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가입 '거부권' 지렛대로 신형 F-16 노리는 에르도안

친러 행보로 전투기현대화에 제동…스웨덴·핀란드 압박해 '숙원 해결' 모색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핀란드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문제를 지렛대 삼아 숙원 사업인 전투기 현대화를 실현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 .튀르키예 관영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간)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하려면 반드시 터키의 우려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무의미한 말이 아닌 결과를 원한다"며 "그들은 말만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미드필드에서 볼을 돌리는 데 지쳤다"고 덧붙였다.그러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F-16 전투기의 현대화 및 추가 도입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을 겨냥해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튀르키예가 찬성표를 던지길 바란다면 먼저 F-16 현대화 사업을 승인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 자신이 가진 카드로 상대방을 최대한 압박해 '하나를 내주면 반드시 하나 이상을 챙긴다'는 에르도안식 외교술의 전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핀란드와 그 인접국인 스웨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수십 년간 지속해온 중립국 정책을 폐기하고 나토 가입을 결정했지만, 튀르키예가 발목을 잡고 나섰다.

나토 규정상 기존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신규 회원국을 받을 수 있는데 30개 회원국 중 튀르키예만 반대 의사를 보인 것이다.

튀르키예는 핀란드와 스웨덴이 튀르키예의 분리 독립 세력인 쿠르드족에 포용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을 문제 삼으면서 '거부권'을 손에 쥐고 마음이 급한 두 나라를 압박하는 중이다.핀란드와 스웨덴은 국내 정치 사정상 하루아침에 쿠르드족을 내치기 어려운 처지다.

특히, 스웨덴은 쿠르드족 출신 의원이 6명이나 의회에 진출해 있다.

현재 여야 동수로 174석을 가진 팽팽한 의회 구성을 고려하면 쿠르드 출신 의원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유일한 무소속 의원으로 여야 사이에서 실질적 캐스팅 보터가 된 아미네흐 카카바베흐 의원 역시 쿠르드 출신으로, 그는 스웨덴 정부가 튀르키예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예산안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난처한 요구로 핀란드와 스웨덴을 압박하는 한편, 나토의 최대 주주인 미국에는 자국의 숙원사업을 해결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튀르키예가 F-16 전투기 현대화에 매달리는 배경에는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 도입과 그리스와의 해묵은 갈등이 깔려있다.

애초 튀르키예는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의 공동개발국이었으나 2017년 러시아제 S-400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기로 하면서 F-35를 구매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미국은 튀르키예가 F-35와 S-400을 동시에 운용할 경우 F-35의 레이더 반사 면적이나 전자신호 등 극비 정보가 S-400에 연동된 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에 넘어갈 수 있다며 판매를 거부했다.

그 사이 튀르키예의 오랜 숙적인 그리스는 2020년 10월 미국에서 F-35 전투기 20대를 도입하는 데 합의했고, 프랑스와 라팔 전투기 24대를 도입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15세기 말 그리스가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에 점령당한 이후 수백 년간 앙숙 관계를 이어왔다.

현재 양국은 나토 동맹국으로 묶여있지만 수백 년 묵은 국민감정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특히, 양국 공군이 그 선봉에 서 있다.

양국 전투기는 수시로 에게해(튀르키예와 그리스 사이 바다)에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도그파이트'(근접 추격)를 벌인다.
이 와중에 그리스가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는 차치하더라도 4.5세대급으로 분류되는 라팔만 도입하더라도 구형 F-16C/D를 보유한 튀르키예는 그리스 공군을 막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

튀르키예가 그리스와 공군력의 균형을 맞추려면 최소한 구형 F-16 전투기의 현대화만은 꼭 달성해야 한다.

튀르키예는 이미 여러 번 미국에 F-16 전투기의 현대화 사업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수년간 S-400 도입 등 친러 행보를 보여온 튀르키예의 요구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터키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도 "상원과 하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당장 결과를 얻기는 힘들다"는 모호한 답을 내놨다.

튀르키예의 공군력 향상을 위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 시도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새 카드를 쥐여준 셈이 됐다.에르도안 대통령이 핀란드와 스웨덴을 지렛대로 삼아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