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금인상 자제 요청이 호응 못 얻는 세가지 이유 [여기는 논설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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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제 국내 주요 대기업 경영진을 만나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해달라"고 한 발언이 논란이다. 임금 발(發)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뜻을 작심하고 밝혔지만, 예상 외로 역풍이 거세다. 당사자들인 대기업 근로자들의 반발은 물론, 상식적으로도 호응을 얻기 힘든 몇 가지 문제들 때문이다.
먼저, '일반화의 오류'다. 국내 300명 이상 대기업의 지난 1분기 임금은 전년 동기에 비해 13.2% 올랐다. 분기 기준으로 2018년 1분기(16.2%) 이후 가장 높았다. 하반기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큰 게 사실이고, 기업 설비투자도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는 점에서 도를 넘는 임금인상을 우려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개별 기업 차원으로 들어가면 일률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워진다. 올해 직원 평균 임금을 15% 올린 카카오는 임원들의 '주식 먹튀' 논란, 상대적으로 일반 직원의 보상이 작다는 지적에 반응한 측면이 없지 않다. 네이버도 주식이나 스톡옵션이 아닌, 기본급 인상을 요구해온 직원들 의견을 반영해 올해 10% 임금을 올렸다고 한다.'생산성을 초과하는 지나친 임금인상'이란 부총리 지적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9년 기준 40.5달러로, OECD 36개 회원국 중 30위 수준이다. 이런 노동생산성을 빨리 끌어올려도 모자랄 판에 임금은 더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가가치 기준 노동생산성은 2015년 이후 작년까지 13.3% 높아진 데 반해, 같은 기간 명목임금상승률은 23.0%로 두 배 가까이 컸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업종과 사업체 규모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부총리가 '생산성 범위 내' 임금인상을 강조한다고 해서 경총 같은 단체가 각 기업에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과가 높고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을 뿐, 생산성 범위 내라는 기준에 맞춰 디테일하게 임금수준을 정할 기업은 많지 않다. 전체를 뭉뚱그려 대기업들의 임금인상 자제를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공허하기만 하다.
다음으로 '타기팅의 오류'다. 임금인상은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 글로벌 인재 확보 전쟁 때문에 기업 경영자들이 먼저 나서고 있는 건 맞다. 그러나 양대 노총이 올해 임단협에서 7~10% 임금인상을 요구할 계획인 만큼, 부총리의 자제 요청은 기업 경영진이 아닌, 노조를 향하는 게 옳다. '생산성 범위 내'란 명분도 앙등하는 물가 앞에서 실질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근로자들을 설득해내는 데 뭔가 부족하다. 물가가 그리 뛴다면 생활급 보장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 기반을 마련해주는 임금의 기능에 맞춰 인상은 불가피해진다. 그러니 근로자의 일방적 희생 강요로 비쳐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마지막으로 '본분 망각의 오류'다. 경제부총리가 물가관리에 총력을 기울인 뒤,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해야 더욱 설득력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급망 충격에 따른 외생변수여서 물가관리가 어렵다는 소리만 한다면 근로자들이 얼마나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싶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집을 사지 말라"라고 주문한 것은 그만큼 금리인상 의지가 강하니 괜한 인플레 기대심리를 갖지 말라는 뜻이다. 추 부총리가 임금인상 자제 요청을 하는 게 인플레 기대심리를 꺾기 위한 것도 아니요, 충분한 정책수단이 있으니 물가상승은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피력도 아니다. 무슨 메시지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을 앞둔 고려라는 해석까지 나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임금 발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우려가 커지는데, 당국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는 다급한 사정에서 추 부총리 발언이 나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성과가 괜찮은 기업의 임금인상이 여건이 다른 기업의 임금인상을 견인하게 되면 추가적 물가상승 요인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금인상을 통한 인재 확보전이나 그에 따른 임금상승이 시장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경쟁의 결과라는 점에서 과연 '과도'하다고 평가할 일인지 의문이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는 문제도 인위적으로 한쪽을 누른다고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사령탑의 고민이 시장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메시지 전달이 아쉽다.
