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내 인생을 따뜻하게 해줄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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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프롤로그>
요리의 대중화를 이끈 사업가 백주부(백종원)는 한때 사업에 실패하여 큰 빚을 지고 인생을 마무리하고자 홍콩으로 떠났고, 한 식당에서 마지막 밥을 먹던 중 사업 아이템을 떠올리고 재기하여 성공하였다고 회고한다. 인간에게 한 끼의 식사는 삶에 큰 의미와 용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데 공감이 간다. 영화<엘리제궁의 요리사(Haute cuisine), 2012>에서 대통령 개인 요리사로 입성한 주인공이 중요한 국정을 이끄는 리더에게 음식을 통해 안식과 용기를 선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릴 적 계란 프라이,김, 꽁치구이가 귀했던 시절 여러 형제들과 다투며 먹었던 추억이 내 영혼에 큰 위안과 행복을 주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영화 줄거리 요약>
프랑스 시골 페리고르 지방에서 송로버섯 농장을 운영하던 오르탕스 라보리(카를린 프로 분)는 우연한 기회에 프랑스 대통령의 개인 요리사를 제의받고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 입성하게 된다. 격식을 차린 정통 요리 위주였던 엘리제궁에서 대통령이 진짜로 원하는 음식은 따뜻한 홈 쿠킹이라는 것을 알고 <어머니랑 할머니한테 배운 소박한 요리>를 통해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게 된다. 하지만 수십 년간 엘리제궁의 음식을 전담했던 기존 세력들의 질투와 방해가 극에 달하자 라보리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프랑스 대통령 중 최장기간 재임한 미테랑 대통령의 실제 개인 요리사였던 다니엘레 델푀를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관전 포인트>
A.라보리 부인이 엘리제 궁에 들어왔을 때 주방장의 반응은?
라보리 부인이 대통령의 개인 요리사로 추천되어 엘리제궁에 출근하니 첫날부터 시기하고 경계하던 주방장과 요리사들은 인사조차 받아주지 않고 고압적인 자세를 보인다. 심지어 주방장은 "여긴 철물점도 봉사실도 아니다"라며 주방 기구까지 빌려주기를 거절한다. 라보리가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매년 5월 열리는 대통령 가족 연회의 메뉴를 주관하게 되자 노골적으로 방해하기도 하는 몰염치를 보인다. 하지만 연회는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고 대통령은 "부인이 만든 차우더는 집에서 먹던 거랑 똑 같았거든요. 이번 식사 덕분에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죠,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었어요"라며 감사의 인사를 하게 된다.
B. 대통령이 라보리 부인에게 요청한 음식의 콘셉트는?
대통령에게 뭘 요리해야 할지 확신이 안 서니 음식의 지침이 있으면 좋겠다고 건의하자 대통령은 "단순한 요리를 해요. 복잡하게 짜 맞춘 건 질색이에요. 지나친 조리의 기교나 불필요한 장식도 싫어요. 여기 처음 왔을 때 내가 좋아할 줄 알고 제빵사가 디저트마다 항상 설탕 장미를 붙였죠. 그 장미가 어찌나 싫은지 매번 한쪽에다 치워놓고 먹었는데 매번 다시 나오더라고요. 결국엔 다시는 달지 말라고 메모를 쓰야 했죠. 난 음식의 맛을 느끼고 싶어요. 순수한 본연의 맛을요. 예를 들면 부인이 첫날에 만들어준 산새 버섯 계란요리 맛있었어요. 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음식을 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프랑스의 맛을 보여줘요"라고 당부한다.
C. 이방인으로 취급 당하는 라보리에게 대통령이 해주던 말은?
자신을 마치 루이 15세 때의 애첩 두 바리 부인이라고 놀려대는 등 피곤에 절어 있을 때, 어느날 밤 대통령은 라보리의 주방으로 내려와 송로버섯과 와인을 한잔하면서 "사람들 때문에 힘들죠? 나도 그래요. 개인적으로 역경이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해요. 인생의 묘미이죠. 알겠죠?"라며 서로의 동병상련을 위로해 준다.
D. 라보리가 엘리제궁을 떠나게 되는 이유는?
대통령의 신임으로 조직에서 외톨이가 된 라보리는 심신이 지쳐갔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 요리실을 담당하는 문화부 공무원은 라보리의 요리가 과다 지방으로 대통령의 건강을 저해한다고 간섭하고 심지어 고급 식재료에 비용이 과도하다고 제동을 걸자, 라보리는 대통령의 튀니지 방문 중 사표를 내고 2년간의 엘리제궁 생활을 마치게 된다. 대통령에게 남긴 편지에서 그동안의 감사화 함께 "다이어트는 경계하세요, 몽테스키외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지나친 다이어트로 유지된 건강은 병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을 남기며 행복한 음식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며 떠나간다.
[몽테스키외:18세기 프랑스 계몽시대의 정치학자로 입헌군주제와 3권 분립, 양원제 의회를
주장]
E. 라보리가 선택한 다음 여정은?
라보리는 엘리제궁에서의 피로감을 회복하기 위해 남극해 크로제 제도에 있는 알프레드 포레 연구기지에 자원하여 1년간 요리사로 일하게 된다. 단순한 구내 요리사로 일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모든 역량과 정성을 발휘하여 오지에 있는 연구원들에게 최고의 음식을 통해 외로움과 역경을 이겨내는데 큰 용기와 행복감을 선사하여 큰 사랑을 받게 된다. 그녀는 프랑스에 귀국하여 "주방에서 쓴 노트"라는 레시피와 추억담을 담은 책을 발간했다. 지금도 가족과 친구 그리고 프랑스 요리를 배우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요리한다고 전해진다<에필로그>
우리들에게 "오늘 누구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가?'라는 화두는 무척이나 진지하고 소중한 질문이다. 서로를 배려하면서 소박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시간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패배와 우울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따뜻하게 위로해 줄 영혼의 음식을 떠올릴수 있다면 다시 한번 삶에 도전할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딸이 내가 차린 간단한 아침식사를 먹어주는 모습에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소중한 가교임에 틀림없다.<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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