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에게도 꿈의 무대였는데…잘 나가던 뮤지컬계 무슨 일이 [연계소문]

[김수영의 연계소문]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김호영 고소한 옥주현…뮤지컬계 '시끌'
배우가 캐스팅 관여?…진위 여부에 촉각
옥주현·EMK 측 "관여한 적 없다" 입장
'티켓 파워' 치중하는 분위기에 자정 목소리도
뮤지컬배우 옥주현, 김호영 /사진=한경DB
뮤지컬계가 캐스팅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핵심은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가 인맥과 친분을 내세워 제작사의 고유 권한인 캐스팅에 관여할 수 있느냐는 것. 한국 뮤지컬 시장은 높은 배우 출연료·제작비 등의 문제로 무대가 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논란은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여졌다.

논란은 뮤지컬배우 김호영이 SNS에 올린 글에서 시작됐다. 지난 14일 김호영은 "아사리판은 옛말이다. 지금은 옥장판"이라는 글과 함께 옥장판 사진을 게재했다. 이를 두고 '옥장판'이 옥주현을 겨냥한 저격이며, 뮤지컬 '엘리자벳' 10주년 공연의 캐스팅에 문제가 있었다는 추측이 쏟아졌다.네티즌들은 당초 '엘리자벳' 10주년 공연의 주연으로 예상됐던 김소현이 라인업에서 배제된 가운데, 옥주현과 이지혜가 엘리자벳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는 점과 황제 프란츠 요제프 역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하게 된 길병민에 주목했다. 이지혜는 옥주현과 절친한 사이이며, 길병민은 JTBC '팬텀싱어3'에서 옥주현과 인연을 맺은 바 있다. 이에 옥주현이 인맥을 내세워 캐스팅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라이선스 뮤지컬의 특성상 원작자의 승인 없이는 출연진 캐스팅이 불가하며, '엘리자벳'의 배우 캐스팅 과정 역시 원작자의 계약 내용을 준수해 공정하게 진행했다"고 반박했다. 옥주현 역시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했고, 급기야 김호영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른 배우들이 줄줄이 "배우는 연기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뿐 캐스팅 등 제작사 고유 권한을 침범하지 말아야 하며 스태프는 몇몇 배우의 편의를 위해 작품이 흘러가지 않도록 모든 배우를 평등하게 대해야 하고 제작사는 함께 일하는 스태프와 배우에게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뮤지컬 1세대들의 호소문에 뜻을 같이하자 김호영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다만 캐스팅과 관련해서는 "관여한 적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상황은 썩 좋지 않다. 배우들의 호소문 동참 릴레이가 이어지면서 이를 뮤지컬 배우와 가수 출신 간 대립으로 보는 단편적인 시각까지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부 갈등 상황에 매몰되기보다는 업계의 관행으로 자리 잡은 불공정이 있었는지 논란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최근 들어 지속해서 문제 제기가 되어 온 '티켓 파워'를 앞세운 캐스팅에 대한 고민도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 뮤지컬계는 '뮤덕(뮤지컬 덕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이돌 시장 못지않게 '팬덤형'으로 성장해왔다. 이에 맞춰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는 대작에 필수적으로 합류하는 흐름을 보여왔고, 이른바 '회전문 관객(같은 작품을 반복적으로 계속 보는 관객을 이르는 말)'의 힘으로 작품은 장기 흥행을 유지해왔다.

이후 더 강력한 스타성을 지닌 아이돌 출신들이 대거 뮤지컬 무대로 넘어왔다. 인기 아이돌들이 뮤지컬 데뷔와 동시에 주연 자리로 직행하는 것에 대한 원성도 있었지만, 스타 기용은 이미 객석을 꽉 채울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뮤지컬 무대를 향한 문은 수많은 이들의 꿈이 모여들며 더 좁아졌다. 그렇기에 더욱 공정한 환경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제작 상황상 스타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이로 인해 공정한 평가까지 무의미해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주연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객석 점유율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티켓 파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공정성을 기반으로 한 자정 능력 없이는 긍정적 발전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면서 "코로나19로 위축됐던 공연 업계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상황에 이런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 그러나 외면하기보다는 문제가 촉발된 이유에 대해 업계 전반이 심도 있게 고민하고 논의할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