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슬럼프 딛고 전인지 부활하다…"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KPMG챔피언십 우승

5언더파…1타 차로 톰슨 제쳐
우승 확정 순간 '감격의 눈물'
'비밀병기' 7번·9번 우드로 승기

통산 4승 중 3승 메이저서 올려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 목표

“이렇게 할 거면 은퇴하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총상금 900만달러)을 사흘 앞둔 지난 20일, 전인지(28)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스승이자 코치인 박원 JTBC 해설위원이 “요즘 경기를 보니 샷에 영혼이 실리지 않은 것 같다”며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 말을 내뱉은 것. 지난 3년 동안 긴 슬럼프를 겪을 때 골프에 대한 열정을 되살려주려 애썼던 스승의 말이기에 그가 느낀 충격은 더욱 컸다.

오랜 미국 생활이 낳은 외로움, 2018년 10월 LPGA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이후 3년8개월 동안 끊긴 우승에 대한 불안함에 서러움까지 더해졌다. 전인지는 언니에게 전화해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눈물을 닦은 뒤엔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며 다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그렇게 오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무대. 전인지는 이전 두 대회와 달랐다. 드라이버샷, 아이언샷, 퍼터 모두 전성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 27일(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의 콩그레셔널CC(파72)에서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최종 합계 5언더파 283타로 렉시 톰슨(27·미국)과 이민지(26·호주)를 1타 차로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우승상금은 135만달러(약 17억5000만원). 3년8개월 만에 만들어낸 투어 통산 4승이자 세 번째 메이저 우승이었다.

‘비밀병기’ 7번·9번 우드

전인지는 한국 여자골프의 간판스타다. 2015년 메이저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LPGA 투어에 진출해 이듬해 또 다른 메이저 에비앙 챔피언십까지 제패하며 ‘메이저 퀸’으로 자리잡았다. 세계 랭킹 3위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18년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이후 우승 소식이 끊겼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주변의 기대는 오히려 그를 코너로 몰았다. 2020년 세계랭킹이 61위까지 떨어지자 골프를 접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변신하는 걸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래도 골프를 놓지 못했다. 평생 해온 골프를 이렇게 무너진 상태로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채를 잡았다. 지난해 9개 대회에서 톱10을 기록하며 시동을 걸더니, 지난 3월 HSBC 월드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부활을 예고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전인지는 비밀병기를 준비했다. 하이브리드 클럽 두 개를 빼고 넣은 7번·9번 우드다. 이번 대회가 열린 콩그레셔널CC은 같은 기간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대회장인 TPC 리버하이랜드보다 전장이 길다. 여기에 그린이 단단하고 바람도 강했다. 먼 거리를 보내면서도 그린을 정확하게 공략할 수 있는 클럽이 필요했다. 전인지와 핑은 여러 차례 협업을 거쳐 높은 탄도와 스핀을 만들어낼 수 있는 7번·9번 우드를 맞춤 제작했다.

이번 대회 직전에 완성품이 나와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없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인지는 첫날 8언더파 64타로 코스레코드를 세우며 5타 차 선두로 나섰고 2라운드에서는 6타 차로 격차를 더 벌렸다.

“새 목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압도적 점수 차는 그에게 오히려 더 큰 부담이 됐다.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3라운드에서 3타를 잃고 3타 차 선두가 됐다. 이민지, 톰슨, 김세영 등 쟁쟁한 추격자들이 호시탐탐 선두 자리를 노렸다.

대회 직전 ‘은퇴’ 얘기를 꺼냈던 스승은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는 “더 많이 웃고 더 즐겁게 치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야”라고 다독였다. 전인지는 “믿어도 되죠?”라며 티잉 구역에 올라섰다. 우승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톰슨이 맹추격하면서 엎치락뒤치락하더니 한때 선두를 내주기도 했다.

전인지는 과거보다 단단했다. 14번홀(파4)부터 톰슨이 흔들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고 16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내며 동타로 따라잡았다. 결국 마지막 두 개 홀 퍼트가 승부를 갈랐다. 톰슨은 17번홀(파4)에서 1m 파 퍼트를 놓치며 선두에서 내려왔고 18번홀 파 퍼트를 놓치며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갈 기회를 날렸다. 전인지는 두 홀 모두 파로 지키며 ‘메이저 퀸’으로 우뚝 섰다. 오랜 우승 갈증을 씻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전인지는 이번 우승으로 박인비 이후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LPGA투어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도 바라보게 됐다. 그는 “메이저 3승을 했으니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내 앞에 놓인 새로운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