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 천하' 재연 박민지 "나는 채찍질해야 잘하는 선수"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정상급 선수 가운데 상당수는 우승할 때마다 캐디백에 '별'을 새긴다.

통산 승수 4위(15승) 장하나의 캐디백에는 행운의 상징 네 잎 클로버 15개가 새겨져 있다. 유해란(21)은 이름에 '해'가 들어있어서 '태양'을 달았다.

별명이 '사막여우'인 임희정(22)은 예쁜 사막여우 모습을 캐디백에 새겨 넣는다.

하지만 26일 끝난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우승으로 KLPGA 투어에서 우승해 통산 13승을 기록한 박민지(24)의 캐디백에는 어떤 표시도 없다. 박민지는 "일부러 '우승 표시'를 달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민지는 "13개의 우승 표시가 달려 있다면 그걸 보고 '와, 내가 우승 많이 했구나'라면서 도취한 나머지 나태해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민지는 "나는 칭찬보다는 채찍질을 해줘야 잘 달리는 선수"라고 말했다. 한때 "은퇴할 때까지 20승을 하는 게 목표"라던 박민지는 13번째 우승을 차지한 이날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면서 "그날(20승을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몸을 낮췄다.

박민지는 6승을 쓸어 담았던 작년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벌써 3승을 따내는 등 '민지 천하' 재연에 순항하는 원동력을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대단한 선수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박민지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워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회에 나오면 당장 이 대회에서 우승하자는 목표에만 집중한다.

그게 내가 안이해지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무관중 대회에서 여섯 번 우승했던 박민지는 올해는 구름 관중 속에서 세 번 우승했다.

이날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최종일에는 1만여 명의 관중이 들어찬 가운데 치렀다.

박민지와 박지영(26)의 연장전은 3천 명이 넘는 관중이 지켜봤다.
"응원해주는 팬들이 많아져서 기분 좋다"는 박민지는 "팬들은 내 승부사 기질을 좋아하는 것 같다.

동료 선수들도 내가 대회장에 오면 눈빛이 다르다고 한다.

무서워서 가까이 가기가 꺼려진다는 말도 한다"고 밝혔다.

박민지는 "요즘은 웃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려고 애쓴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이날 우승으로 연장전 5전 4승이라는 기록을 남긴 박민지는 "연장전을 하면 늘 재미있고 신난다.

연장 갔다는 건 2등은 확보한 거니까"라면서 "워낙 매치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연장전에 강한 이유를 자평했다.

천신만고 끝에 우승했지만, 박민지는 사실 경기 내내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이었다고 털어놨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집중력이 바닥이었다.

경기 도중 바나나, 에너지 젤에다 김밥까지 먹어도 먹어도 힘이 안 났다"는 박민지는 "초반에 버디 4개를 잡아내면서 선두로 나서고도 우승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당시 속마음을 공개했다.

6번 홀부터 버디를 하나도 보태지 못하고 16번 홀(파3)에서 3퍼트 보기로 공동선두를 허용한 박민지는 "퍼트가 안 됐다.

우승을 못 할 줄 알았다"면서 "더구나 (박)지영 언니는 상승세를 탔고, 나는 흐름이 내리막이었다.

긍정적인 생각은 안 들었다"고 돌아봤다.
박민지의 뒷심은 역시 특유의 '승리욕'에서 발현됐다.

"16번 홀 3퍼트도 그렇고,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버디 퍼트를 넣지 못한 것도 넣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탓"이라는 박민지는 "연장전 버디 퍼트는 무조건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더니 들어갔다"고 밝혔다.

연장전에서 박민지는 먼저 3m 버디 퍼트를 넣었고, 박지영은 2.5m 버디 퍼트를 넣지 못했다.

박민지는 "피로가 많이 쌓였다. 다음 대회는 쉬고 올해 마지막 타이틀 방어전을 치른 뒤 LPGA투어 메이저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라고 향후 일정을 소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