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도어스테핑 피로감 [여기는 대통령실]

좌동욱 반장의 대통령실 현장 돋보기

도어스테핑은 양날의 칼
아직은 호평이 더 많지만 대통령·참모·내각에 부담도

일정 정례화하고 횟수 줄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정권 교체 후 거의 유일하게 국민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 준 사례입니다.”

최근 만난 대통령실의 한 참모가 윤석열 대통령의 ‘도어 스테핑’을 언급하며 반성하듯 들려준 얘기입니다. 정권을 교체한 후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여러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불확실한 경제 여건과 여소야대 정치 지형도 등 난제 때문에 단기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취지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저는 “도어스테핑도 조마조마하다”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겠다”는 대통령실 바닥 민심을 들려줬습니다. 언론들이 이런 의견들을 이런 저런 참모들에게 건네지만, 실제 대통령 귀에 들어가고 있는 지 여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이 출근길에 출입기자들과 갖는 약식 회견입니다. 받는 질문은 두 세개, 많으면 일곱 여덟 개까지 늘어납니다. 청와대에 있던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면서 가능해진 일입니다. 청와대 궁궐 속에 있던 대통령이 거의 매일 언론에 나와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해 ‘날것’ 그대로의 심경을 보여주는 모습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청와대 이전을 무리하게 강행했다는 비판 여론은 ‘쏙’ 들어갔습니다. 이런 성과는 거의 윤 대통령의 ‘개인기’와 다름없었습니다. 출근길 도어스테핑 자체가 기획된 장면이 아닙니다. 대통령 취임 후 첫 출근날 영상을 찍으면서 ‘대통령의 소감’도 한번 물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초기엔 경호처로부터 사전 허가도 받아야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소감 뿐 아니라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서도 답변을 하기 시작하고, 이런 출근길 문답을 언론들이 호평하자 지금처럼 굳어졌습니다. 물론 이런 모습들은 대선 과정에 여러 현안을 놓고 “청와대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고 했던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5분 남짓의 짧은 시간 대통령이 답변하는 과정에 불필요한 오해와 혼선을 초래하는 경우가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국정현안을 짧은 시간 단칼에 무 배 듯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을 주워담는 과정에 또 다시 혼선이 발생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3일 발표한 주 52시간 근로제 개편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출근길 발언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질문은 ‘제도 개편안에 대한 노동계 반발에 대해 대통령의 견해’를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답변은 다음 딱 한 문장이었습니다.

“어제 보고를 받지 못한 게 언론에 나와 확인해 보니 노동부가 (자료를) 배포한 게 아니고, (추경호)부총리가 노동부에 민간 연구회 등 이런 분들 조언을 받아 노동시간의 유연성에 대해 검토를 해보라고 얘기를 한 상황이다. 아직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발표된 게 아니다 ”

정식 기자회견이었다면 이 답변만 가지고 여러 후속 질문이 쏟아졌을 겁니다. 장관이 하루 전날 발표한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지 못했다”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며 사실상 부인을 한 취지로 해석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최근 노동계는 정권 교체 후 대통령이 재계와 더 가까워지고 있다며 하투(夏鬪)를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 노사가 모두 민감할 수 있는 발언을 대통령이 한 것입니다. 상당수 기자들이 후속 질문을 원했지만, 당시 회견장에선 곧바로 다른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대통령의 정확한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을 주워담는 과정도 명쾌하진 않았습니다. 대통령실과 노동부 장관 간 혼선에 대해 양측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약대로 노동 개혁을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 전문가와 노사 양측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겠다”는 게 윤 대통령의 답변 취지입니다.

“보고를 못 받았다”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는 발언은 불필요한 사족입니다. 보고 누락의 책임을 의식해서인지 대통령실에선 면피성 해명들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불필요한 발언이 논란으로 비쳐진 사례들은 또 있습니다. 검찰 출신 편중 인사 비판에 대해 “과거엔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냐”고 한 발언이나, 김건희 여사 관련한 질문엔 “대통령은 처음이라, 어떻게 방법을 알려주시라”라고 한 말들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대통령의 심중을 날것 그대로 알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지만,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다” “불안불안하다”는 부정적 의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대통령과 국민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발생하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상 이런 문제가 나오면 해법은 두갈래입니다.

우선 대통령이 정답을 얘기할 수 있도록 참모들이 사전에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드는 것입니다. 늘공들이 늘상 하는 일이고, 이미 도어스테핑에서도 상당부문 체계가 마련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삼라만상의 모든 국정 현안에 대해 대통령이 정답을 꿰고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게 가능하다면 윤 대통령이 그토록 혐오했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대통령과 현안을 놓고 즉석 문답을 나눈다는 도어스테핑의 취지와도 잘 맞지 않습니다.

다른 해법은 도어스테핑 횟수를 조금 줄이는 방안입니다. 지금도 대통령의 공식, 비공식 일정이 있으면 도어스테핑을 건너뛰고 있습니다. 다만 도어스테핑은 정기적이어야 하고 예상가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원할 때만 도어스테핑을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때문입니다. 대수비(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나 국무회의 등 대통령 주재 회의가 있는 날 등으로 일정을 사전에 정해둘 수 있습니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은 여러 통로를 통해 이런 의견들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참모들은 여전히 호평이 더 많은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관행을 바꾸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어떤 결론을 내릴 지 궁금합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