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아침 시편] 만리장성 쌓은 벽돌공들은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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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날랐을까?
그리고 여러 번 파괴되었던 바빌론-
누가 일으켜 세웠을까? 건축노동자들은
황금빛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 살았을까?
만리장성을 다 쌓은 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중략…)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취사병 한 명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서 이겼다. 그 말고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
이렇게 많은 사실들,
이렇게 많은 의문들.
*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 독일 극작가이자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극작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시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등의 기막힌 시를 많이 썼지요.
직설적인 진술과 절묘한 반전으로 현실의 모순을 비판한 ‘20세기 최고 독일 시인’으로 꼽힙니다. 주로 기존 가치관에 대한 비판과 자유 의식, 인간에 대한 사랑,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평화주의를 노래했죠.
만년에는 동독의 동베를린으로 옮겨 후배 극작가와 연극인을 양성했는데, 그곳에서도 여전히 체제를 풍자하는 작품을 쓰다 195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사회주의자로 찍혀서 그의 책이 금서로 지정됐습니다. 그러다 해금된 뒤로는 아주 큰 사랑을 받았지요.
이렇게 반복해서 질문한 다음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까지 덧붙입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독일 시인”이라고 극찬한 것처럼 브레히트의 탁월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그의 시는 동독 첩보기관 슈타지의 비밀감청을 다룬 영화 ‘타인의 삶’에도 인용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는 권력자가 있는가 하면 허망하게 죽어가는 일선 병사들이 있습니다. 브레히트 말처럼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런 장면들이 계속되는데 그 비용은 정말 누가 지불하는 걸까요?
‘이렇게 많은 사실들,/ 이렇게 많은 의문들.’■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
왕들이 바윗덩어리들을 날랐을까?
그리고 여러 번 파괴되었던 바빌론-
누가 일으켜 세웠을까? 건축노동자들은
황금빛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 살았을까?
만리장성을 다 쌓은 날 저녁,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중략…)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취사병 한 명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하자
울었다. 그 말고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서 이겼다. 그 말고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
이렇게 많은 사실들,
이렇게 많은 의문들.
*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 독일 극작가이자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극작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시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등의 기막힌 시를 많이 썼지요.
직설적인 진술과 절묘한 반전으로 현실의 모순을 비판한 ‘20세기 최고 독일 시인’으로 꼽힙니다. 주로 기존 가치관에 대한 비판과 자유 의식, 인간에 대한 사랑,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평화주의를 노래했죠.
히틀러 집권 후 15년 넘게 망명
제지공장집 아들로 태어나 소년 시절부터 시를 썼는데, 뮌헨대 의과에 들어가 짧은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의학을 버리고 시와 연극에 매진했습니다. 초기에는 낭만주의 계열의 작품을 쓰다 ‘낯설게 하기’ 기법을 도입하는 등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거듭했습니다.1933년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자 독일을 떠나 스위스, 체코, 스웨덴, 핀란드, 미국을 떠돌며 15년 8개월이라는 긴 망명 생활을 했지요. 그의 수작들은 오히려 이 불안한 망명기에 나왔습니다. 나치즘을 비판한 희곡 ‘제 3제국의 공포와 참상’(1938), 30년 전쟁을 주제로 한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1941)도 이 시기에 출간됐고요.만년에는 동독의 동베를린으로 옮겨 후배 극작가와 연극인을 양성했는데, 그곳에서도 여전히 체제를 풍자하는 작품을 쓰다 1956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사회주의자로 찍혀서 그의 책이 금서로 지정됐습니다. 그러다 해금된 뒤로는 아주 큰 사랑을 받았지요.
“당대 최고로 위대한 독일 시인”
그의 시집 ‘스벤보르 시편’에 실린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은 영웅주의 사관의 허구를 잘 드러낸 수작입니다. 이 역시 망명지 덴마크에 있을 때인 1935년에 썼습니다. 승리자와 지배자의 관점으로 서술되는 역사의 이면을 비추면서 실제로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또 누구여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지요.여러 차례 파괴된 바빌론을 누가 일으켜 세웠는가, 만리장성을 완성한 벽돌공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알렉산더나 시저가 혼자 힘으로 그 많은 전과를 올렸는가, 프리드리히 2세가 승리했을 때 함께 있던 병사들은 누구인가….이렇게 반복해서 질문한 다음 ‘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까지 덧붙입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독일 시인”이라고 극찬한 것처럼 브레히트의 탁월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지요. 그의 시는 동독 첩보기관 슈타지의 비밀감청을 다룬 영화 ‘타인의 삶’에도 인용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는 권력자가 있는가 하면 허망하게 죽어가는 일선 병사들이 있습니다. 브레히트 말처럼 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런 장면들이 계속되는데 그 비용은 정말 누가 지불하는 걸까요?
‘이렇게 많은 사실들,/ 이렇게 많은 의문들.’■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