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속도 너무 빠르다"…삼성·SK하이닉스 '숨이 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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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SK하이닉스 서로 더 나은 처우 약속정부가 최근 물가 상승률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재계에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가운데 특히 반도체 인력난을 겪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임금 경쟁에 눈길이 쏠린다. 반도체가 국내총생산(GDP)의 6%,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만큼 이들 기업의 임금 인상 정도가 사회 전반에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네이버·카카오 등도 임금 상승에 영업익 저조
SK하이닉스 임금 인상률 '재계 촉각'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매년 초, SK하이닉스는 중반께 당해 연도 임금 인상률을 각각 결정한다. 2020년 기준 삼성전자의 대졸 신입사원 초임은 4450만원이었고 SK하이닉스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양사의 임금인상 경쟁은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두 회사는 반도체 인력 부족 상황이 장기화하자 우수인력 유치를 위해 대졸 신입사원 초임을 경쟁적으로 인상했다. 그 결과 최근 2년간 양사가 올린 금액만 초봉 기준 700만원 규모에 달한다.삼성전자는 지난해 3월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기존 4450만원에서 4800만원으로 약 350만원 올렸다. 이후 SK하이닉스가 같은 해 6월 신입사원의 초임을 5050만원으로 대폭 올리면서 삼성전자를 제쳤다.
당시 SK하이닉스의 평균 임금률은 예년의 2배 수준인 8.07%였다. 회사 내부에서 터져나온 처우 불만과 정보기술(IT) 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연봉 대폭 인상 분위기를 고려한 결정이었다.문제는 그 다음. SK하이닉스가 임금을 대폭 올리자 삼성전자 내에서도 처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결국 올 4월 삼성전자는 최근 10년 내 최고 수준인 평균 9% 임금 인상을 결정했다. 아울러 대졸 신입사원 초임을 기존 4800만원에서 5150만원으로 350만원 올려 다시 SK하이닉스를 앞질렀다. 대졸 신입사원 초임이 2년 만에 무려 700만원이나 오른 셈이다.
현재 대졸 신입사원 초임은 삼성전자(5150만원)가 SK하이닉스(5050만원)보다 약 100만원 더 많지만 조만간 SK하이닉스가 2022년도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면 다시 삼성전자를 역전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 노조는 올해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해 기본급 기준 12.8% 수준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노조 요구의 절반만 수용되면 SK하이닉스 초임은 다시 삼성전자를 뛰어넘는다.성과급 경쟁도 만만찮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연봉 50% 수준의 정기 성과급에 더해 기본급 300% 수준의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자 삼성전자도 반도체사업부에 연봉 50% 수준의 정기 성과급과 기본급 200~300% 수준의 특별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올 초 경계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사장 겸 DS부문장은 "보상 우위를 계속 확보하겠다"며 SK하이닉스보다 더 나은 처우를 공언했다. 양사는 올 상반기 경영 성과에 대한 정기 성과급 지급률을 임직원들에게 조만간 공지할 예정이다.
대기업들에 경쟁적 임금인상 자제 요청
하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대기업들에 경쟁적인 임금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단과 만나 "소위 '잘 나가는' 대기업들이 인재 확보라는 명분으로 경쟁적으로 임금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며 "최근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고려해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일부 대기업의 가파른 인건비 상승 부담은 전형적인 '임금 인플레이션'(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나타나는 인플레이션) 형태로 사회 전반의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정부의 분석인 것으로 풀이된다.한 번 올린 인건비는 낮추기가 어려워 경기가 위축돼도 고임금이 유지되면서 기업 운영 등 경제 상황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논리다. 물가가 치솟으면 이에 맞춰 임금을 더 올리고, 이로 인해 물가가 더욱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
반도체 업계뿐 아니라 개발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IT 업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인건비 부담이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어서다. 네이버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전년(1억240만 원) 대비 26.0% 증가한 1억2915만원에 달했다. 회사의 올 1분기 인건비·복리후생비는 3812억원으로 전체 영업비용의 24% 수준까지 치솟았다.
카카오도 올 1분기 인건비가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한 4200억원에 달했다. 회사 평균 임금은 2020년 1억800만원에서 지난해 1억7200만원으로 무려 59.3%나 올랐다. 그럼에도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올해 인건비 예산(총액)을 지난해보다 15%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는 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에 그친 1587억원을 기록했다.늘어난 인건비 부담은 업황이 부진한 시기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적을 거둔 게임업계의 경우 인건비 부담으로 적자 전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넷마블은 올 1분기 영업손실 119억원을 기록하며 10년 만에 적자 전환했는데 전체 영업비용 중 가장 큰 폭으로 오른 항목이 인건비(434억원)였다.
직장인들 격앙된 분위기
재계 입장과는 반대로 반도체·IT 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인플레에 맞춰 임금을 더 인상해야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특히 추 부총리의 임금 인상 자제 발언 이후 격앙된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해당 업계 직장인들은 익명 커뮤니티를 어플리케이션(앱) 블라인드 등을 통해 "보수 정권의 경제 수장이라는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직장인 월급 인상 막기 전에 정부 인사들과 국회의원들의 인건비부터 줄여라" "대책이라고 내놓는 게 고작 직장인들 월급 죄기인가" 등의 날선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경기 남부에 위치한 한 IT 기업 사내 카페 직원은 "직원들 사이에서 처우에 대한 불만, 성과급, 보상, 이직 관련 얘기가 정말 많이 들린다"고 귀띔했다. 판교에 위치한 한 기업의 인사팀 보상업무 담당 관계자는 "보상 시스템 마련 업무가 매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노사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사팀만 죽어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재계 관계자는 "시가총액 최상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적 임금 인상으로 다른 기업들도 최근 임직원 임금 수준을 대폭 올리는 등 따라가는 분위기"라며 "올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처우 경쟁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