장규호 논설위원
먼저, '일반화의 오류'다. 국내 300명 이상 대기업의 지난 1분기 임금은 전년 동기에 비해 13.2% 올랐다. 분기 기준으로 2018년 1분기(16.2%) 이후 가장 높았다. 하반기 실적 악화에 대한 우려가 큰 게 사실이고, 기업 설비투자도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는 점에서 도를 넘는 임금인상을 우려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개별 기업 차원으로 들어가면 일률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워진다. 올해 직원 평균 임금을 15% 올린 카카오는 임원들의 '주식 먹튀' 논란, 상대적으로 일반 직원의 보상이 작다는 지적에 반응한 측면이 없지 않다. 네이버도 주식이나 스톡옵션이 아닌, 기본급 인상을 요구해온 직원들 의견을 반영해 올해 10% 임금을 올렸다고 한다.'생산성을 초과하는 지나친 임금인상'이란 부총리 지적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19년 기준 40.5달러로, OECD 36개 회원국 중 30위 수준이다. 이런 노동생산성을 빨리 끌어올려도 모자랄 판에 임금은 더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가가치 기준 노동생산성은 2015년 이후 작년까지 13.3% 높아진 데 반해, 같은 기간 명목임금상승률은 23.0%로 두 배 가까이 컸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업종과 사업체 규모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부총리가 '생산성 범위 내' 임금인상을 강조한다고 해서 경총 같은 단체가 각 기업에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정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과가 높고 임금을 올려줄 여력이 있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이 있을 뿐, 생산성 범위 내라는 기준에 맞춰 디테일하게 임금수준을 정할 기업은 많지 않다. 전체를 뭉뚱그려 대기업들의 임금인상 자제를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공허하기만 하다.
다음으로 '타기팅의 오류'다. 임금인상은 성과에 대한 제대로 된 보상, 글로벌 인재 확보 전쟁 때문에 기업 경영자들이 먼저 나서고 있는 건 맞다. 그러나 양대 노총이 올해 임단협에서 7~10% 임금인상을 요구할 계획인 만큼, 부총리의 자제 요청은 기업 경영진이 아닌, 노조를 향하는 게 옳다. '생산성 범위 내'란 명분도 앙등하는 물가 앞에서 실질소득 감소를 우려하는 근로자들을 설득해내는 데 뭔가 부족하다. 물가가 그리 뛴다면 생활급 보장을 통한 노동력 재생산 기반을 마련해주는 임금의 기능에 맞춰 인상은 불가피해진다. 그러니 근로자의 일방적 희생 강요로 비쳐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마지막으로 '본분 망각의 오류'다. 경제부총리가 물가관리에 총력을 기울인 뒤,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해야 더욱 설득력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급망 충격에 따른 외생변수여서 물가관리가 어렵다는 소리만 한다면 근로자들이 얼마나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싶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집을 사지 말라"라고 주문한 것은 그만큼 금리인상 의지가 강하니 괜한 인플레 기대심리를 갖지 말라는 뜻이다. 추 부총리가 임금인상 자제 요청을 하는 게 인플레 기대심리를 꺾기 위한 것도 아니요, 충분한 정책수단이 있으니 물가상승은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피력도 아니다. 무슨 메시지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을 앞둔 고려라는 해석까지 나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임금 발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우려가 커지는데, 당국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는 다급한 사정에서 추 부총리 발언이 나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성과가 괜찮은 기업의 임금인상이 여건이 다른 기업의 임금인상을 견인하게 되면 추가적 물가상승 요인으로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임금인상을 통한 인재 확보전이나 그에 따른 임금상승이 시장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런 경쟁의 결과라는 점에서 과연 '과도'하다고 평가할 일인지 의문이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는 문제도 인위적으로 한쪽을 누른다고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사령탑의 고민이 시장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메시지 전달이 아쉽다.
장규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