학의 응용·개발 연구자들은 학문과 진리의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전통적인 울타리를 뛰어넘어 그들의 연구 활동을 통해 학문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심 고리가 돼야 한다. 그들의 연구개발 성과가 시장과 사회에서 인정받는 가치를 지니는 제품·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성과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응용·개발 연구자 스스로 성과 목표의 구속력과 엄격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정부 연구개발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산학협력 연구 등을 통해 민간 연구개발비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 이를 통해 대학 응용·개발 연구에 대한 민간 투자 비중을 3분의 2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정부 연구개발비 지원 방식도 과감히 바꿔야 한다. 기초 연구에 대해서는 그랜트형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응용·개발 연구에는 나눠주기식 배분이 아니라 성과지향 투자 방식을 도입해 연구개발 목적에 맞는 성과 창출 및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이제 대학의 응용·개발 연구자들이 사람과 사회의 문제를 발굴, 해결책을 제시하는 임팩트 연구를 통해 학문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심 고리로 나서야 한다. 정부도 연구개발 지원 정책 정비에 나서 정부 연구개발비 지원과 느슨한 평가 체계에 안주하며 그저 그런 논문과 ‘장롱 특허’ 생산에만 빠져 있는 연구자를 솎아내야 한다. 정부 지원에 안주하며 연구자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는 대학 연구 현장의 ‘피터팬 증후군’을 예방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